마라톤 완주한 4족 로봇 '라이보2', 네이처 본지에 실렸다

사람도 완주하기 쉽지 않은 42.195km를 배터리 한 번 갈아 끼우지 않고 달려낸 4족보행 로봇이 있다. KAIST 연구팀이 개발한 '라이보2(RAIBO2)'다. 이 로봇의 마라톤 완주 기록과 이를 가능하게 한 설계 원리가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 본지에 실렸다. 국내 로봇 연구가 네이처 본지에 게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세계적으로도 로봇 분야 연구가 네이처 본지에 실리는 사례는 드물다.
KAIST(총장 배충식)는 기계공학과 황보제민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라이보2가 2024년 11월 17일 열린 제22회 상주 곶감 마라톤에서 배터리를 충전하거나 교체하지 않고 풀코스 42.195km를 4시간 19분 52초 만에 완주했다고 24일 밝혔다. 4족보행 로봇이 실제 마라톤 대회 풀코스를 완주한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다. 연구팀은 라이보2를 실제 대회 참가자로 등록해 공식 구간 기록을 남겼고, 출발부터 결승선까지 완주 과정 전체를 영상으로도 기록했다.
이번 논문에서 특히 주목받는 수치는 이동효율지표인 'TCOT(Total Cost of Transport, 총수송비용)'다. 로봇이나 사람이 일정 거리를 이동하는 데 쓰는 에너지 효율을 나타내는 지표로, 숫자가 작을수록 같은 에너지로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뜻이다. 라이보2는 완주 과정에서 TCOT 0.25를 기록해 사람의 보행 효율 기준치인 0.37을 넘어섰다. 사람보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써서 달리는 사족보행 로봇이 나온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다.
라이보2가 완주하며 실제로 소모한 전력량은 약 1,280Wh로, 탑재한 배터리 총 용량 2,016Wh에는 못 미쳤다. 연구팀은 남은 전력으로 추가 주행이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황보 교수는 동일한 배터리 용량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해외의 대표적인 사족보행 로봇보다 3배 이상 긴 거리를 달릴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세계 로봇업계에서는 사족보행 로봇과 휴머노이드의 달리기 속도, 장애물 극복 능력을 겨루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로봇을 산업 현장에 투입해 오래 쓰려면 순간적인 운동 성능만으로는 부족하고, 에너지 효율과 발열, 배터리, 구동장치의 안정성을 함께 갖춰야 한다. 연구팀은 이를 배터리나 모터 등 개별 부품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기계 구조와 전기 시스템, 보행 제어가 서로 얽혀 있는 로봇 전체의 '시스템 문제'로 보고 접근했다. 힘을 전달할 때 손실을 최소화한 경량 기구부와 손실이 적은 모터 구동회로, 에너지 효율에 맞춰 훈련한 강화학습 보행제어를 하나로 통합해 설계한 결과가 이번 마라톤 완주와 TCOT 기록으로 이어졌다.
연구팀은 실험실에서의 짧은 주행 시험이나 계산으로 추정한 최대 주행거리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마라톤 풀코스 위에서 기술을 검증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마라톤이 진행되는 4시간여 동안 로봇 내부의 전압과 전류, 온도, 배터리 상태를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이를 위치와 속도, 고도 정보를 담은 GPS 데이터와 함께 맞춰봤다. 42.195km 완주라는 결과가 라이보2의 성능을 보여줬다면, 이렇게 쌓인 실측 데이터는 그 성능이 어떻게 가능했고 실제 환경에서 어떻게 유지됐는지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가 됐다.
라이보(RAIBO) 계열 로봇은 2023년 해변 보행 시연을 거쳐, 2025년 5월에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Science Robotics)에 복잡하고 불연속적인 지형에서 빠르게 걷고 달리는 제어 기술을 담은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네이처 논문은 그 후속으로, 속도와 지형 극복 능력을 검증했던 이전 연구에 이어 장거리 주행의 에너지 효율을 별도로 입증한 것이다.
연구팀의 다음 과제는 한 대의 연구용 로봇에서 확인한 성능을 산업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쓸 수 있는 제품으로 옮기는 일이다. 라이보2는 연구진이 직접 설계하고 수작업으로 제작한 연구용 로봇으로, 실제 현장에 투입하려면 여러 대의 로봇에서 같은 성능을 안정적으로 구현하면서 생산 비용도 낮춰야 한다. 물과 먼지를 막는 방수·방진 성능, 넓은 사용 온도 범위, 충격과 진동에 견디는 내구성, 전자파 간섭에 대한 적합성(EMI·EMC) 등 산업 현장이 요구하는 신뢰성도 함께 갖춰야 하는 과제다. 황보 교수 연구실에서 출발한 KAIST 교원창업기업 라이온로보틱스가 이 성과를 실제 제품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기구와 전장, 소프트웨어, 인공지능은 물론 로봇의 모터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모터 드라이버까지 자체 개발해 시스템 전체를 최적화하고 있다.
황보제민 교수는 이번 연구는 4족보행 로봇이 얼마나 멀리 달릴 수 있는지를 넘어, 높은 운동 성능과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 로봇 전체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를 실제 마라톤 데이터로 입증한 결과라며 연구실에서 구현한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산업 현장에서 누구나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연결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KAIST 기계공학과 이충인 박사와 염동훈, 박정수 학생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9월 23일(현지시간) 게재됐다.
자료: KAI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