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캐스캐디아 섭입대, 한번에 안 멈추고 '조각조각' 찢어지며 죽어간다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9.30 06:48
밴쿠버섬 앞바다 심부 지진파 영상이 처음 포착한 판 경계의 마지막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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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Flickr user smallcurio·via Wikimedia Commons, CC BY 2.0)

열차가 사고로 멈출 때 모든 객차가 한꺼번에 탈선하는 게 아니라 한 칸씩 차례로 궤도를 벗어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캐나다 밴쿠버섬 북단 앞바다의 땅속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이런 모습과 닮았다. 한 지각판이 다른 판 아래로 파고드는 경계인 섭입대가 한꺼번에 멈추는 게 아니라, 구간별로 시차를 두고 조각조각 찢어지며 서서히 기능을 멈추고 있다는 사실이 사상 처음으로 지하 깊은 곳을 들여다본 심부 지진파 영상으로 확인됐다. 2025년 9월 24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연구 결과다.

왜 지금, 왜 여태 몰랐나

캐스캐디아 섭입대는 북미 서부 해안 아래로 태평양 쪽 판들이 밀려 들어가는 경계다. 그런데 밴쿠버섬 북단 부근, 즉 해저 산맥(해령)과 해구, 변환단층이 만나는 지점인 삼중합점 근처에서는 이 섭입 운동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문제는 판구조론에서 이렇게 섭입이 끝나갈 때 판이 통째로 한 번에 갈라지는지, 아니면 부분부분 나눠서 갈라지는지가 오랫동안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미 서부 아래로 가라앉았던 파랄론판이 신생대에 섭입을 마친 과정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혀 왔지만, 그 판이 어떻게 갈라졌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관측 사례는 없었다. 이번 연구는 같은 연구진이 2024년 6월 같은 학술지에 발표한 캐스캐디아 섭입대 약 900㎞ 구간의 전체 구조 연구를 잇는 후속작으로, 그중에서도 섭입이 '종료되어 가는 중'인 밴쿠버섬 북단 구간을 정밀하게 들여다봤다.

노트카 단층을 사이에 둔 두 판의 어긋난 상처

연구진이 확인한 것은 익스플로러판과 후안데푸카판이라는 두 개의 작은 지각판이 해구와 나란한 방향으로 찢어지는 구조였다. 이 찢어짐은 노트카 단층대라는 변환단층(두 판이 서로 옆으로 미끄러지듯 어긋나는 경계)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어긋나 있다. 노트카 단층대의 폭은 약 20㎞, 이를 경계로 슬래브(가라앉는 판)가 좌수향(왼쪽으로 어긋나는 방향)으로 벌어진 정도는 약 20㎞로 나타났다. 찢어진 구조 자체의 길이는 익스플로러판과 후안데푸카판 양쪽에서 각각 약 35㎞로 확인됐다. 이 수치는 연구가 별도로 예측한 또 다른 수치, 즉 이 과정이 계속 진행되면 캐스캐디아 섭입대 전체 길이의 약 12분의 1에 해당하는 약 75㎞ 구간이 옆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미래 예측값과는 다른 개념이다. 판이 찢어지며 생긴 수직 방향 단차(땅속 지각 경계면의 낙차)는 약 5㎞로, 지진이 발생한 깊이는 슬래브 상부부터 약 40㎞까지 분포했다. 연구진은 이 균열이 약 400만 년 전 익스플로러판이 해령 분절의 이동(능선 점프)으로 만들어질 때부터 시작돼, 노트카 단층대가 지금처럼 좁고 뚜렷한 경계로 자리 잡은 약 100만 년 전을 거쳐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본다. 이를 근거로 연구진은 섭입 종료가 특정 시점에 전 구간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다르게 진행된다는 '4차원 섭입 종료 모델'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이 과정을 열차가 한 번에 탈선하는 게 아니라 객차 한 칸씩 천천히 탈선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바다 밑을 들여다본 방법

이 관측은 2021년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지원으로 이뤄진 해상 탄성파 탐사 CASIE21에서 나왔다. 조사선이 음파를 해저 아래로 쏘고, 15㎞ 길이의 수중 청음케이블(스트리머)로 되돌아오는 반사파를 기록해 땅속 단면을 그려내는 방식이다. 사람 몸속을 들여다보는 초음파 검사와 비슷한 원리라고 이해하면 된다. 판이 찢어진다는 것도 딱딱한 두 판이 어느 한순간 갈라지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서로 다른 속도로 밀려 들어가면서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깊이 가라앉아 단차가 쌓이는 과정이다. 실제로 익스플로러판은 북미판과 연간 약 2㎝, 후안데푸카판은 연간 4㎝ 넘는 속도로 수렴하는데, 이 정도 속도 차이는 사람 손톱이 자라는 속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렇게 작은 속도 차이가 수백만 년 쌓이면서 오늘날 관측되는 수십 ㎞ 단위의 어긋남을 만들어낸 것이다.

위험이 줄었다는 뜻은 아니다

연구진 스스로도 이번 관측의 한계를 밝혔다. 탐사 측선이 육지 쪽으로 충분히 뻗지 못해 노트카 단층대와 브룩스반도 사이에서 익스플로러판 찢어짐이 계속 이어지는지는 확인하지 못했고, 수직 찢어짐이 깊이 방향으로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도 알 수 없다. 또 2차원 단면 자료만으로는 단층이 옆으로 미끄러지는 성분과 위아래로 어긋나는 성분을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남았다. 연구진은 인근 화산지대의 과거 화산활동을 설명해 온 기존 가설, 즉 수직으로 슬래브가 찢어지면서 뜨거운 맨틀 물질이 상승했다는 설명이 요구하는 전파 속도가 실제 지구동역학 모델보다 3배 이상 빨라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며, 판 주변부를 도는 소용돌이 형태의 맨틀 흐름이 더 그럴듯한 대안이라고 제시했다. 캐나다의 한 대학 구조지질학 부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판이 찢어졌다고 섭입대 경계 기능 자체가 멈추는 것은 아니며,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오히려 미래 거동을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짚었다. 분절이 지진 규모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변형을 특정 구간에 몰아붙여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를 뒷받침한 자금은 미국 국립과학재단 보조금과 대학 연구펠로십으로 확인됐으며, 기업 자금이 개입했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연구진과 독립 전문가 모두 이 균열이 앞으로도 수백만 년에 걸쳐 진행될 과정이며, 캐스캐디아 섭입대는 지금도 대형 지진과 해일을 일으킬 수 있는 활성 상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판이 조각조각 찢어지는 이 느린 죽음의 과정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포착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의미이지, 당장의 지진 위험이 낮아졌다는 뜻은 아니다.

자료: 루이지애나주립대학교, 컬럼비아대학교 라몬트-도허티 지구관측소, 미국 국립과학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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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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