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호주 17억5000만 년 전 진흙암서 나온 미화석 1만2000점 — 초기 진핵생물은 산소 있는 바닥에서만 살았다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10.01 07:48
다윈 창고에 방치된 시추코어서 확인된 세계 최고 진핵생물 화석, 산소 없는 곳엔 세균뿐
[기획] 호주 17억5000만 년 전 진흙암서 나온 미화석 1만2000점 — 초기 진핵생물은 산소 있는 바닥에서만 살았다
호주 노던준주 지층에서 채취한 17억5000만 년 전 퇴적암 드릴 코어. 이 암석에서 초기 진핵생물 미화석이 발견됐다. (사진 출처=시드니대학교·Maxwell Lechte)

돌덩이 하나를 산(酸)에 녹여 남은 찌꺼기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더니, 지구가 지금보다 훨씬 숨쉬기 힘들었던 시절 생명체의 흔적이 쏟아져 나왔다. 호주 북부 노던준주의 두 지층에서 나온 17억5000만~14억 년 전 미화석 1만2000여 점을 분석한 결과, 사람·동물·식물처럼 세포 속에 핵을 가진 생물인 '진핵생물'이 산소가 있던 얕은 바다 밑바닥에서만 발견됐다. 반면 산소가 없던 곳에서는 핵이 없는 단순한 세균류인 '원핵생물'만 나왔다. 가장 원시적인 진핵생물도 이미 산소 없이는 살기 어려웠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시드니대학교, 캘리포니아대 샌타바바라(UC Santa Barbara), 맥길대학교 공동 연구팀의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Nature에 2026년 5월 실렸다.

다윈의 창고에서 잠자던 돌덩이

이 화석들의 출발점은 실험실이 아니라 호주 노던준주 지질조사국(Northern Territory Geological Survey)이 다윈에 운영하는 야외 창고였다. 광물탐사 기업들이 수십 년 전 지하 수백 미터를 뚫어 채취한 뒤 그대로 쌓아둔 시추코어 — 원통 모양의 암석 기둥 — 가 그곳에 있었다. 연구팀은 맥아서 분지와 비린두두 분지에서 나온 진흙암(이암) 시료를 골라 산으로 녹이고, 남은 유기물 잔여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다. 그렇게 확인된 것이 1만2000여 점의 미화석이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7억5000만 년 전 것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진핵생물 화석이다. 17억5000만 년 전은 지구 나이(약 46억 년)의 상당 부분이 이미 지나간 시점으로, 공룡이 처음 등장한 약 2억3000만 년 전보다도 7배 이상 이전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이 화석들 중 일부에서는 원핵생물에는 없는 부속기관이나 지문처럼 보이는 주름 구조가 확인됐다. 이런 형태학적 특징이 이들을 진핵생물로 분류하는 근거가 됐다.

산소가 있는 곳에만 있었다

연구팀은 화석을 분류하는 고생물학, 당시 퇴적 환경을 복원하는 퇴적학, 산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원소와 광물의 농도를 측정하는 지구화학을 결합해 각 암석층이 쌓일 당시 바닥에 산소가 있었는지를 되짚었다. 그 결과 진핵생물 화석은 연안 갯벌부터 먼바다에 이르는 다양한 환경의 시료에서 나왔지만, 공통적으로 산소가 있던(호기성) 환경의 시료에서만 발견됐다. 산소가 없던 시료에는 원핵생물만 있었다. 이 시기 대기 중 산소 농도는 현재의 1% 이하로 추정된다 — 오늘날 산소로 가득 찬 병 하나 중 딱 한 방울 정도만 있었던 셈이다. 지구 대기에 산소가 본격적으로 쌓이기 시작한 '대산소화 사건'(GOE)이 약 24억~21억 년 전에 있었지만, 그 뒤로도 오랫동안 산소는 희박했고 이 시기는 흔히 '보링 빌리언(Boring Billion)'으로 불린다.

해저에 갇힌 10억 년

연구팀은 이 초기 진핵생물들이 물속을 떠다니는 플랑크톤이 아니라 해저 바닥이나 진흙 속에 붙어 사는 저서 생물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이들이 물 전체로 퍼져 플랑크톤 생활을 시작한 것은 훨씬 뒤인 신원생대, 즉 약 10억~5억400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 초기 진핵생물은 등장하자마자 세상을 정복한 게 아니라, 산소가 있는 좁은 해저 지대에 약 10억 년간 갇혀 뚜렷한 다양화 없이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뜻이다. 이는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이후 지금까지 흐른 시간(약 5000~6000년)의 15만~20만 배에 달하는 세월이다. 생물 다양성이 다시 크게 늘어난 것은 크라이오제니아기의 눈덩이지구 빙하기(약 7억2000만 년 전) 이후, 에디아카라기의 대형 생물들이 나타난 약 6억3500만 년 전 무렵이다. 연구팀은 이들 화석의 형태적 복잡성으로 미루어 세포 안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를 이미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다만 이는 형태를 토대로 한 추론이며, 미토콘드리아를 직접 관찰한 것은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남은 논쟁과 한계

벨기에 리에주대학교의 한 독립 평가자는 이 시기 모든 초기 진핵생물이 해저에서만 살았다는 결론이 과장일 수 있으며, 일부는 물속을 떠다니며 살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이번 연구가 호주 북부 두 분지의 시추코어에 크게 의존한 만큼, 다른 지역의 동시대 지층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추가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연구팀 스스로도 몇 가지 한계를 인정했다. 초기 진핵생물이 산소를 얼마나 필수적으로 필요로 했는지 정량적으로는 밝히지 못했고, 정확한 서식 수심도 특정하지 못했다. 진핵생물이 정확히 언제부터 물속 생활을 시작했는지, 이 시기 진핵생물 다양성이 유독 낮았던 이유도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최근 유전학·분자시계 연구에서는 미토콘드리아가 진핵생물 진화 초기가 아니라 훨씬 나중에 획득됐을 가능성, 그리고 산소 없는 환경에서도 사는 진핵생물의 사례가 제기된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연구는 '진핵생물은 항상 산소가 필요하다'는 통념을 전 지구적으로 입증했다기보다, 이 지역·이 시기에 한해 진핵생물이 산소에 의존했음을 확인한 국지적 결론으로 볼 필요가 있다. 참고로 2023년 호주국립대 연구팀은 같은 맥아서 분지의 16억4000만 년 전 암석에서 콜레스테롤 전구물질(분자화석)을 찾아내 진핵생물 존재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는데, 이는 분자 흔적을 근거로 한 별개의 연구다. 이번 연구는 실물 형태를 지닌 미화석으로 그보다 이른 시기 진핵생물의 존재를 직접 보여줬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한국의 오래된 화석과 비교하면

이번 호주 연구에 한국 기관이 직접 관여했거나 공식 반응을 낸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비교해볼 만한 참고 사례로, 인천 옹진군 소청도에는 국내 최고(最古) 화석 기록으로 알려진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있다. 이 스트로마톨라이트의 연대는 자료에 따라 약 6억~10억 년 전 또는 약 10억~12억 년 전으로 표기가 엇갈려 단일한 확정값은 없다. 다만 어느 쪽 수치를 적용하더라도, 이번 호주 화석(14억~17억5000만 년 전)보다는 뚜렷하게 젊다. 두 화석을 같은 종류의 '최고(最古) 기록' 경쟁처럼 직접 견줄 수는 없지만, 지구 생명의 이른 역사가 대륙마다 서로 다른 속도로 기록돼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는 참고할 만하다.

자료: 시드니대학교, 캘리포니아대 샌타바바라(UC Santa Barbara), 맥길대학교, 노던준주 지질조사국(Northern Territory Geological Survey), 국제학술지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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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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