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4천만 년 전 ‘길들여진 DNA’ BC200, 남의 복사기 빌려 인간 폭스바이러스까지 건넜다
약 19만 글자로 된 바이러스의 유전체 책에서 인간에게서 온 문장 두 조각이 발견됐다. 문장의 원본은 단백질을 만들지 않는 200염기 RNA 유전자 BC200이다. 약 4,000만 년 전 이동성 DNA에서 영장류의 기능 유전자로 전용됐지만, 다른 유전요소인 LINE-1의 장비를 빌리는 복사-붙여넣기 능력까지 완전히 잃지는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원본을 남긴 채 RNA를 DNA로 되돌려 새 주소에 넣는 방식이다.
수도사범대학교·텍사스대학교 알링턴·코넬대학교 공동연구진은 2026년 9월 24일, 물사마귀라고도 불리는 전염성 물렁종을 일으키는 인간 폭스바이러스 MCV의 유전체에서 BC200 유래 삽입 두 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두 조각은 한 사건에서 함께 들어간 것이 아니라, LINE-1 매개 역전위가 별도로 일어난 결과로 해석됐다. 역전위는 RNA를 다시 DNA 사본으로 만들어 다른 위치에 삽입하는 과정이다.
길들였지만 이동 능력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BC200의 공식 유전자명은 BCYRN1이다. 약 200염기로 이뤄졌으며 단백질의 설계도를 담는 대신 RNA 자체로 존재한다. 연구진은 그 기원을 약 4,000만 년 전 Alu 계열 이동성 서열에서 찾았다. 선행 계통 연구가 제시한 범위는 3,500만~5,500만 년 전이다. 이동하던 DNA가 영장류 신경세포의 번역 조절에 동원된 셈이지만, BC200의 정상적인 생리 기능과 번역 조절 방향은 조건에 따라 연구 결과가 달라 아직 단순하게 규정할 수 없다.
BC200은 스스로 움직일 효소가 없는 비자율성 SINE 계열이다. 엔진 없는 히치하이커에 가깝다. 이동하려면 LINE-1이 만드는 ORF2 단백질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ORF2는 DNA를 자르고 RNA를 DNA로 되돌리는 기능을 갖는다. BC200 RNA가 이 복사기를 빌리면 원래 유전자는 그대로 남고, 새 DNA 사본이 다른 위치에 붙는다.
BC200의 이동 가능성이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1993년 연구에서도 BC200의 Alu 기원과 BC200에서 파생된 가유전자 두 개가 보고됐다. 2026년 연구의 새로움은 8종 영장류에서 발견된 수백 개의 파생 삽입, 현대인 사이의 삽입 위치 차이, 자연 상태 인간 폭스바이러스에서 나온 두 삽입을 하나의 계통적 설명으로 연결했다는 데 있다. 숙주 기능에 동원된 전이요소는 이동성을 잃는다는 익숙한 구분에 예외를 더한 것이다.
발자국과 영수증으로 과거의 이동을 추적하다
연구진이 환자의 피부세포에서 BC200이 바이러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목격한 것은 아니다. 이번 연구는 공개된 바이러스·사람·영장류 유전체와 구조변이 자료, RNA 염기서열 자료를 다시 맞춰 본 계산 분석이다. 새로운 감염실험이나 동물실험보다 현재 남아 있는 서열을 겹쳐 과거 사건을 역산한 ‘디지털 고고학’에 가깝다.
판단의 단서는 여러 흔적의 조합이었다. 먼저 바이러스 속 두 삽입은 인간 BC200과 서열이 닮았다. 삽입 양끝에서는 표적부위중복, 즉 TSD가 확인됐다. TSD는 DNA가 끼어드는 과정에서 양쪽에 남는 짧은 반복으로, 삽입 현장의 발자국에 해당한다. RNA에서 흔히 나타나는 poly(A) 꼬리는 DNA 조각이 바로 옮겨진 것이 아니라 RNA 단계를 거쳤다는 영수증 역할을 한다. 여기에 여러 영장류 서열의 계통 관계를 더해, 사람 세포에서 전사된 BC200 RNA가 LINE-1 장비를 빌려 MCV DNA에 복사됐다는 해석을 세웠다.
확인된 이동 방향은 사람 숙주에서 바이러스로 향한다. 바이러스가 BC200을 다시 사람 유전체나 다른 종으로 옮겼다는 증거는 없다. 두 삽입이 MCV에 들어간 시기도 각각 16만 년 이내라는 상한만 제시할 수 있다. 16만 년 전이라는 하나의 정확한 날짜가 아니며, 삽입 당시 서열과 바이러스의 치환율, 중립 진화 가정에 따라 추정 범위가 달라지는 모델 의존적 결과다.
‘지금도 이동한다’는 결론은 어디까지 확실한가
연구진은 현대인의 표준 유전체에 없는 삽입과 개인에게 특이적인 삽입을 근거로 BC200의 이동이 비교적 최근까지 이어졌다고 해석했다. 서로 다른 사람에게서 삽입 위치가 달라지는 삽입 다형성은 활동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강한 간접증거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를 추적해 새 삽입의 발생 시점을 확인하거나, 그것이 생식세포와 체세포 가운데 어디서 생겼는지를 직접 밝힌 결과는 아니다.
직접적인 세포실험은 별도의 2024년 연구에서 이뤄졌다. 표지한 BC200과 LINE-1 ORF2 단백질을 함께 넣었을 때 HeLa-HA 암세포주에서는 역전위가 일어났지만, HeLa-JVM 세포주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BC200이 적절한 조건에서 실제로 이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정상 뇌세포·피부세포·생식세포에서도 같은 현상이 같은 빈도로 일어난다는 증거는 아니다. 2024년의 세포실험과 2026년의 공개서열 계산 분석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다.
분석 코드와 보존본은 공개됐지만 재현성에도 한계가 있다. 8종 영장류 비교, 반복서열 분류, TSD 탐색, 사람 구조변이 자료 대조와 RNA 자료 처리 흐름은 확인할 수 있다. 다만 고정된 실행환경과 통합 안내문이 없고 저자 서버의 절대경로가 남아 있어, 제3자가 한 명령으로 전체 결과를 다시 만드는 완결된 패키지는 아니다.
바이러스가 인간 RNA를 얻은 뒤 무엇을 했는지는 미지수
전이요소가 바이러스에 들어간 사례 자체가 세계 최초인 것은 아니다. 1989년에는 배양 곤충세포의 트랜스포존이 바큘로바이러스에 들어간 사례가, 2007년에는 파충류 SINE과 가까운 서열이 야생 설치류 폭스바이러스에서 발견된 사례가 보고됐다. 이번 결과의 의미는 숙주 기능 유전자로 전용된 인간 전이요소가 이동성을 유지한 채 자연 상태의 인간 바이러스 안에서 발견됐다는 조합에 있다.
MCV 속 BC200 유래 조각이 전사될 가능성은 제시됐지만, 바이러스가 이를 실제로 이용하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삽입 서열을 제거한 바이러스와 원래 바이러스의 증식, 병원성, 숙주 번역, 면역반응을 비교한 실험이 없기 때문이다. MCV는 사람 피부에 매우 특화돼 있고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효율적인 배양계도 없어 유전자를 제거하고 되돌리는 실험이 쉽지 않다. 바이러스가 BC200을 이용해 더 잘 증식하거나 면역을 피한다고 말할 단계가 아니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물사마귀의 진단이나 치료를 곧바로 바꾸는 성과가 아니다. BC200 삽입이 암이나 신경질환을 일으킨다는 증거도 아니다. 대신 수천만 년 전 숙주에게 길들여진 이동성 DNA가 다른 유전요소의 장비를 빌려 영장류 유전체에 새 흔적을 남기고, 마침내 인간 바이러스의 유전체 경계까지 건넜다는 진화의 긴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남은 질문은 분명하다. 바이러스 속 인간 유전자 조각은 단지 과거 이동의 화석인가, 아니면 MCV의 생존 과정에서 실제 역할을 맡고 있는가.
자료: 수도사범대학교·텍사스대학교 알링턴·코넬대학교·미국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NCB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