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나트륨을 빼내 만든 다공성 붕소 신물질 'Imma-B60' — 기존 붕소보다 전기전도도 1000만 배, 눌러도 안 깨진다

딱딱한 접시나 유리는 살짝만 눌러도 금이 가고 깨진다. 원소 붕소로 만든 소재도 마찬가지였다. 전기도 거의 통하지 않고, 조금만 변형을 주면 부서지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이 붕소에서 나트륨 원자를 빼내는 방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구조를 만들었더니, 찰흙처럼 눌러도 잘 깨지지 않으면서 전기는 β-붕소(마름모꼴 붕소)보다 1000만 배 더 잘 통하는 물질이 나왔다. 중국 옌산대학교(허베이성 친황다오) 연구팀이 학술지 Nature Chemistry에 발표한 새로운 붕소 동소체 'Imma-B60' 이야기다.
붕소는 원소 자체가 가볍고 실험적으로 정확히 검출하기 까다로운 데다, 다른 원소와 쉽게 반응해 붕화물이 되어버리는 성질 때문에 순수한 붕소만으로 새로운 형태를 찾아내는 일 자체가 드물다. 실제로 붕소 원소만으로 완전히 새로운 결정 구조가 학계에 보고된 것은 2009년 이후 약 16~17년 만에 처음이다. 탄소 원자 하나로 이루어진 물질이 다이아몬드도 되고 흑연도 되는 것처럼, 같은 원소라도 원자 배열 방식이 바뀌면 성질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데, 이런 새로운 배열이 붕소에서 나온 것은 그만큼 드문 사건이라는 뜻이다. 기존에 알려진 붕소(예: 마름모꼴 구조인 β-붕소)는 B12 정이십면체, 즉 붕소 원자 12개가 축구공 모양의 케이지를 이루는 단위가 빈틈없이 빽빽하게 채워진 조밀한 구조였다. 이런 구조는 전기가 거의 통하지 않는 절연체에 가깝고, 살짝만 눌러도 쉽게 금이 갔다.
뼈대는 그대로 두고 속만 비운 구조
Imma-B60의 구조는 기존 붕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여전히 B12 정이십면체 케이지 단위를 쓰지만, 이 케이지들이 빈틈없이 채워지는 대신 삼각형 모양의 B3 단위와 결합으로 서로 이어져 속이 비어 있는 '열린 골격(open-framework)' 구조를 이룬다. 벽돌을 빈틈없이 쌓아 올린 담장 대신, 같은 벽돌을 성긴 격자 모양으로 얽어 속에 통로를 남긴 구조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생긴 다공성 구조 덕분에 전기가 흐를 통로가 새로 생기고, 압력을 받았을 때 원자 배열이 갑자기 끊어지는 대신 미끄러지듯 움직일 여지도 함께 생겼다.
10년 넘게 막혔던 '나트륨 빼내기'
연구팀은 먼저 붕소와 나트륨을 고압 조건에서 반응시켜 전구체 화합물 Na4B60을 만들었다. 이후 이 전구체를 900도 진공 상태에서 이틀, 즉 48시간 동안 가열해 나트륨만 골라 빼냈다. 붕소와 나트륨을 함께 눌러 먼저 뼈대(골조)를 세운 뒤, 뜨거운 진공 오븐에서 비계처럼 쓰였던 나트륨만 걷어내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나트륨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붕소 뼈대만 남아 속이 뚫린 다공성 구조가 완성된다.
문제는 이 '나트륨 빼내기' 자체가 10년 넘게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난제였다는 점이다. 붕소는 전자가 부족한 원소여서, 함께 결합해 있던 금속 원자를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고 골라서 떼어내기가 극히 어려웠다. 연구팀은 전구체 결정을 키우는 단계에서 아연(zinc)을 중간층으로 넣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돌파했다. 아연 중간층을 활용하자 기존에는 너무 작고 품질이 낮아 나트륨을 빼낼 수 없었던 결정을, 크고 품질 좋은 결정으로 키울 수 있었다.
전기전도도 1000만 배, 눌러도 안 깨진다
새로 만들어진 Imma-B60의 물성은 기존 붕소와 크게 달랐다. 전기전도도는 약 900S/m(지멘스 매 미터, 전기가 얼마나 잘 흐르는지 나타내는 단위)로, 비교 대상인 β-붕소보다 7자릿수, 즉 약 1000만 배 높았다. 절연체에 가까웠던 소재가 훨씬 더 전기가 잘 통하는 소재로 바뀐 셈이다. 흙길을 걷던 수준에서 고속철도 레일 위를 달리는 수준으로 바뀌었다고 비유할 수 있다. 다만 밴드갭(전자가 전기를 흘리는 상태로 건너뛰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 문턱)은 0.2전자볼트(eV) 미만으로 여전히 좁게 남아 있어, 완전한 금속이라기보다는 반도체에 가까운 성격을 함께 지녔다.
변형 성질도 눈에 띈다. 일반적인 소성변형 시험에서는 약 23%까지 형태가 변해도 깨지지 않았고, 나노 단위의 가느다란 기둥(나노필러) 구조를 한쪽 방향으로 눌러보는 압축시험에서는 약 32%까지 눌러도 파괴되지 않고 버텼다. 시험 조건에 따라 수치는 다르지만, 두 결과 모두 원자 평면이 매끄럽게 미끄러지는 '전위매개 슬립(원자층이 어긋나며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현상)' 메커니즘 덕분으로 설명된다. 이 덕분에 통상의 붕소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갈라지는 대신, 딱딱한 도자기가 찰흙처럼 변하듯 서서히 형태가 바뀌는 소성변형이 가능해졌다.
'우아한 접근'이라는 평가, 그러나 아직은 전망 단계
이번 연구와 무관한 제3자인 아르템 오가노프(러시아 스콜코보 과학기술원)는 학술지 Nature 뉴스에서 이번 성과에 대해 '강력한 접근법이며, 완전히 새롭지는 않지만 가장 우아하고 현대적인 적용 사례일 수 있다'며 '그 파급효과는 매우 클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 물질이 실제 산업에 쓰이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합성 과정에서 남는 나트륨 함량이 최종 순도와 물성에 민감하게 영향을 줄 수 있고, 고압 조건과 여러 단계를 거치는 공정 특성상 대량생산이나 재현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언론에서는 열전소자(열과 전기를 서로 변환하는 소자), 유연 전자기기, 경량 전극 등을 잠재 응용 분야로 전망하고 있지만, 모두 초기 단계의 전망일 뿐 구체적인 상용화 계획이나 제품화 사례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논문이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학계의 검증된 반론이나 비판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국내 연구기관이나 기업의 관련 연구도 현재로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번 성과가 갖는 의미는 뚜렷하다. 원소 하나로 이루어진 가장 단순한 물질에서조차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구조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10년 넘게 막혀 있던 합성법을 우회하는 아이디어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자료: 옌산대학교(Yanshan University), Nature Chemist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