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레이저로 쏘아올린 뮤온 빔, 42미터까지 뻗어 벽 너머 물체 두께를 읽어냈다

사진 한 장을 찍는데 몇 달이 걸린다면, 그 기술은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두꺼운 벽이나 철판 뒤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는 데 쓰이는 입자인 '뮤온'이 바로 그런 처지였다. 그런데 루마니아의 한 연구진이 이 뮤온을 레이저로 '주문 생산'해 42미터 떨어진 곳까지 쏘아 보내고, 그 끝에 놓인 차폐물 뒤 금속 덩어리의 두께까지 알아맞히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왜 지금까지 어려웠나
뮤온은 전자보다 약 200배 무거운 입자로, 엑스선으로는 뚫지 못하는 두꺼운 콘크리트나 강철, 납도 통과할 수 있어 흔히 "엑스선의 강화판"으로 불린다. 문제는 확보하는 방법이었다. 지금까지 뮤온을 얻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우주에서 대기권으로 쏟아지는 우주선(宇宙線) 뮤온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는데, 이 자연 뮤온은 1제곱센티미터 넓이에 1분에 1개꼴로 내려올 정도로 드물고, 방향도 하늘에서 땅으로 수직으로 고정돼 있다. 화물 컨테이너 하나의 내부를 뮤온으로 스캔하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이유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인근 머구렐레에 있는 극한광시설-핵물리연구소(ELI-NP) 연구진은 이 문제를 "뮤온을 기다리지 말고 직접 쏘아 만들자"는 발상으로 풀었다.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듯, 원하는 방향으로 짧은 시간에 뮤온을 집중적으로 퍼부을 수 있다면 자연 뮤온보다 훨씬 빠르게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진은 M. 도브레, P. 게누케 등 18명 규모로, 2026년 9월 23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관련 논문을 올렸다. 다만 이 논문은 아직 동료심사를 거치지 않은 프리프린트 단계라는 점은 짚어둘 필요가 있다.
10페타와트 레이저에서 뮤온까지
연구진이 쓴 도구는 ELI-NP가 보유한 출력 10페타와트(PW)급 레이저다. 파장 810나노미터(nm)의 이 레이저는 한 번 쏠 때마다 230줄(J)의 에너지를 23펨토초(fs, 1000조분의 1초)라는 극히 짧은 순간에 표적에 집중시킨다. 이 레이저를 이용한 '레이저 웨이크필드 가속' 방식으로 전자를 최대 8±1기가전자볼트(GeV)까지 가속한 뒤, 가로세로 40×40센티미터, 두께 40센티미터짜리 납덩어리(컨버터)에 충돌시킨다. 이 충돌 과정(베테-하이틀러 과정)에서 뮤온과 반뮤온 쌍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생긴 뮤온은 폴리에틸렌 100센티미터, 파라핀 60센티미터, 그리고 두께 2미터에 이르는 철근콘크리트벽을 차례로 통과한다. 일반 아파트 벽 두께(20센티미터 안팎)의 10배에 달하는 두께다. 이 벽 너머 12미터 지점에는 고정 검출기를, 20미터·29미터·42미터 지점에는 옮겨가며 쓸 수 있는 이동식 검출기를 배치해 뮤온 빔의 상태를 측정했다. 42미터는 아파트 14층 높이를 옆으로 눕힌 거리이자, 표준 축구장 폭에 조금 못 미치는 거리다.
뮤온의 평균 수명은 100만분의 2.2초에 불과하지만, 빛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면 상대성이론에 따른 시간지연 효과 덕분에 붕괴하기 전에 수십~수백 미터를 날아갈 수 있다. 다만 아무 에너지의 뮤온이나 이 거리를 버티는 것은 아니다. 연구진이 논문에서 직접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에너지가 1.5GeV 이하인 뮤온은 42미터 떨어진 검출기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3GeV 이상이면 거의 100퍼센트가 살아서 도달한다.
납덩이 두께를 알아맞히다
연구진은 42미터까지 뻗은 이 실험 장치 안에서, 검출기 앞 약 30센티미터 지점에 가로 20센티미터·세로 25센티미터·길이 100센티미터 크기의 납 블록을 놓고 뮤온이 이를 얼마나 통과하는지를 측정했다. 뮤온은 물질을 통과할수록 줄어들거나 방향이 꺾이므로, 이 신호의 변화량을 지도로 그리면 물체의 두께를 거꾸로 계산할 수 있다. 그 결과 연구진이 재구성한 두께는 22.5~25센티미터로, 실제 납 블록의 최대 두께인 25센티미터와 사실상 일치했다.
측정 신호 가운데 뮤온에서 비롯된 비율은 86.91퍼센트에 달했고, 나머지 13.09퍼센트는 감마선이나 중성자 등 다른 입자에서 섞여 들어온 잡음이었다. 연구진은 이번 성과를 "완전한 세계 최초"라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대신 "인공적인 레이저 구동 뮤온 빔이 신호를 지배하는 이미징의 첫 시연"이라고 조건을 달아 표현했다. 실제로 논문 어디에도 "벽을 뚫고 촬영했다"는 표현은 없으며, 연구진 스스로는 "납 물체를 대상으로 한 투과 측정"이라고 서술했다.
한계와 남은 질문
이번 결과에는 짚어야 할 조건이 여럿 있다. 우선 논문이 공개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아 아직 동료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프리프린트 단계다. 학계의 공개 검증이나 반론이 나올 만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연구진도 스스로 한계를 밝혔는데, 이번에 쓴 검출기는 원래 개별 우주선 뮤온을 기록하기 위해 설계된 장비라 한꺼번에 많은 입자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신호가 왜곡되는 정도(비선형성)는 아직 따로 평가하지 못했고, 시간 측정 보정에도 온도 변화 등 다른 잡음 요인이 다 반영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에 촬영한 대상은 실제 건물 벽 너머에 숨겨진 정체불명의 물체가 아니라, 실험실에서 미리 규격을 정해 쌓아 둔 납 블록이었다는 점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성과는 실전에서 쓸 수 있는 탐지 장비의 시연이라기보다, 레이저로 만든 인공 뮤온이 실제로 두꺼운 차폐물 뒤 물체의 두께를 읽어낼 수 있다는 원리를 확인한 초기 단계 검증에 가깝다. 레이저 구동 뮤온원은 쏠 때마다 전자의 에너지와 양, 조준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는 문제도 있어, 이런 변동과 측정 오차를 구분하는 일이 이 분야 전반의 과제로 꼽힌다.
연구진은 앞으로 전자를 더 높은 에너지로 가속하고, 뮤온과 감마선·중성자 등 다른 입자를 더 잘 구분해낼 수 있는 새 검출기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실험과 직접 연관된 국내 연구나 기업, 정책은 확인되지 않았다.
자료: 극한광시설-핵물리연구소(ELI-NP), "Horia Hulubei" 국립 물리·원자력공학 연구소(IFIN-H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