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CERN, 반양성자 92개 트럭에 실어 도로 이송·한 달 넘게 무손실 보관 성공
소형차 한 대 무게의 장비를 트럭에 싣고, 시속 40km대의 서행으로 30분 남짓 달렸다. 겉으로는 평범한 화물 운송처럼 보이지만, 이 트럭이 실은 것은 우주에서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물질 중 하나인 반물질이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산하 BASE(Baryon Antibaryon Symmetry Experiment) 실험팀은 반양성자 92개를 이동식 트랩에 가둔 채 도로로 옮기고, 이후 트랩 안에서 한 달 넘게 손실이 거의 없이 보관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동식 용기에 반양성자를 이만큼 오래 담아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왜 옮기려 했나
반양성자는 양성자와 질량은 같고 전하만 반대인 반물질 입자다. 문제는 반양성자가 우리 몸이나 트럭, 공기 같은 일반 물질에 닿는 순간 서로를 소멸시키며 에너지로 바뀐다는 점이다. 그래서 트랩은 반양성자가 용기 벽에 단 한 번도 닿지 않도록 자기장과 전기장으로 허공에 띄운 채 가둬야 한다. CERN은 그동안 부지 안 반물질 공장에서 반양성자를 만들고 가둬 왔지만, 가속기가 쉴 새 없이 가동되는 환경 특성상 자기장이 미세하게 흔들려 양성자와 반양성자의 성질을 정밀 비교하는 측정의 정확도를 더는 끌어올리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다. 이 때문에 연구팀은 반양성자를 CERN 밖, 자기장이 안정적인 독일 뒤셀도르프의 저잡음(자기장 요동이 적은) 오프사이트 실험실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해 왔고, 이번 도로 시험은 그 첫 단계로 CERN 부지 안에서 실제 이동이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실증이었다.
어떻게 옮겼나
연구팀은 2026년 3월 24일, 자체 개발한 이동식 초전도 페닝트랩(펜닝트랩, 자기장과 전기장으로 하전입자를 진공 속에 가두는 장치) 'BASE-STEP'에 반양성자 92개를 담아 트럭에 싣고 CERN 마이린(스위스 제네바) 부지 내 도로를 왕복시켰다. 이송 거리는 약 8km(출처에 따라 7.5~9.6km로 약간씩 다르게 보도됐다), 주행에는 약 30분이 걸렸다. 장비를 싣고 내리는 과정까지 포함한 전체 작업 시간은 1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로 보도됐다. 트럭의 이동 속도는 시속 42~47km 구간으로, 동네 이면도로에서 흔히 보는 서행 수준이었다. 트랩 무게는 약 1톤 안팎(출처에 따라 850kg~1톤 범위로 보도)으로 소형차 한 대에 가깝고, 내부 초전도자석은 8.2K 이하(약 영하 265도), 액체헬륨 수준의 극저온을 유지해야 한다. 설계상 자체 배터리와 헬륨탱크만으로 이 냉각 상태를 최대 약 4시간까지 유지할 수 있으며, 진공도 역시 설계 목표치보다 훨씬 뛰어난 수준을 달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송을 마친 반양성자는 정상적으로 작동을 재개했고, 트랩 안에서 한 달 이상 손실이 거의 없이 저장·조작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이번 반양성자 시험에 앞서 2024년 10~11월, 반응성이 없어 다루기 쉬운 일반 양성자로 같은 장비와 같은 경로를 먼저 시험했다. 다루기 쉬운 물질로 장비와 물류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먼저 확인한 뒤, 소멸 위험이 있는 반양성자로 재현하는 2단계 검증을 거친 셈이다.
다음 목표와 남은 과제
이번 실증의 최종 목표는 CERN에서 만든 반양성자를 독일 뒤셀도르프까지 옮겨, 기존보다 최소 100배 향상된 정밀도로 양성자와 반양성자의 성질을 비교하는 것이다. 현재 양성자 쪽 측정 정밀도는 약 0.3ppb(10억분의 0.3), 반양성자 쪽은 약 1.5~1.6ppb 수준인데, 두 값이 정말 완전히 같은지를 지금보다 훨씬 정밀하게 다시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성과는 어디까지나 CERN 부지 안에서의 짧은 왕복 시험이며, 실제 목표인 CERN-뒤셀도르프 간 장거리 이송(예상 8~10시간)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장비의 자체 전원 지속 시간이 목표 이송 시간보다 짧아, 추가 냉각 장비 개발 등 엔지니어링 보완이 더 필요하다는 게 연구팀 설명이다. 목적지에 반양성자를 손실 없이 내려서 이송하는 과정 자체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장 큰 과제로 꼽힌다. 참고로 같은 연구팀은 별도의 고정식 저장 트랩에서 반양성자를 400일대에서 600일대까지 연속으로 가둬 둔 장기 보관 기록도 갖고 있는데, 이는 이번 이동식 트랩·도로 이송 성과와는 다른 장치의 기록이다.
왜 중요한가
우주가 처음 생겨날 때 물질과 반물질은 똑같은 양으로 만들어졌어야 했지만, 지금 우주에는 물질만 남아 있다. 이를 물질-반물질 비대칭 문제라고 부른다. 양성자와 반양성자의 성질이 정말로 완전히 같은지를 지금보다 훨씬 정밀하게 다시 재보는 작업은, 반물질이 사라진 이유를 밝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이번 이송 성공은 그 정밀 비교를 CERN 밖 조용한 실험실에서 수행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자료: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BASE 실험 협력팀,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교 뒤셀도르프, 막스플랑크 핵물리연구소, 유럽연구위원회, 독일연구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