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토성 남극에 나타난 '데카곤(10각형)' 대기파동 — 40년 된 북극 육각형과 극과극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9.28 06:45
허블 우주망원경과 지상 망원경이 함께 포착한 새로운 기하학 무늬, 형성 원인은 여전히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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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NASA·ESA·STScI·A. Sánchez-Lavega (UPV)·A. Simon (N, CC BY 4.0)

토성 남극 하늘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별 모양으로 깎인 거대한 무늬가 떠 있다. 꼭짓점이 10개인 이 무늬 '데카곤(decagon)'이 허블 우주망원경과 지상 망원경들의 공동 관측으로 처음 확인됐다. 스페인 바스크국립대학교(UPV/EHU) 아구스틴 산체스-라베가 교수가 이끄는 13인의 국제 공동연구진은 이 결과를 2026년 9월 2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했다. 토성 북극에 40여 년째(정확히는 1980~81년 보이저 탐사선이 처음 포착한 이후 약 45년째) 그대로 자리 잡고 있는 '육각형' 무늬와 비교되는 발견이다.

지구보다 큰 별 모양, 그런데 거의 멈춰 있다

데카곤은 남위 약 53도~66도 사이, 중심으로는 남위 63도(적색광 관측 기준. 메탄 흡수 파장대 관측으로는 남위 60.5도) 부근에서 관측됐다. 꼭짓점 사이 한 마디의 길이(자오선 방향 평균 파장)는 1만6,782㎞(오차 ±1,100㎞)로, 지구 지름(약 1만2,742㎞)보다 길다. 무늬 하나의 변이 지구를 통째로 삼킬 만한 크기라는 뜻이다. 남북으로 출렁이는 폭(진폭)은 2.7도, 거리로는 약 2,645㎞에 이른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속도다. 이 별 모양 무늬 자체는 동쪽으로 초속 2.5m, 시속으로 환산하면 약 9㎞의 느긋한 속도로 움직인다. 반면 무늬가 걸쳐 있는 대기 밑바탕의 제트류(강한 띠 모양 바람)는 초속 116m, 시속으로 약 417㎞에 이른다. 고속철도보다 빠른 바람이 쉼 없이 흐르는 그 위에서, 무늬 자체는 사실상 정지한 것처럼 얌전히 떠 있는 셈이다. 무늬의 10개 꼭짓점은 각각 평균 32.5일(개별 꼭짓점마다 32일~43일 범위) 주기로 경도상 앞뒤로 진동하며, 그 흔들림의 폭은 평균 4.6도, 크게는 8.4도까지 벌어진다. 이 무늬는 기압으로 따져 약 10밀리바~2바 범위의 대기층에서 관측되며, 토성의 구름층 자체는 대략 500밀리바 부근에 있다.

40년째 그대로인 북극, 2~3년 만에 뚜렷해진 남극

토성 북극의 육각형은 1980~1981년 보이저 1·2호가 처음 포착한 뒤 위도 약 78.5도 부근에서 형태와 위치가 거의 변하지 않은 채 약 45년째 유지되고 있다. 그 아래를 흐르는 제트류 풍속은 초속 100m 안팎이다. 반면 데카곤은 2023년 관측 당시만 해도 희미한 흔적에 불과했다가, 2024년과 2025년으로 갈수록 눈에 띄게 뚜렷해졌다. 같은 행성의 양쪽 극이 하나는 40여 년을 버틴 고정된 무늬를, 다른 하나는 불과 2~3년 새 급격히 발달한 무늬를 각각 갖고 있는 셈이다.

연구진은 데카곤 인근 남위 약 55도 부근에서 2023년 처음 나타나 초속 23m로 이동하던 반시계방향의 어두운 소용돌이(폭풍)에 주목한다. 이 소용돌이는 2025년 들어 급격히 어두워졌는데, 연구진은 이것이 데카곤을 만든 초기 교란 요인, 즉 '방아쇠'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다만 이는 연구진이 검토한 세 가지 형성 가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나머지 두 가설은 제트류 정점 부근에서 일어난 공간적 주기 교란, 그리고 파수 10짜리 섭동이 빠르게 불안정해지며 자라났을 가능성이다. 문제는 세 가설이 예측하는 무늬의 이동 속도(초속 46~88m)가 실제 관측된 속도(초속 2.5m)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얕은 물(shallow-water) 방정식을 이용한 시뮬레이션으로 난류 속에서 데카곤과 비슷한 무늬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였지만, 이 모델은 열역학이나 대기 층화, 수직 방향 운동을 반영하지 못하는 단순화된 모델이라는 한계를 연구진 스스로 인정했다.

'새로 생긴 것'과 '이제야 보인 것'은 다르다

이 발견에서 짚어야 할 대목은 관측의 공백기다. 토성 남극은 2012년 무렵부터 지구에서 보기 어려운 각도로 기울어져 있다가 2023년에야 다시 관측 가능한 각도로 돌아왔다. 게다가 2017년 토성 탐사선 카시니의 임무가 끝난 뒤로는 토성 궤도를 도는 탐사선이 하나도 없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의 행성과학자 완잉 캉은 이런 관측 공백을 짚으며, 토성처럼 크고 자전이 빠른 행성(자전주기 약 10.7시간)에서는 원래 이런 띠 모양의 제트류 무늬가 잘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배경을 함께 설명했다. 즉 데카곤이 2023년부터 완전히 새로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있었지만 그동안 볼 수 없었을 뿐인지는 아직 누구도 확실히 답하지 못한다. 목성에서는 이와 비슷한 극지방 다각형 무늬가 관측된 적이 없다는 점도 풀리지 않은 질문으로 남아 있다.

연구진도 조심스러운 '진행형' 발견

공동연구자인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의 에이미 사이먼은 데카곤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육각형 제트류에 비해 변화가 훨씬 심해 보인다며, 이 무늬가 앞으로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가설을 세우는 데 조심스럽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공동연구자인 미국 UC버클리의 마이클 웡은 형성 원인을 확실히 규명하려면 3차원 구조를 반영한 더 정밀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관측에는 허블 우주망원경의 광시야카메라3(WFC3)를 이용한 장기 관측 프로그램 '오팔(OPAL)'과 함께 스페인 칼라르 알토 천문대의 플래닛캠, 유럽남방천문대(ESO)의 초대형망원경(VLT)에 장착된 비지어(VISIR) 장비, 그리고 아마추어 관측 자료까지 동원됐다. 40여 년간 자리를 지켜온 북극 육각형과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낸 남극 데카곤이 같은 행성 위에서 어떻게 이렇게 다른 운명을 갖게 됐는지, 그 답을 찾는 후속 관측과 연구가 이어질 전망이다.

자료: 스페인 바스크국립대학교(UPV/EHU), NASA,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UC버클리, 유럽남방천문대(ESO), 칼라르 알토 천문대, Science Advances(미국과학진흥협회·AA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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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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