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표준’은 규격을 넘어 질서가 되는가

유일혁 기자 · 입력 2026.10.07 19:13 · 수정 2026.10.07 20:10
신간 『중국적 표준은 가능한가』, 역사·기술·통치가 얽힌 표준화 전략을 비판적으로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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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의 크기와 성능을 맞추는 기술 규격이 한 국가의 산업정책과 국제질서까지 움직일 수 있을까. 장정아·전인갑·정주영·안치영·구자선 등 11명이 쓴 『중국적 표준은 가능한가: 비판적 고찰과 전망』은 중국이 기존 국제질서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중국적 표준’이 무엇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지를 살핀 책이다.

사회평론아카데미가 펴낸 이 책은 348쪽 분량이다. 국립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중국·화교문화연구소 인문한국플러스사업단이 수행한 ‘중국적 질서와 표준의 재구성에 대한 비판적 연구’의 성과를 묶어 2026년 8월 출간했다. 분석 범위는 역사적 권역 질서와 현대화 담론에서 출발해 군사·기업 거버넌스, ESG, 기술, 철도, 법 제도로 이어진다. 거버넌스는 국가나 기업이 의사를 결정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을 뜻하며, ESG는 환경·사회·지배구조를 함께 고려하는 경영 기준이다.

중국 정부가 말하는 표준은 단순한 제품 규격에 머물지 않는다. 산업과 기술, 무역, 행정, 사회통치를 연결하는 ‘국가의 기초 제도’로 규정된다. 표준을 누가 만들고 어떤 지역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제품의 생산 방식뿐 아니라 시장 진입 조건과 행정 절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책이 ‘중국적 표준’을 기술 문제만이 아니라 질서의 문제로 다루는 배경이다.

관련 정책은 단계적으로 확대됐다. 중국은 2015년 ‘표준연계 일대일로 행동계획(2015~2017)’을 통해 중국 표준의 해외 진출과 상호인정을 추진하고, 국가·산업표준 500건을 외국어로 번역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2018~2020년 계획에서는 5G와 스마트시티, 기반시설 표준을 일대일로 연선국에 적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2021년 발표한 ‘국가표준화발전강요’에서는 인공지능·양자정보·바이오·빅데이터·블록체인·고속철도·신에너지차까지 대상 분야를 넓혔다.

발전강요에는 구체적인 숫자도 담겼다. 2025년까지 국가표준을 만드는 데 걸리는 평균 기간을 18개월 이내로 줄이고, 국제표준 전환율을 85% 이상으로 높이도록 했다. 국가기술표준혁신기지는 50곳 이상 조성하고, 공통·핵심 기술과 응용 분야의 과학기술 사업 가운데 표준 연구성과가 나오는 비율은 50% 이상으로 설정했다. 연구 결과가 논문이나 시제품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산업에서 함께 사용할 기준으로 연결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해외 협력도 표준화 전략의 한 축이다. 중국 정부가 2019년 공개한 일대일로 진전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중국은 49개 국가·지역과 85건의 표준화 협력협정을 체결했다. 다만 중국의 전략을 국제표준과 완전히 분리된 독자 규격의 확산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발전강요에는 국제표준 채택과 중국·외국 표준의 상호인정, 외국계 기업의 표준 제정 참여, 국제표준 체계와의 호환도 함께 명시돼 있다.

국제표준화기구의 회원 현황에서도 중국 국가표준화관리위원회는 정회원으로 797개 기술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 국가기술표준원은 764개 기술위원회에 참여한다. 기술위원회는 각 분야의 국제표준을 논의하고 만드는 작업 단위다. 이 수치는 중국이 별도의 체계만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국제표준을 만드는 과정에도 폭넓게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중국적 표준’은 하나의 고정된 규격이라기보다 국내 통치와 산업정책, 국제표준 참여, 해외 확산이 동시에 맞물리는 과정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중국의 표준화가 역사 인식과 현대의 기술·제도에 걸쳐 어떤 질서를 만들려 하는지 여러 분야를 통해 검토한다는 점에서, 표준을 기술자의 영역을 넘어 국제관계와 사회 변화의 관점에서 이해할 단서를 제공한다.

자료: 국립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중국·화교문화연구소, 중화인민공화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중앙인터넷안전정보화위원회 판공실, 국제표준화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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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혁 기자 ih.yoo@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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