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수년 전 ‘면역 안개’ 포착…전암 병변 진행 가려낼 단서

폐암이 모습을 드러내기 수개월에서 수년 전, 혈액과 폐 조직에서 면역체계의 이상 신호가 먼저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암세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비정상 세포를 제거해야 할 면역반응이 점차 흐려지는 현상으로, 앞으로 위험한 전암성 병변을 골라내고 암 발생 전에 개입할 단서가 될 수 있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연구진은 폐암 감시·검진 연구 참여자의 혈액과 폐 조직을 장기간 분석해 특정 조절 T세포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확인했다. 조절 T세포는 면역반응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누르는 세포다. 평소에는 과도한 염증과 자가면역질환을 막지만, 전암 단계에서는 다른 면역세포의 공격까지 억제해 비정상 세포가 살아남도록 도울 수 있다. 연구진은 이를 면역체계의 시야를 가리는 ‘면역 안개’에 비유했다.
연구 대상은 폐암 전체를 한꺼번에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비소세포폐암으로 진행하는 전암성 기도 병변에서 나타나는 변화다. 연구진은 단일세포 RNA 분석, T세포수용체 분석, 공간 전사체 분석, 유세포분석과 생쥐 기능실험을 결합했다. 그 결과 고등급 전침윤성 기도 병변에는 BATF를 발현하는 억제성 효과기 조절 T세포가 축적됐다. 혈액에서는 이 세포들과 같은 클론 계통으로 연결된 CD39 양성 효과기 조절 T세포가 늘면서 비소세포폐암 진행을 추적하는 양상을 보였다.
전암성 병변은 암이 되기 전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세포 변화지만 모두 침윤암으로 진행하지는 않는다. 선행 연구에서는 겉으로 비슷한 기도 전암성 병변 가운데 약 절반만 침윤암으로 진행하고, 나머지는 사라지거나 양성 상태로 남을 수 있다고 제시됐다. 따라서 병변을 발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 진행 위험이 큰 사람을 구별할 생체표지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특정 조절 T세포의 변화를 측정하는 연구용 시제품 혈액검사도 개발했다. 이 접근은 저선량 흉부 컴퓨터단층촬영, 즉 방사선량을 낮춘 CT로 결절을 찾은 뒤 어떤 병변을 더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지 판단하는 연구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검사 정확도와 특이도, 임상 적용 기준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으며 일반 진료용으로 승인된 검사도 아니다.
생쥐 실험에서는 발암물질로 폐 종양 발생 과정을 유도하는 것만으로 혈액과 배액 림프절의 효과기 조절 T세포가 증가했다. 이 세포들은 기관지 주변의 미성숙 3차 림프조직에도 자리 잡았다. 약물로 해당 면역회로에 개입하자 폐종양이 생긴 동물의 비율은 대조군의 약 절반으로 줄었고 큰 종양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동물실험 결과로, 사람에게서 조절 T세포 증가가 폐암의 직접 원인이라는 뜻이나 실제 예방 효과가 입증됐다는 뜻은 아니다.
논문에 활용된 ASCENT 자료에는 CT 검진으로 발견된 초기 비소세포폐암 환자 89명의 종양 RNA 시퀀싱 자료가 포함됐으며 선암과 편평세포암을 아울렀다. 영국 폐암 환자의 약 80~85%는 비소세포폐암이다. 5년 생존율은 1기에서 60% 이상이지만 4기에서는 10% 미만이어서, 조기에 병변을 찾고 진행 위험과 예방적 개입 대상을 가려내는 ‘암 발생 차단’ 연구의 필요성이 크다.
연구 결과는 ‘폐암 차단을 위한 전침윤성 조절 T세포 축’이라는 제목으로 2026년 10월 7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온라인 공개됐다. 연구비는 영국암연구소와 영국 연구혁신기구 산하 의학연구위원회가 주로 지원했으며 국립보건의료연구원 등이 추가로 지원했다.
자료: University College London, Nature, UK Research and Innovation Medical Research Council, Cancer Research UK, 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and Care Researc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