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세상에 단 한 명을 위한 유전자 치료제…6개월 만에 아기의 DNA를 고쳐 쓰다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7.23 16:16 · 수정 2026.09.07 10:56
130만 명에 한 명꼴 CPS1 결핍증 아기의 간세포 DNA 철자 하나를 되돌린 CHOP·펜실베이니아대…1년 뒤 아이는 걷기 시작했고, FDA는 초희귀질환 맞춤치료 허가 틀을 새로 짰다
[기획] 세상에 단 한 명을 위한 유전자 치료제…6개월 만에 아기의 DNA를 고쳐 쓰다
맞춤형 유전자 치료가 이뤄진 미국 필라델피아 아동병원(CHOP) 본원 (사진 출처=Wikimedia Commons, ajay_suresh, CC BY 2.0)

생후 이틀, 아기의 핏속 암모니아가 정상 상한의 30배를 넘었다. 간이 단백질 찌꺼기를 요소로 바꿔 내보내지 못한 탓이었다. 미국 필라델피아 아동병원(CHOP)과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연구팀은 이 아기의 DNA에서 잘못 찍힌 철자 하나를 찾아냈고, 오직 그 하나를 겨냥한 약을 세상에 단 한 명을 위해 만들었다.

연구팀은 지난해 5월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이 치료 경과를 실었다. 원인 변이 확인에서 설계·제조를 거쳐 첫 주사까지 걸린 시간은 6개월이었다. 신약 하나가 세상에 나오는 데는 보통 10년이 넘게 걸린다. 환자가 한 명뿐인 약을, 그 한 명이 자라기를 기다릴 수 없는 속도로 만들어낸 셈이다.

기다려 줄 시간이 없는 병

아기 KJ의 병은 카바모일인산 합성효소1(CPS1) 결핍증이다. 간에서 암모니아를 요소로 바꿔 소변으로 내보내는 '요소회로'가 태어날 때부터 고장 난 상태다. NEJM 논문은 130만 명에 한 명꼴로 나타난다고 적었다. 우리나라 인구 약 5,100만 명에 단순 대입하면 마흔 명 안팎이다. 신생아기에 증상이 나타나는 중증형은 영아기 초기 사망률이 50%로 추정된다.

KJ는 생후 48시간 안에 처지고 숨이 가빠졌다. 혈중 암모니아는 1,000μmol/L을 넘었다. 정상 범위 상한이 33μmol/L이다. 곧바로 지속적 신대체요법(혈액을 걸러내는 투석)에 들어갔고, 이후에는 저단백 식이와 암모니아를 우회 배출시키는 질소제거제로 버텼다.

근본 치료는 간이식뿐이다. 문제는 몸이 수술을 견딜 만큼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데 있다. 그사이 한 번의 고암모니아혈증 위기가 영구적인 뇌 손상이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KJ도 생후 50~100일의 '허니문' 기간이 끝나자 수치가 나빠졌고, 5개월째에 간이식 대기자로 올랐다.

자르지 않고, 철자만 바꿔 쓰다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는 DNA 이중나선을 통째로 끊고 세포의 수선 반응을 유도한다. 이미 허가된 겸상적혈구병 치료제가 그 방식인데, 두 가닥을 다 자르는 만큼 예기치 않은 결실이나 재배열의 위험을 안는다.

연구팀이 쓴 것은 그다음 세대 도구인 염기편집(base editing)이다. DNA를 이루는 네 글자(A·T·G·C) 가운데 하나를 다른 글자로 조용히 바꿔 쓰는 기술이다. 가위를 한 가닥만 흠집 내도록 개조한 뒤, 특정 염기를 화학적으로 변환하는 효소를 붙인다.

KJ는 아버지에게서 Q335X, 어머니에게서 E714X라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고장 난 CPS1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둘 다 유전 정보 한가운데에 '문장 끝' 신호를 잘못 끼워 넣어 효소 설계도를 도중에 끊어버리는 변이다. 연구팀은 이 중 Q335X를 표적으로 골라, A를 G로 바꾸는 아데닌 염기편집기로 잘못 찍힌 마침표를 지웠다.

편집 도구를 간까지 실어 나른 것은 지질 나노입자(LNP)다. 미세한 지방 방울 안에 편집기 설계도(mRNA)와 표적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 RNA를 담아 정맥으로 넣으면 간세포로 흘러든다. 코로나19 mRNA 백신에 쓰인 것과 같은 계열이다. 바이러스 운반체와 달리 면역 기억이 남지 않아 여러 번 나눠 줄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설계의 핵심이었다. 안내 RNA에는 '카제이가유란(kayjayguran)', mRNA에는 '아벤그세메란(abengcemeran)'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치료제는 둘을 줄여 'k-abe'로 불린다. 약 이름에 아이의 이니셜 KJ가 그대로 들어갔다.

0.1mg/kg으로 시작한 세 번의 주사

연구팀은 KJ가 생후 6개월일 때 단일 환자 확대접근용 임상시험계획(IND)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냈고, 승인은 일주일 만에 나왔다. 원숭이 독성시험에서 안전할 것으로 본 최저 용량 0.1mg/kg이 첫 임상 용량이 됐다. 생후 208일, 첫 정맥주사가 들어갔다. 22일 뒤 0.3mg/kg으로 두 번째 주사를, 지난해 4월까지 모두 세 차례 투약을 마쳤다. NEJM 논문에 실린 것은 두 번째 주사까지의 7주 경과다.

결과는 수치로 남았다. 혈중 암모니아 중앙값은 첫 주사 전 23μmol/L에서 두 주사 사이 9μmol/L로 떨어졌다. 질소제거제(글리세롤 페닐부티레이트)는 처음의 절반으로 줄였고, 단백질 섭취량은 또래 권장량 수준까지 올랐다. 체중은 생후 207일 7.14㎏에서 256일 8.17㎏으로 늘어, 또래 백분위 9번째에서 26번째로 올라섰다. 두 번째 주사 뒤 위장염과 호흡기 감염이 잇따랐지만, 예전과 달리 고암모니아혈증 위기 없이 지나갔다.

KJ는 지난 3월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열린 희귀질환의 날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는 걷기 시작했다. 어머니 니콜 멀둔은 아이가 발달 이정표를 하나씩 넘고 있고 단백질 섭취량도 기대 이상이라고 전했다. 병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중증형이 훨씬 가벼운 형태로 바뀌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그런데도 '완치'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연구를 이끈 레베카 아렌스니클라스 CHOP 유전성 대사질환 유전자치료 프론티어 프로그램 책임자는 "KJ는 평생 세심하게 관찰해야 하겠지만, 초기 결과는 상당히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정작 아기의 간에서 실제로 몇 %의 세포가 교정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알아보려면 간 조직검사를 해야 하는데, 영아에게 위험이 너무 크다고 판단해 미뤘기 때문이다. 동물실험에서는 간 전체의 최대 42%가 교정됐지만, 사람에게서 같은 수치가 나왔다는 증거는 없다. 표적이탈(off-target·엉뚱한 자리를 편집하는 것) 검증에서는 후보 21곳을 개별 확인해 사람 간세포에서 문제를 찾지 못했으나, 배양 세포주에서는 구리 운반체 유전자(ATP7B)의 인트론 부위에서 낮은 수준의 편집이 관찰됐다. 정자·난자로 편집이 전달될 가능성은 평가할 방법 자체가 없었다.

키란 무수누루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지난해 10월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유럽유전자세포치료학회(ESGCT) 학술대회에서 "나는 '완치'라는 단어를 피한다. 과장하지 않을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규제를 다시 짰고, 한국은 올해 4월에야 문을 열었다

더 크게 움직인 쪽은 제도다. FDA는 지난 2월 23일 '초희귀질환 개별 맞춤치료 개발 가속 프레임워크' 초안 지침을 냈다. 환자 수가 적어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이 사실상 불가능한 질환에 대해, 잘 설계된 임상시험 한 건과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만으로 허가를 검토하겠다는 내용이다. 유전자 변이와 질병의 인과가 분명하고, 원인을 직접 겨냥하며, 표적을 실제로 편집했음을 보이는 것 등이 조건이다. 마티 마카리 FDA 청장과 비네이 프라사드 생물의약품평가연구센터장은 지난해 11월 NEJM에 이 구상을 처음 내놓으면서 KJ의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한국도 문은 열렸다.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법(첨생법) 개정안이 지난해 2월 21일 시행되면서 임상연구 대상자 제한이 사라졌고, 연구가 아닌 '치료' 목적의 첨단재생의료가 처음 허용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재생의료기관은 올해 6월 기준 223곳, 승인된 임상연구는 지난해 12월 기준 57건이다.

다만 실제 적용은 세포치료에서 출발했다. 첨단재생의료 치료 제1호는 올해 4월 승인된 자가 면역세포 치료로, EBV 양성 림프절외 NK/T세포 림프종 환자 15명을 대상으로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진행된다. 치료비는 7,600만 원이며, 5년 안에 재발하면 전액을 돌려주는 성과연계 방식이다. KJ가 받은 것과 같은 몸속(생체 내) 유전자치료가 첨단재생의료 범위에 들어온 것은 올해 4월 국회를 통과한 개정안부터다. 복지부는 인체세포 등의 정의에 유전물질을 추가해 생체 내 유전자치료를 범위에 넣었다고 밝혔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임상연구·치료계획 승인 150건 이상을 목표로 내걸었다.

한 명에서 다섯 명으로, 그다음은 비용의 문제

연구팀이 논문에서 강조한 것은 개별 성공이 아니라 부품의 재사용이다. 지질 나노입자와 편집기 mRNA는 공통으로 두고 환자마다 안내 RNA만 갈아 끼우면, 간에서 생기는 수백 가지 선천성 대사질환에 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앞으로의 맞춤 치료에는 원숭이 독성시험을 반복할 필요 없이 세포 실험으로 충분할 수 있다고도 적었다.

다음 단계는 이미 설계돼 있다. 연구팀은 CPS1을 포함한 요소회로장애 7개 유전자를 하나로 묶어 환자 5명을 치료하는 1·2상 우산형 임상시험 계획을 올해 안에 FDA에 제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무수누루 교수는 ESGCT 강연에서 "N-of-1 연구에서 플랫폼 임상시험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남는 것은 결국 돈과 형평의 문제다. k-abe 개발은 NIH 연구비와 여러 기업의 물품·기술 무상 지원, CHOP 자체 프로그램 재원으로 이뤄졌다. 환자가 한 명뿐인 약에는 팔아서 비용을 회수할 시장이 없다. 유전자 편집이 지난 10년간 '무엇이 가능한가'를 증명해 왔다면, 이 아기의 사례가 남긴 물음은 '누구에게까지 닿을 수 있는가'다.

자료: 필라델피아 아동병원(CHOP),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 미국 식품의약국(FDA), 미국 국립보건원(NIH), 유럽유전자세포치료학회(ESGCT), 미국 요소회로장애재단(NUCDF), 보건복지부,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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