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간, 생활습관만의 병 아니었다…생명연, 지방 분해 유전자 끄는 '스위치' 찾았다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7.23 16:27 · 수정 2026.09.07 13:54
한국생명공학연구원, DNA 메틸화 효소 DNMT1이 대사 유전자를 억제해 지방간을 악화시키는 기전 규명…환자 100여 명 간조직·마우스 실험으로 확인
지방간, 생활습관만의 병 아니었다…생명연, 지방 분해 유전자 끄는 '스위치' 찾았다
(사진=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지방간은 오랫동안 '많이 먹고 덜 움직여서 생기는 병'으로 통했다. 그런데 같은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누구는 간이 멀쩡하고 누구는 간섬유화로 넘어가는 이유는 잘 설명되지 않았다. 국내 연구진이 그 갈림길에 놓인 세포 속 '스위치'를 찾아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 노화융합연구단 김미랑 박사 연구팀은 세포 안의 특정 효소가 지방을 분해하는 유전자의 작동을 물리적으로 꺼버리면서 지방간질환이 악화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클리니컬 앤드 몰레큘러 헤파톨로지(Clinical and Molecular Hepatology)' 2026년 7월호에 실렸다.

같은 식습관, 다른 결말…열쇠는 '유전자 스위치'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DNMT1이라는 효소다. DNMT1은 DNA에 메틸기(-CH3)라는 화학 꼬리표를 붙이는 역할을 한다. 이 꼬리표가 유전자의 시작 지점에 잔뜩 달리면 해당 유전자는 '읽히지 않는' 상태가 된다. 유전자 자체는 그대로인데 스위치만 꺼지는 셈으로, 이렇게 DNA 서열은 바꾸지 않고 유전자의 켜짐·꺼짐만 조절하는 현상을 후성유전(에피제네틱스)이라 부른다.

문제는 이 효소가 지나치게 활발해질 때다. 연구진에 따르면 DNMT1이 과활성화되면 지방을 태워 없애는 데 관여하는 핵심 유전자인 PPARα와 HNF4α의 스위치가 꺼진다. 메틸기 꼬리표로 이들 유전자를 침묵시키는 동시에, 유전자를 켜야 할 전사인자(유전자 발현을 여는 단백질)가 DNA에 달라붙는 것까지 물리적으로 가로막는 이중 차단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지방을 분해하는 쪽 스위치가 내려가니 간에는 지방이 쌓이고 염증과 섬유화가 뒤따른다.

환자 100여 명 간조직에서 확인, 마우스에서 되돌렸다

가설에 그치지 않고 실제 환자 조직에서 확인했다는 점이 이번 연구의 무게를 더한다. 연구팀이 지방간질환 환자 100여 명의 간조직을 분석한 결과, DNMT1의 발현이 높은 사람일수록 질환의 중증도가 높게 나타났다. 효소의 활성과 병의 진행이 나란히 움직인 것이다.

방향을 되돌릴 수 있는지도 동물실험으로 살폈다. 연구팀이 지방간을 유도한 생쥐에게 DNMT1의 작용을 막는 억제제(Aza-TdC)를 투여하자, 간에 쌓인 지방과 염증, 섬유화 지표가 함께 줄었다. 꺼져 있던 대사 유전자의 스위치를 다시 올리면 간 상태가 개선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결과다.

이번 연구가 겨냥한 질환은 대사이상 지방간질환(MASLD)이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간에 지방이 과도하게 축적되는 병으로, 방치하면 간섬유화와 간경변, 간암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유전자 수준에서 병이 왜 진행되는지는 그동안 명확하지 않았다.

생활습관 너머의 치료 표적

김미랑 박사는 "이번 연구는 지방간질환의 원인을 생활습관만이 아니라 유전자 조절 시스템 변화로 설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DNMT1을 표적으로 삼는 새로운 치료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이번 성과가 곧바로 치료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환자 조직에서 상관관계를 확인하고 생쥐에서 개선 효과를 봤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안전성과 효능 검증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 실험에 쓰인 억제제가 그대로 치료제가 되는 것도 아니어서, DNMT1을 정교하게 겨냥하는 후보물질 발굴과 임상이 뒤따라야 한다.

이번 연구는 생명연 주요사업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세대바이오사업,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융합연구단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자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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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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