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면역치료의 무덤' 췌장암, 맞춤 mRNA 백신이 6년을 버텼다
![[기획] '면역치료의 무덤' 췌장암, 맞춤 mRNA 백신이 6년을 버텼다](https://news.minisong.shop/media/articles/2026/07/balachandran-aacr_0.jpg)
(사진=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 제공)
진단받은 환자 열에 아홉 가까이가 목숨을 잃는 암이 있다. 췌장암이다. 수술로 종양을 떼어내도 대개 1년 남짓이면 재발하고, 지난 십수 년 암 치료의 판도를 바꾼 면역항암제도 이 병 앞에서는 번번이 무력했다. 그런데 자기 종양에 맞춰 만든 mRNA 백신으로 면역이 깨어난 환자들은 달랐다. 백신에 반응한 여덟 명 가운데 일곱 명이 수술 후 4~6년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MSK)가 독일 바이오엔테크, 로슈 계열 제넨텍과 함께 진행한 임상 1상의 기록이다. 첫 결과는 2023년 5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3년 넘게 추적한 후속 데이터는 지난해 2월 같은 저널에 실렸다. 여기에 지난달 같은 계열인 머크·모더나의 흑색종 맞춤 백신이 3상 문턱을 넘으면서, '개인 맞춤 mRNA 암백신'이라는 접근법 전체가 검증의 갈림길에 섰다.
표적이 적다면, 그 몇 개를 정밀하게 겨눈다
췌장암이 '면역치료의 무덤'으로 불려 온 것은 종양이 면역세포 눈에 잘 띄지 않아서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에 없는 돌연변이 단백질, 곧 신항원(면역계가 이물질로 알아볼 수 있는 암 특유의 표지)을 지니지만, 췌장암은 그 수가 적고 면역을 억누르는 장벽까지 두껍다. 돌연변이가 많은 흑색종에서 먼저 성과를 낸 백신 전략이 이 병에서 번번이 막힌 배경이다.
MSK 연구진은 발상을 뒤집었다. 표적이 적다면, 환자마다 다른 그 몇 개를 정밀하게 겨누자는 것이다. 수술로 떼어낸 종양의 유전자를 읽어 면역 반응을 일으킬 만한 돌연변이를 최대 20개까지 고르고, 그 설계도를 mRNA에 담아 지질 입자로 감싸 접종한다. 몸속 세포가 설계도대로 암 단백질 조각을 만들어 내걸면, 킬러 T세포가 같은 표지를 단 암세포를 찾아 없애는 원리다. 환자 16명은 수술 뒤 먼저 면역관문억제제 아테졸리주맙(암세포가 면역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게 막는 약)을 맞고, 이어 각자의 백신인 '오토진 세부메란'과 표준 항암화학요법을 받았다. 수술에서 첫 접종까지 걸린 시간은 중간값 9.4주. 환자마다 다른 백신을 그때그때 설계·생산해 두 달여 만에 접종까지 마친 셈이다.
절반에서 켜진 면역, 수명 7.7년의 기억
16명 중 8명에게서 백신 신항원을 겨누는 T세포가 대량으로 만들어졌다. 많게는 혈중 전체 T세포의 10%까지 불어났는데, 접종 전에는 검출되지 않던 세포들이다. 반응자 절반은 백신에 담긴 신항원 여러 개를 동시에 겨눴다. 후속 논문에서 세포 계보를 추적하니 대상 클론 79개 가운데 접종 전부터 있던 것은 2.5%뿐, 나머지 97.5%는 백신이 새로 만든 것이었다. 클론의 86%(중간값)는 접종 약 3년 뒤에도 혈액에 남아 있었고, 추정 수명은 평균 7.7년 — 짧게는 1.5년, 길게는 100년이었다. 한 번 새겨진 기억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억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중간값 3.2년을 추적한 시점에 반응군 8명은 무재발 생존기간(재발 없이 지낸 기간) 중간값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절반이 재발하는 지점을 3년 넘게 넘기지 않았다는 얘기다. 반응하지 않은 8명은 13.4개월에 그쳤다(P=0.007). 18개월 추적의 첫 논문에서 나타났던 격차가 3년을 넘겨서도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MSK에 따르면 수술 후 4~6년이 지난 시점에 반응군은 8명 중 7명이 생존한 반면 비반응군은 2명뿐이었고, 비반응군의 생존기간 중간값은 3.4년이었다. 임상을 이끈 비노드 발라찬드란 MSK 박사는 "이 초기 결과는 새로운 면역치료 접근법이 가장 치명적인 암 가운데 하나에서 변화를 만들어낼 잠재력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흑색종은 3상 통과, 대장암은 중단…갈리는 성적표
개인 맞춤 mRNA 암백신의 성적은 지금 종양별로 갈리고 있다. 머크와 모더나는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절제 수술을 받은 흑색종 환자 1,089명의 3상에서 맞춤 백신 '인티스메란 오토진'과 펨브롤리주맙 병용이 1차 지표인 무재발 생존과 원격 전이 없는 생존을 모두 충족했다고 발표했다. 개인 맞춤 백신이 대규모 무작위 3상에서 효과를 입증한 것으로, 두 회사는 폐암에서도 868명 규모 3상을 진행 중이다.
반면 바이오엔테크는 지난달 대장암 2상을 중단했다. 백신 '단독' 투여를 시험했는데, 독립 데이터감시위원회가 치료군 간 전체 생존의 수치적 불균형을 확인했고 계속해도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면역학적으로 '차가운' 종양에서 백신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교훈이다. 바이오엔테크는 병용요법으로 설계된 췌장암 2상은 영향 없이 계획대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췌장암의 진짜 시험대가 바로 그 2상이다. 제넨텍 주관으로 절제 수술을 받은 환자 260명을 백신+아테졸리주맙+화학요법군과 화학요법 단독군으로 나눠 비교하며, 11개국 107개 기관에서 환자를 모으고 있다. 1차 지표는 무병 생존기간, 종료 예상 시점은 2031년이다.
국내 병원 일곱 곳도 이미 같은 시험대에
이 시험대에는 한국도 올라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 임상시험 등록정보(9월 2일 갱신 기준)를 보면 국립암센터,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분당차병원 등 국내 7개 병원이 참여 기관에 이름을 올렸고, 이 가운데 다섯 곳은 환자 모집을 이미 마쳤다. 국내 췌장암 환자들이 이 검증의 최전선에 함께 서 있는 셈이다.
다만 국내의 mRNA 투자는 아직 감염병 대비에 무게가 실려 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해 4월부터 총 5,052억 원 규모(정부 재정 3,379억 원)의 '팬데믹 대비 mRNA 백신 개발 지원사업'을 가동해 2028년까지 국산 코로나19 mRNA 백신 상용화와 '100~200일 내 신속 개발' 플랫폼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에서 GC녹십자가 임상 2상 단계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고, 아이진 컨소시엄은 정부 지원 65억 원으로 자가증폭 mRNA 백신 1상에 들어간다.
내년 예산안에는 올해 264억 원보다 53% 늘어난 405억 원이 편성됐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mRNA 백신·치료제 및 AI 기반 R&D 혁신"으로 핵심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감염병 백신으로 플랫폼을 다지는 단계로, 환자마다 다른 백신을 몇 주 안에 설계·생산하는 개인 맞춤 암백신 역량은 그다음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남은 절반의 숙제, 그리고 준비의 시간
물론 이것은 16명, 그중 절반만 반응한 초기 임상이다. 왜 나머지 절반에서는 T세포가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반응률을 어떻게 끌어올릴지는 아직 답이 없다. 연구진도 무작위 2상이 재현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선을 긋는다.
그래도 공개된 진단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또렷하다. 첫째, 백신은 단독 무기가 아니다. 바이오엔테크의 대장암 중단이 보여주듯 면역이 잠든 종양에서는 면역관문억제제·화학요법과의 병용 설계가 관건이고, MSK 임상도 처음부터 3중 병용이었다. 둘째, 속도가 곧 치료다. 수술 후 두 달여에 개인별 백신을 만들어 접종한 제조 역량이 이 임상의 전제였고, 질병관리청 역시 사전 준비 없이는 100~200일 내 신속 개발이 불가능하다며 플랫폼 확보를 앞세운다. 셋째, 답은 무작위 시험에서 갈린다. 흑색종 3상 성공과 대장암 2상 중단이 한 달 사이에 나온 것처럼, 췌장암의 답도 2031년을 향해 가는 260명 임상이 낼 것이다. 미국 기준 5년 생존율이 13% 안팎에 머무는 이 병에서, 16명이 남긴 몇 년의 기록은 그 답을 기다릴 이유로 충분하다.
자료: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 네이처, 바이오엔테크, 제넨텍, 머크·모더나, 미국 국립보건원 임상시험 등록정보(ClinicalTrials.gov), 질병관리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