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젠투펭귄은 사실 4형제였다 — 켈러겔런제도서 신종 펭귄 Pygoscelis kerguelensis 확인
남극과 그 주변 섬들을 뒤뚱거리며 걸어다니는 젠투펭귄. 겉모습이 다 똑같아 보이는 이 펭귄이 사실은 서로 다른 혈통을 지닌 4개의 종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00년 넘게 하나의 종으로 불려온 젠투펭귄(기존 학명 Pygoscelis papua)을 유전자 지도로 다시 들여다본 국제 공동연구팀은 이 가운데 프랑스령 켈러겔런제도에 사는 무리를 신종 Pygoscelis kerguelensis(남동부 젠투펭귄)로 새로 이름 붙였다. 겉으로는 한 형제인 줄 알았던 펭귄들의 실제 정체가 100년도 더 지나서야 드러난 셈이다.
100년 넘게 풀리지 않은 분류 논쟁
칠레대학교, 칠레 안드레스베요국립대학교,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UC버클리) 등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Communications Biology에 발표했다. 연구 공동 교신저자는 "펭귄 중 젠투펭귄만큼 분류학이 100년 넘게 논쟁적인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젠투펭귄은 포클랜드제도부터 남극반도, 사우스조지아섬, 크로제·마리온·매쿼리섬, 그리고 남인도양 한복판의 켈러겔런제도까지 남극해 곳곳에 흩어져 서식하는데, 이 넓은 분포 지역의 개체군들이 정말 같은 종인지를 두고 학계 의견이 오랫동안 갈려 있었다.
이번이 "4종 분할" 주장이 처음 제기된 것도 아니다. 2020년에도 다른 연구팀이 젠투펭귄을 4개 종으로 나누자는 제안을 내놓은 바 있다. 다만 그때는 사우스조지아섬 개체군을 신종으로 지목했고 켈러겔런 개체군은 기존 이름을 그대로 썼다는 점에서, 이번 2026년 연구와 신종의 위치와 이름이 서로 다르다. 당시 국제조류학회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도 독립된 '종'이 아니라 '아종' 4개로만 등재했다. 같은 결론(4종 분할)에 두 차례 서로 다른 연구팀이 도달했지만 세부 경계는 여전히 합의되지 않은 셈이다.
펭귄 64마리의 유전자가 밝혀낸 은폐된 차이
연구팀은 10개 번식지에서 채집한 펭귄 64마리의 전장유전체를 분석해 게놈 곳곳에 흩어진 수천 개의 단일염기다형성(SNP·개체마다 DNA 염기 하나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지점으로, 이런 차이를 대량으로 비교하면 개체군 간 혈통이 얼마나 갈라졌는지 가늠할 수 있다)을 비교했다. 여기에 깃털색·울음소리·번식 시기·먹이행동 등 형태와 행동 데이터를 함께 분석한 결과, 북부·남부·남동부·동부라는 4개의 독립된 진화계통이 뚜렷이 갈라져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계통 간 유전적 분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FST값(0에 가까울수록 두 집단이 유전적으로 섞여 있고, 1에 가까울수록 완전히 갈라져 있다는 뜻이다)은 0.1~0.3으로 나타나 뚜렷한 분화를 보였다. 이들 계통이 공통 조상에서 갈라지기 시작한 시점은 중기 플라이스토세, 약 80만 년 전으로 추정됐다.
새로 이름 붙은 켈러겔런제도 개체군은 다른 젠투펭귄과 외형이 거의 같아 몸 크기와 울음소리의 미세한 차이 외에는 육안으로 구분하기 사실상 불가능한 "은폐종(겉모습만으로는 구분이 안 되지만 유전적으로는 명백히 다른 종)"으로 확인됐다. 신종 학명의 근거가 된 모식표본은 1897년 12월 31일 켈러겔런섬에서 채집된 개체로, 100년 넘게 보관돼 있다가 이번 유전체 분석을 통해서야 별도 종임이 밝혀졌다. 켈러겔런제도는 사람이 상시 거주하는 가장 가까운 육지까지 약 3,300km(서울-도쿄 거리 약 1,150km의 세 배 가까이) 떨어져 있고, 무인도까지 포함해 가장 가까운 육지인 허드·맥도널드섬까지도 약 470km(서울-부산 약 325km보다 먼 거리)나 되는 외딴 곳이다. 이 섬에 신종이 서식할 가능성이 있는 허드섬까지 실제로 서식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은 추정 단계다.
확정된 4개 종과 전 세계 개체수 비중은 다음과 같다. 남극반도·남극연안·사우스조지아섬에 사는 남부종 Pygoscelis ellsworthi가 약 65%로 가장 많고, 포클랜드·마르티요섬의 북부종 P. papua가 약 24%, 켈러겔런섬의 신종 P. kerguelensis가 약 9%, 크로제·마리온·매쿼리섬의 동부종 P. taeniata가 약 2%를 차지한다.
4형제로 나뉘자 갈리는 기후변화의 명암
4종으로 나뉘자 기후변화 앞에서 이들의 운명이 크게 갈린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연구팀이 기후모델로 2050년까지의 서식지 적합도를 예측한 결과, 남극반도에 사는 남부종만 서식지가 오히려 넓어질 가능성이 있는 반면, 신종을 포함한 섬 서식 3개 종(남동부·북부·동부)은 완만한 온난화 시나리오만으로도 현재 서식하는 섬 대부분에서 적합한 서식지를 잃을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동부종은 서식 가능 공간이 거의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예측됐다. 다만 연구팀은 이 전망을 "멸종에 대한 확정적 예측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공식 인정은 아직, 남은 과제
이번 연구로 젠투펭귄의 4종 분할이 다시 한 번 학계 테이블에 올랐지만, 국제조류학회 등 공식 분류기구가 이를 정식 '종'으로 승인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2020년의 유사한 4종 분리 제안이 이듬해 '아종'으로만 등재됐던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 제안도 같은 경로를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연구팀 스스로도 사우스조지아·매쿼리 등 일부 번식지에 대해서는 개체군 수준 데이터가 부족했고, 형태 비교에 쓰인 표본 수도 제한적이었다고 인정했다.
연구 공동 교신저자는 "관련국 보전기관들이 이 세 젠투펭귄 종을 지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인식하고 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겉모습만으로는 여전히 구분되지 않는 이 은폐종들이 실제로는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걸어왔고, 그 갈림길 끝에서 기후변화라는 전혀 다른 미래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연구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다.
자료: 칠레대학교(Universidad de Chile), 칠레 안드레스베요국립대학교(Universidad Andrés Bello),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UC Berkeley), 태즈메이니아대학교, 영국남극조사단(British Antarctic Surv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