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5밀리초의 마법 — 근육 없는 단세포 생물이 칼슘 이온만으로 몸을 접는다

눈을 한 번 깜빡이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몸을 접는 생물이 있다. 보도자료는 눈 깜빡임 대비 약 200배 빠르다고 비유했고, 다른 계산은 20~30배 빠르다고 추산한다. 근육 한 올 없는 단세포 생물, 담수에 사는 섬모충 스피로스토뭄 암비구움(Spirostomum ambiguum)이다. 자극을 받으면 이 생물은 5밀리초도 안 되는 순간에 몸길이를 크게 줄인다. 알려진 생물 운동 중 손꼽히게 빠른 축에 속한다. 미국 연구진이 이 초고속 수축의 분자적 비밀을 새로 밝혀냈다. 열쇠는 칼슘 이온과 단백질이 이루는 그물 구조였다.
왜 지금까지 풀리지 않았나
수축이 칼슘 이온의 신호로 시작된다는 사실 자체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1970년 에쿼린이라는 발광 단백질을 이용한 실험에서 이미 칼슘이 수축의 '방아쇠'라는 점이 보고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방아쇠가 당겨진 뒤 실제로 세포를 접는 힘은 어떤 단백질이, 어떤 구조 변화로 만들어내는가는 반세기 가까이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었다. 근육에서는 액틴과 미오신이라는 두 단백질이 ATP(세포의 에너지 연료)를 태워가며 서로를 밀고 당겨 힘을 낸다. 하지만 스피로스토뭄의 수축계는 액틴-미오신 방식이 아니라 세포 표면 바로 아래에 있는 '미오네메(myoneme)'라는 별도의 소기관이 맡는다는 것까지는 확인됐지만, 그 실체는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무엇을 발견했나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 드레이크대학교, 시카고대학교, 콜로라도대학교 볼더 등이 참여한 연구진은 면역형광현미경과 면역금 전자현미경을 동원해 세포 표면을 정밀하게 들여다봤다. 그 결과 센트린(centrin)과 Sfi1이라는 두 단백질이 그물처럼 촘촘히 얽힌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했다. 흔히 어망을 뜻하는 '피시넷'에 비유되는 구조다. 연구진은 이 두 단백질을 정제해 시험관에 옮긴 뒤 칼슘 이온을 넣어봤다. 그러자 평소 비교적 느슨하게 풀려 있던 단백질 그물이 순식간에 뭉치면서 압축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과정을 "물에 젖은 스파게티 가락이 순식간에 엉겨 뭉치는" 모습에 비유했다. 이번 연구에는 확인된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엘팅(Elting) 교수도 참여했다. 이렇게 확인한 구조 변화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입력하자, 실제 세포가 수축할 때 나타나는 형태를 재현할 수 있었다. 현미경 관찰, 시험관 실험, 컴퓨터 모델이라는 세 갈래 증거가 하나의 결론으로 모인 셈이다.
수축 속도와 폭을 둘러싼 수치는 자료마다 표현이 조금씩 다르다. 논문 서론에는 초당 몸길이의 약 50배에 이르는 속도로 움직인다고 돼 있고, 이를 초당 100배 수준으로 표현한 자료도 있어 정확한 값은 50~100체장(體長)/초 사이로 보는 것이 안전하다. 수축 후 길이도 마찬가지다. 흔히 "몸길이의 4분의 1로 줄어든다"고 설명되지만, 논문에 실린 실측치를 보면 평균 884마이크로미터(μm·100만분의 1미터)였던 세포가 수축 후 평균 306마이크로미터로, 원래 길이의 약 35% 수준까지 짧아졌다. '4분의 1'보다는 다소 완만한 수치다. 다만 액틴-미오신 기반의 근육 수축계와 비교하면 이 수축은 여전히 한 자릿수, 즉 대략 10배가량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휘발유차와 전기차의 차이
이번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힘을 내는 '연료'가 근육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근육은 ATP라는 화학 연료를 태워 단백질을 움직인다. 반면 스피로스토뭄의 수축계는 ATP를 태우지 않고, 칼슘 이온이라는 전기적 신호만으로 단백질의 입체 구조 자체를 바꿔 힘을 만들어낸다. 연구진은 이를 "우리 근육이 연료를 태우는 휘발유차라면, 이 생물은 이온이라는 전류로 움직이는 전기차"라고 설명했다. 수축이 일어나는 순간 세포막은 찢어지거나 터지지 않는다. 대신 단위 길이당 막의 면적이 약 2배로 조밀해지는데, 이는 마치 치마 주름이 촘촘히 접히듯 막이 고르게 구겨지기 때문이다. 그물 구조가 세포 표면 사방에서 균일하게 당겨지는 덕분에, 세포 속 다른 소기관들이 한쪽으로 쏠려 손상되는 일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번 발견을 "스피로스토뭄 초고속 수축의 세계 최초 규명"이라고 부르기는 조심스럽다. 정확히는 스피로스토뭄 암비구움이라는 이 종에서 처음 확인된 것이다. 2023년 중국과학원 연구팀은 근연종인 스피로스토뭄 미누스에서 스파스민, GSBP1·GSBP2라는 다른 이름의 단백질을 수축 골격으로 지목한 바 있다. 이번 연구진은 자신들이 찾은 센트린·Sfi1이 그 GSBP 단백질들과 서열상 상당한 유사성을 지닌다고 언급했지만, 두 연구가 정확히 같은 단백질군을 가리키는지는 명확히 결론짓지 않았다. 또 이 연구와 별개로, 국내에서도 스피로스토뭄 속 자체에 대한 분류학 연구가 진행돼 왔다. 국내 연구팀이 2016년 진도에서 채집한 개체를 국내 최초로 형태 기록했고, 2024년에는 한국과 미국 개체군을 비교한 계통유전체 연구도 나온 바 있다. 다만 이는 종의 분류에 관한 별개 연구로, 이번 수축 메커니즘 발견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남은 수수께끼
연구진 스스로도 이번 발견이 절반의 답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가장 큰 미해결 과제는 수축한 세포가 다시 원래 길이로 늘어나는 원리다. 논문에서 계산한 에너지만으로는 신장 과정을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저자들은 밝혔다. 칼슘 신호가 어떻게 반복적으로 발생해 여러 차례 수축을 일으킬 수 있는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통상 칼슘이 촉발하는 반응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생물은 자극이 있을 때마다 같은 수축을 반복한다. 정제한 단백질만으로 실제 세포 수준의 수축력을 온전히 재현할 수 있는지도 아직 결정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으며, 다른 미확인 성분이 관여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AlphaFold를 이용한 구조예측도 아직 이 모델을 명확히 뒷받침하지는 못한다. 칼슘이 있든 없든 뻗은 구조와 압축된 구조가 모두 나타나는 것으로 예측돼, 핵심 근거로 삼기엔 간접적인 수준에 머문다. 여기에 이번 관찰은 세포·이미지 단위로 3~10개 수준의 적은 표본에 의존한 정성적 결과라는 한계도 있다. 이 연구에 대한 외부 학자의 공개적인 반박이나 재현 실패 사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데, 발표된 지 오래되지 않은 연구인 만큼 학계의 반응이 충분히 문헌화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이번 성과는 응용 가능성 면에서 눈길을 끈다. 연구진은 배터리나 연료 없이 전기적 신호만으로 작동하는 인공 근육 설계에 이 원리가 실마리를 줄 수 있다고 본다. ATP 연소라는 복잡한 화학 과정 없이, 이온 신호 하나로 순식간에 형태를 바꾸는 단백질 그물이라는 개념 자체가 새로운 재료 설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2024년 11월 학술논문 사전공개 플랫폼 bioRxiv를 통해 먼저 공개됐고, 이후 동료심사를 거쳐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정식 게재됐다. 연구는 미국 국립과학재단과 국립보건원의 지원을 받았다.
자료: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 드레이크대학교, 시카고대학교, 콜로라도대학교 볼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