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수염 닮은 촉각 센서, 캄캄한 어둠 속 드론을 날게 하다

어두운 동굴이나 연기 자욱한 붕괴 건물 안에서는 사람 눈은 물론 카메라도 무용지물이 된다. 빛이 산란되거나 아예 없으면 영상 기반 센서는 주변 형태를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델프트공과대학교(TU Delft) 연구팀이 쥐의 수염을 본떠 만든 촉각 센서를 초소형 드론에 달아, 빛이 전혀 없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벽을 따라가며 자율적으로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카메라나 라이다(LiDAR, 레이저를 쏘아 반사되는 시간으로 주변 형태를 그려내는 장치) 같은 시각 센서를 전혀 쓰지 않고, 오직 '접촉'만으로 길을 찾는 방식이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지난 11일 게재됐다.
살루아 하마자(Salua Hamaza) 델프트공대 부교수 연구팀은 무게 44.1g의 초소형 드론 '크레이지플라이(Crazyflie)'에 3.2g짜리 인공 수염 장치를 얹었다. 길이 200㎜, 지름 0.4㎜의 니티놀(nitinol, 온도나 힘을 받으면 원래 모양으로 되돌아오는 형상기억합금) 와이어로 만든 수염 한 쌍을 드론 앞부분에 달고, 수염 기저부마다 초소형 기압센서(BMP390) 3개씩을 붙여 물체에 닿았을 때의 휘어짐을 3차원으로 감지하도록 했다. 수염이 표면에 닿아 휘면 그 압력 변화로 접촉 깊이와 위치를 추정해, 장애물을 피하고 벽면 윤곽을 따라가며 주변 공간의 '촉각 지도'를 그려낸다.
연구팀이 넘어야 했던 가장 큰 걸림돌은 드론 스스로 만들어내는 소음이었다.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바람이 수염 센서 신호에 잡음과 오차를 끼워 넣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런 왜곡을 실시간으로 걸러내고 수염의 미세한 신호를 밀리미터 단위 정밀도의 깊이 정보로 바꿔주는 경량 처리 기술을 개발했다. 이 계산은 드론에 실린 STM32F405 마이크로컨트롤러(초소형 드론에 들어가는 저전력 연산 장치) 안에서 전체 192KB 메모리 중 단 34KB만으로 이뤄진다. 외부 컴퓨터나 별도의 위치 측정 장치 없이도 감지·판단·비행 제어가 드론 한 대 안에서 모두 끝난다는 뜻으로, 메모리를 이렇게까지 아낀 덕분에 초소형 드론의 빈약한 연산 자원만으로도 실시간 반응이 가능해졌다.
100g 미만의 초소형 드론은 실을 수 있는 센서와 연산 능력, 배터리 용량이 극히 제한적이다. 기존에 널리 쓰이는 카메라나 라이다, 거리 센서는 무거운 데다 연기가 자욱하거나 빛이 없는 환경에서는 성능이 뚝 떨어지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쥐나 두더지 같은 동물이 어둠 속 굴 안에서 눈 대신 수염으로 주변을 더듬어 길을 찾는 방식에서 착안해, 시각에 의존하지 않는 가볍고 반응이 빠른 촉각 항법 체계를 고안했다. 시각 센서가 아예 필요 없다는 점에서, 빛이나 영상 처리 연산에 기대는 기존 자율비행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다.
실험 결과 이 드론은 완전한 암흑 속에서도 단단한 벽면과 부드러운 표면의 윤곽을 모두 따라갈 수 있었고, 밀폐된 낯선 공간을 탐색해 촉각만으로 지도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카메라 없이 출구까지 찾아냈다. 연구팀은 이번 기술이 공중에서 물체를 다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촉감으로 미지의 공간을 탐색하며 비행하는 새로운 항법 방식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각도, 위치 정보도 없이 오직 '닿는 감각'만으로 미지의 공간 구조를 파악해 나간다는 점에서, 어둠·연기·먼지로 뒤덮여 기존 센서가 무력해지는 환경에서도 초소형 드론이 스스로 길을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이번 연구는 박사과정생 차오샹 예(Chaoxiang Ye)와 델프트공대 항공우주공학부 마이크로항공기 연구팀장 히도 데 크론(Guido de Croon) 교수가 함께 참여했다.
자료: 델프트공과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