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크림-콩고 출혈열바이러스 복제효소 구조 풀렸다 — C형간염약 닮은꼴 물질, 첫 억제 후보로 부상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9.29 06:47
치사율 10~40% 진드기 매개 바이러스, 한 달 새 4개 연구팀이 최대 크기 중합효소 구조 규명…동물·임상 검증은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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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NIAID (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 CC BY 2.0)

소·양에 붙어사는 진드기에 물렸다가 걸리면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으로 열 명 중 한 명에서 많게는 네 명까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바이러스가 있다. 크림-콩고 출혈열바이러스(CCHFV)다. 아직 전 세계 어디에도 이 바이러스를 겨냥한 승인된 치료제나 백신은 없다. 그런데 2026년 상반기부터 하반기 사이, 중국과 미국의 여러 연구팀이 약속이나 한 듯 한 달여 간격으로 이 바이러스의 핵심 복제 장치인 초대형 단백질의 구조를 잇달아 밝혀냈고, 그중 한 연구팀은 이미 시판 중인 C형간염 치료제 소포스부비르와 화학적으로 닮은 물질이 이 바이러스의 증식을 실험실에서 억제한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4,000개짜리 부품, 왜 이제야 사진을 찍었나

이번에 구조가 풀린 단백질은 CCHFV의 'L 단백질', 즉 RNA 의존성 RNA 중합효소다. 바이러스가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할 때 쓰는 일종의 복사기 겸 조립 라인이라고 보면 된다. 이 단백질은 아미노산이 약 4,000개, 무게로는 450킬로달톤(kDa)이 넘는다. 우리 몸에서 산소를 실어 나르는 헤모글로빈(약 64kDa)의 일곱 배가 넘는 크기로, 지금까지 구조가 규명된 바이러스 중합효소 가운데 가장 크다.

이렇게 큰 단백질의 구조를 그동안 못 밝혀낸 데는 두 가지 장벽이 있었다. 하나는 단백질 자체의 문제다. 냉동전자현미경으로 사진을 찍어도 단백질 양쪽 끝부분이 계속 흔들려 초점이 맞지 않는 것과 비슷하게, 이 단백질은 양 끝 부위가 구조적으로 너무 유연해 좀처럼 고정된 형태로 포착되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안전 문제다. CCHFV는 사람 사이에서도 체액 접촉으로 전파될 수 있는 고위험 병원체여서,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다루려면 최고 등급인 BSL-4(생물안전 4등급) 밀폐시설이 필요하다. 이 두 장벽이 겹치면서 연구 자체가 더디게 진행돼 왔다.

같은 달에 쏟아진 구조, 그리고 억제 후보

2026년 한 해 동안 확인된 것만 최소 네 개의 독립 연구팀이 이 단백질의 구조를 각각 발표했다. 중국과학원 우한바이러스연구소, 중국과학원 광저우생물의학건강연구원과 우한바이러스연구소의 공동팀, 중국의학과학원·베이징협화의과대학 병원체생물학국립연구소와 중국과학원 물리연구소의 공동팀, 그리고 미국 미네소타대 호멜연구소가 그 주인공이다. 짧은 기간에 여러 팀이 같은 표적을 독립적으로 풀어냈다는 것은 결과가 서로 엇비슷하게 재현됐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아직 어느 후보 물질이 가장 유망한지에 대한 업계의 합의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중국의학과학원·베이징협화의과대학 병원체생물학국립연구소와 중국과학원 물리연구소 공동팀은 리간드가 결합하지 않은 상태와 바이러스 RNA(5´ 프로모터)가 결합한 상태의 구조를 모두 포착해, RNA가 달라붙으면 그동안 흐트러져 있던 부위들이 촉매 활성 부위 쪽으로 가지런히 정돈되는 과정을 시각화했다. 우한바이러스연구소 연구팀은 이와 별도로 소포스부비르 유사체를 보고했다. 다만 정확히 말하면 소포스부비르라는 기성 약물 자체가 아니라, 소포스부비르와 같은 화학적 변형(리보스 2´ 위치 변형)을 가진 별도의 실험용 물질이다. 이 물질은 바이러스 유전자를 복제하는 '컨베이어벨트 공장'에 가짜 부품을 끼워 넣듯, 중합효소가 RNA 가닥을 늘려가는 도중에 즉시 멈춰 세우는 '사슬 종결'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 정제된 효소를 이용한 생화학 실험에서 확인됐다. 비슷한 시기 다른 연구팀은 또 다른 물질인 2´-데옥시-2´-플루오로시티딘이 사슬에 한 단계 더 끼워진 뒤에야 멈추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노몰 수준의 낮은 농도에서도 세포 안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한다고 별도로 보고했다.

아직 넘지 못한 단계들

다만 이 발견을 '치료제가 나왔다'는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은 정제한 중합효소를 시험관에서 반응시킨 생화학 실험과 세포 수준 리포터 실험까지다. 살아 있는 세포에 실제로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모델이나 동물 실험, 임상시험 단계의 데이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전례도 신중론에 힘을 싣는다. CCHF에 현재 허가 외로 쓰이고 있는 유일한 치료제인 리바비린도 시험관과 동물 실험 단계에서는 유망해 보였지만, 정작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여러 임상 연구를 종합한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는 사망률이나 입원 기간을 뚜렷하게 줄인다는 통계적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다(반면 근거의 질이 낮다고 평가되는 일부 관찰연구 종합에서는 사망률이 줄었다는 상반된 결과도 있어, 리바비린의 실제 효능을 둘러싼 근거 자체가 엇갈리는 상태다).

같은 계열 약물이 근연 바이러스에도 통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반증 사례도 있다. CCHFV와 계통적으로 가까운 습지바이러스(2023년 인체 감염이 처음 보고된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한 별도 연구에서는, 리바비린과 4´-플루오로유리딘은 세포 실험에서 바이러스 복제를 억제했지만 소포스부비르 자체는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CCHFV의 발병 치사율 역시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으로 10~40%로 폭넓게 알려져 있고, 일부 학술 리뷰에서는 5~30%, 개별 발병 사례군에서는 최대 62%까지 보고되는 등 수치 편차가 큰 만큼, 이번 발견이 곧바로 이 수치를 낮출 해법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아직 없다.

한국과는 얼마나 가까운 이야기인가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CCHF 인체 감염 확진 사례가 보고된 적이 없고, 국내 서식 진드기에서 이 바이러스가 검출된 적도 없다. 다만 한국은 CCHFV와 상위 분류(부니아바이러스목)만 같고 과(科)는 다른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바이러스가 토착화돼 있는 나라다. 국내에서는 2013년부터 2025년까지 2,345명이 확진돼 422명이 숨져 치명률이 18% 안팎에 이른다. 다만 이번 CCHFV 중합효소 연구 결과가 SFTS 치료제 개발에 곧바로 적용될 수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두 바이러스는 분류상 같은 목에 속할 뿐 서로 다른 과의 별개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에 나온 것은 수십 년째 백신도 치료제도 없던 병원체의 '복제 공장' 내부 구조를 처음으로 들여다보고, 그 공장을 멈춰 세울 수 있는 화학물질의 실마리를 찾아냈다는 소식이다. 치료제 후보가 확보됐다는 뜻이 아니라, 치료제를 만들어볼 첫 단서가 나왔다는 뜻에 가깝다.

자료: 중국과학원 우한바이러스연구소, 중국과학원 광저우생물의학건강연구원, 중국의학과학원·베이징협화의과대학 병원체생물학국립연구소, 중국과학원 물리연구소, 미국 미네소타대 호멜연구소, 세계보건기구(WHO), 코크란(Cochrane), 질병관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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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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