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연구진, 결정구조 무너뜨렸다 다시 세워 만든 'MOF 분리막'
비닐봉투, 파이프 등 우리 생활 속 플라스틱의 원료인 에틸렌을 기존보다 훨씬 적은 에너지로 걸러낼 수 있는 새로운 분리막 소재가 국내 연구진 손에서 나왔다. 크기가 불과 0.02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단위)밖에 차이 나지 않는 에틸렌과 에탄 분자를 정교하게 갈라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한국연구재단(이사장 홍원화)은 29일 서강대학교 이종석 교수 연구팀이 대표적인 금속-유기 골격체(MOF) 소재인 'ZIF-8'의 결정구조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린 뒤 필요한 부분만 다시 만들어 붙이는 전략으로, 에틸렌과 에탄을 효과적으로 분리하는 분리막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MOF는 금속 이온과 유기 분자가 마치 블록처럼 규칙적으로 이어져 나노미터 크기의 아주 미세한 구멍(기공)을 만드는 다공성 소재로, 기체를 분리·저장하거나 화학 반응을 돕는 촉매로도 두루 활용된다.
결정을 허물었다 되살리는 전략
연구팀이 새로 만든 소재는 서강대의 이름을 따 'Sogang ZIF-8(SZIF-8)'로 이름 붙여졌다. 이 소재는 에틸렌과 에탄 분자를 크기 차이만으로 걸러내는 '체거름' 방식을 쓴다. 두 분자의 크기 차이는 0.02나노미터에 불과할 만큼 극히 작아, 정밀한 분리가 매우 까다로운 조합으로 꼽힌다.
기존 ZIF-8 소재는 기체 분자가 다가오면 기공 입구가 일시적으로 넓어지는 '게이트 오프닝' 현상이 나타나고, 결정과 결정 사이에 미세한 결함까지 있어 두 분자를 정밀하게 구별해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기공이 고정된 크기로 딱 맞아떨어져야 체거름이 제대로 작동하는데, 입구가 늘어났다 줄었다 하거나 틈새 결함이 있으면 큰 분자인 에탄까지 함께 빠져나가면서 분리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연구팀은 결정구조를 한 번 무너뜨렸다가 필요한 부분만 다시 형성하는 전략으로 이런 결함을 줄이고 기공 크기를 원하는 대로 가다듬어 분리 성능을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소재를 완전히 새로 설계하는 대신, 기존 구조를 해체했다가 결함이 있는 부분만 골라 재건축하듯 다시 짜 맞추는 방식이어서, 다공성 소재의 고질적인 결함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 자체가 새롭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왜 에틸렌 분리가 중요한가
에틸렌은 비닐봉투, 파이프, 각종 플라스틱 용기 등 석유화학 제품 전반의 핵심 원료다. 그런데 에틸렌을 만드는 공정에서 함께 생기는 에탄은 에틸렌과 끓는점이 거의 비슷해, 상업 공정에서는 수백 단에 이르는 저온 증류탑을 거쳐야 겨우 분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저온 증류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탓에, 증류탑 대신 분리막을 이용해 상온에서 손쉽게 에틸렌과 에탄을 나누려는 연구가 세계적으로 이어져 왔다. 분리막 방식이 상용화되면 거대한 증류 설비를 저온으로 유지하는 데 드는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어, 석유화학 산업 전반의 공정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종석 교수 연구팀은 앞서도 ZIF-8 계열 소재를 활용한 에틸렌·에탄 분리막 연구를 여러 차례 발표해 온 것으로 전해지며, 이번 성과는 이런 선행 연구의 연장선에서 결함 제어라는 핵심 난제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결과로 풀이된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사업, 선도연구센터사업, 신진연구(한우물파기 기초연구)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Small'에 게재됐다. 결정을 허물었다가 필요한 부분만 되살리는 이번 접근은 다공성 소재의 미세 결함을 줄이는 새로운 설계 전략으로, 앞으로 다른 기체 분리막 개발에도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자료: 한국연구재단, 서강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