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파리지옥처럼 물체 감지하고 빛 받으면 잡는 '로봇 손' 소재 개발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10.01 05:33
전북대·KAIST 공동연구팀, 감지·구동·형태유지 기능을 하나의 고분자 소재에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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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Noah Elhardt (Wikimedia Commons), CC BY-SA 2.5)

파리지옥은 벌레가 스치면 잎을 닫아 붙잡는다. 국내 연구진이 이 원리를 본떠, 물체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채는 '피부'와 물체를 움켜쥐는 '근육'을 하나의 말랑한 소재 안에 함께 담아냈다. 별도의 센서나 전선 없이도 스스로 주변을 감지하고 빛을 받으면 움직이는 소프트 로봇 손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KAIST(총장 배충식)는 생명화학공학과 문홍철 교수 연구팀이 주변 물체를 감지하고 빛에 반응해 움직이는 이온성 소프트 로봇 소재 '이오노그래스퍼(Ionograsper)'를 개발했다고 30일 밝혔다. 이오노그래스퍼는 전하를 띤 작은 입자인 '이온(ion)'과 움켜쥔다는 뜻의 '그래스퍼(grasper)'를 합친 이름이다.

이온성 소재란 내부에 양(+) 또는 음(-)의 전기적 성질을 띤 작은 입자, 즉 이온을 품고 있어 주변의 전기적 변화에 반응할 수 있는 소재를 말한다. 사람은 눈이나 피부로 물체를 알아차린 뒤 근육을 움직여 손으로 잡지만, 로봇에 이 두 기능을 구현하려면 보통 감지용 센서와 움직임을 만드는 구동 장치를 따로 붙여야 한다. 문제는 부드럽게 휘어지는 것이 장점인 소프트 로봇에 이런 부품과 배선을 여러 개 붙이면 구조가 복잡해지고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빛을 받으면 분자의 모양이 바뀌는 물질인 '아조벤젠'과 공기 중 수분을 흡수하는 고분자(작은 분자가 길게 이어져 만들어진 물질로 플라스틱·고무도 이에 해당한다)를 결합해, 내부에서 이온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그물망 구조의 소재를 만들었다. 전하를 띤 물체가 가까이 다가오면 그 물체가 주변에 미치는 전기적 영향으로 소재 안의 양이온과 음이온이 재배열된다. 풍선을 머리카락에 문지른 뒤 가까이 가져가면 닿지 않고도 머리카락이 끌려오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물체가 소재에 직접 닿지 않아도 내부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때 발생하는 전기 신호를 이용해, 감지를 위한 별도의 전압을 걸지 않고도 물체가 다가오고 움직이는 것을 알아냈다.

소재를 움직이게 할 때는 자외선을 비춘다. 빛을 받은 아조벤젠의 분자 모양이 바뀌면서 소재 한쪽 면의 수분이 빠져나가고, 마치 한쪽 면부터 마르는 얇은 종이처럼 소재가 굽으며 물체를 붙잡는다. 연구팀은 이 움직임으로 실제 물체를 붙잡는 모습을 시연해 보였다. 빛을 끄면 소재 표면의 나노 크기 구멍을 통해 수분이 다시 스며들면서 소재가 반대 방향으로 굽는데, 고분자 구조가 천천히 풀릴 때까지 변형된 형태가 10분 넘게 유지됐다. 붙잡은 자세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빛을 켜 둘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번 연구의 특징은 물체를 알아채는 감지 기능과 움직이는 구동 기능, 바뀐 형태를 일정 시간 유지하는 기능을 하나의 소재로 구현했다는 데 있다. 그동안 소프트 로봇은 센서와 구동기를 따로 제작해 붙이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는데, 이는 배선과 부품이 늘어나면서 소프트 로봇 고유의 유연함을 떨어뜨리는 한계로 지적돼 왔다. 이번 소재 설계는 이런 부품·배선 부담을 줄이는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존 방식과 차별화된다.

문홍철 교수는 "로봇의 피부와 근육을 따로 붙이지 않고, 하나의 소재가 물체를 감지하고 빛을 받으면 움직이도록 만들었다"며 "빛을 끈 뒤에도 변형된 형태를 유지한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인공지능(AI) 제어 기술을 결합해, 실제 환경에서 감각과 동작을 함께 수행하는 로봇인 '피지컬 AI' 로봇에 활용할 수 있는 감각 구동 소재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전북대학교 화학공학부 김용민 교수가 제1저자,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권진한·양현우·이경록 박사과정생과 김성룡 박사가 공동저자, 문홍철 교수가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Advanced Materials)'에 9월 14일 온라인 게재됐으며, 해당 호(62호)의 표지논문으로도 선정됐다.

자료: KA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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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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