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NASA, 허셜 퇴역 13년 만에 원적외선 우주망원경 부활 — 12억 달러 'PRIMA' 선정

밤하늘을 맨눈으로 보면 별은 반짝이지만, 우주에는 사람 눈으로도 웬만한 지상 망원경으로도 잡을 수 없는 빛이 있다. 파장이 길어 가시광선보다 훨씬 느슨하게 퍼지는 원적외선이다. 별과 행성이 갓 태어날 때 주변을 감싸는 먼지 구름, 은하 한복판 초대질량 블랙홀이 형성되는 과정의 흔적은 대부분 이 원적외선으로만 신호를 남긴다. 그런데 이 빛을 전담해 관측할 우주망원경이 지구 궤도에서 사라진 지 13년이 됐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2026년 9월 23일, 그 공백을 메울 후속 임무로 원적외선 우주망원경 'PRIMA(프리마)'를 선정하고 예비설계 단계인 'Phase B'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왜 13년이나 비어 있었나
유럽우주국(ESA)의 허셜(Herschel) 우주망원경은 2009년 발사돼 원적외선으로 우주를 관측해왔지만, 망원경을 냉각시키는 액체 헬륨이 바닥나면서 2013년 4월 29일 관측을 마치고 그해 6월 18일 임무를 완전히 종료했다. 이후 우주에 떠서 원적외선을 전담하는 망원경은 없었다. 원적외선 관측이 유독 까다로운 이유는 망원경 자신이 내는 열 때문이다. 신호 자체가 약한 원적외선은 상온의 망원경 부품에서 새어 나오는 미세한 열조차 압도당해 묻혀버린다. 그래서 망원경 자체를 우주 배경보다도 차갑게 만들어야 한다.
이 공백을 메울 임무가 나온 배경에는 2020년 미국 국립과학원이 내놓은 10년주기 조사(2020년대 천문학·천체물리학 보고서)가 있다. 이 보고서는 대형 '플래그십' 임무와 소형 '익스플로러' 임무로 양분돼 있던 우주망원경 등급 사이에 중간 규모의 '프로브' 등급을 새로 만들자고 권고했다. PRIMA는 이 새 등급에서 처음으로 선정된 임무다.
성인 키만 한 거울, 1조 원대 몸값
PRIMA는 지름 1.8미터(5.9피트)의 주경을 갖췄다. 성인 키보다 조금 큰 정도지만, 사업비 상한은 발사 비용을 제외하고 12억 달러에 이른다. 거울과 검출기는 4.5켈빈까지 냉각된다. 절대영도(영하 273.15도)보다 겨우 4.5도 높은, 영하 268.65도에 가까운 온도다.
탑재 기기는 두 가지다. 분광계 '파이어스(FIRESS)'는 24~235마이크로미터 파장대를 저해상도(분해능 85~130)와 고해상도(파장 112마이크로미터 기준 분해능 최대 약 4,400) 모드로 나눠 관측한다. 촬영편광계 '프리마저(PRIMAger)'는 약 25~260마이크로미터대에 걸친 여러 파장 밴드로 넓은 하늘을 훑으며 편광까지 잡아낸다. 두 기기에는 독일 막스플랑크천문연구소가 정밀 초점면 초퍼(빛의 경로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거울) 2대와 제어전자장치를 제공하며, 비용은 독일항공우주센터(DLR)가 지원한다.
검출기에는 초전도 상태에서 빛 입자(광자) 하나하나까지 셀 수 있는 '운동인덕턴스검출기(KID)'가 쓰인다. 이 기술은 1999년 칼텍의 조나스 즈무이지나스와 릭 르덕이 발명했다. NASA는 이런 성능을 앞선 임무인 스피처·허셜과 비교해 약 100배 더 민감하다고 설명한다. 다만 연구자 발언 중에는 1,000배에 이르는 민감도 도약이라는 표현도 있고, 논문 자료에서는 허셜과 비교한 '서베이 속도'(같은 하늘을 훑는 데 걸리는 시간 대비 효율)가 1,000배에서 최대 10만 배까지 향상됐다는 수치도 나온다. 세 수치는 서로 다른 기준으로 산출된 것이어서 하나로 뭉뚱그려서는 안 된다. 과학 목표는 행성과 별이 태어나는 초기 단계, 은하 속에 숨은 먼지의 흐름, 초대질량 블랙홀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경쟁자의 탈락으로 남은 '유일 후보'
PRIMA가 선정되기까지는 순수한 과학적 우열 경쟁이 아니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2024년 10월 NASA는 프로브 등급의 첫 임무를 뽑는 공모에서 원적외선 망원경 PRIMA와 X선 망원경 AXIS 두 개념에 각각 500만 달러씩을 지원해 12개월짜리 개념연구를 맡겼다. 이후 AXIS는 개념연구보고서가 요구한 예산·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격을 박탈당해 탈락했다. 예산이 계획보다 10%가량 초과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원문으로 확인되지는 않아 알려진 수준으로만 전할 수 있다. 그 결과 PRIMA는 최종 경쟁자가 사라진 채 유일한 후보로 남아 선정됐다.
AXIS 책임연구자는 이 결정에 대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임무를 관리하는 NASA 내부의 인력 이탈과 조직 혼란이 원인이라고 공개적으로 반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관이 밝힌 실격 사유와 연구팀이 내놓은 반박이 서로 상충하는 셈이며, 어느 쪽이 맞는지는 지금 확인된 사실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다.
아직 확정은 아니다
PRIMA는 지금 예비설계 단계(Phase B)에 있을 뿐, 확정된 임무는 아니다. 기술·일정·예산에서 성과를 내 확정심사(confirmation review)를 통과해야 본격 제작 단계(Phase C)로 넘어간다. 통과하지 못하면 축소되거나 연기, 심지어 취소될 수도 있다. 임무 관리는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가 맡고 고다드우주비행센터, 마셜우주비행센터가 참여하며, 과학운영센터는 칼텍 산하 적외선처리분석센터(IPAC)가 맡는다. 국제 협력기관으로는 프랑스 국립우주센터, 이탈리아 우주청, 독일항공우주센터, 캐나다우주청,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 영국 우주청과 함께 한국천문연구원(KASI)과 우주항공청(KASA)도 이름을 올렸다. 다만 한국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기나 예산을 맡는지는 공식 발표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계획대로 2033년 발사돼 5년간 임무를 수행한다면, 실제로 원적외선 우주망원경이 다시 하늘을 보는 시점은 허셜 퇴역으로부터 20년 만이다. '13년 만의 부활'이라는 표현은 이번 선정 시점을 가리킬 뿐, 관측이 실제로 재개되는 시점과는 다르다는 점을 짚어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선정 과정 자체가 순수한 과학적 경쟁이 아니라 경쟁자의 행정적 탈락으로 결정됐다는 사실은, 우주 과학 임무 하나가 세워지는 데 실험실의 성과만이 아니라 조직의 관리 능력도 걸려 있음을 보여준다.
자료: 미국항공우주국(NASA), 미국항공우주국 제트추진연구소(JPL), 칼텍(Caltech), 칼텍 적외선처리분석센터(IPAC), 독일 막스플랑크천문연구소(MPIA), 독일항공우주센터(DLR), 유럽우주국(ES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