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나기 전에 선로를 옮긴다…혼불문학관 지키는 예방형 배전관리

전기가 끊어진 뒤 복구하는 대신 고장 가능성이 있는 선로를 미리 옮겨 문학관과 산림을 함께 보호하는 예방형 배전관리가 전북 남원에서 추진됐다. 한국전력 전북본부 남원지사는 혼불문학관 주변의 고압 배전선로와 대나무숲이 가까워진 현장을 점검하고, 문화공간을 보존하면서 선로를 우회시키는 방식으로 공사를 추진했다.
남원시 사매면 노봉마을에 있는 혼불문학관은 최명희 작가의 대하소설 ‘혼불’ 배경지에 2004년 문을 연 문학·문화공간이다. 주변에 산림과 수목이 밀집해 있어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뿐 아니라 나뭇가지가 전선에 닿지 않도록 관리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특히 강풍으로 대나무나 주변 수목이 전선에 접촉하면 정전이 발생할 수 있고, 건조한 시기에는 산불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남원지사는 사고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위험요인을 먼저 찾아 선로 자체를 개선하는 방식을 택했다. 단순한 정전 예방을 넘어 지역 문화자산과 주변 산림을 함께 보호하려는 조치다.
이 같은 관리는 한전이 공식적인 정전 원인으로 다루는 ‘외물접촉’과도 연결된다. 외물접촉은 조류의 둥지나 수목처럼 전기가 통할 수 있는 외부 물체가 전력설비에 닿아 고장을 일으키는 상황을 말한다. 한전은 자연재해가 예상될 때 재난 발생 2∼5일 전 단계부터 전력선과 주변 물체 사이의 거리가 부족한 곳, 수목 접촉이 우려되는 곳을 점검하고 보강하도록 운영하고 있다.
전북 지역의 배전설비가 늘면서 사전 관리의 중요성도 커졌다. 한전 공식 자료에 따르면 전북본부의 배전선로는 2020년 476개에서 2025년 6월 601개로 125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선로 길이는 3,529C-km 늘었다. C-km는 여러 회선으로 구성된 전력선의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다. 전북본부가 운영하는 전체 규모는 배전선로 4만8,000C-km, 변전소 45개, 공급고객 134만 호다.
전북본부는 진단전문가 48명을 투입해 488개 선로를 살피고 불량 지점 453개소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발견된 위험 수준에 따라 순시 횟수와 관리 방식을 달리하고, 수목을 잘라낸 이력도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했다. 그 결과 기자재 고장은 전년보다 80%, 조류와 수목 등 외물접촉에 따른 고장은 55% 줄었다고 설명했다.
예방 중심 관리는 전국 단위로도 확대되고 있다. 한전은 2025년 국립공원공단과 협약을 맺고 전력설비와 수목 사이의 안전거리 유지, 위험수목 제거, 인공지능을 활용한 산불 감시, 취약지역 합동 대응을 추진하기로 했다. 혼불문학관 주변의 선로 우회 역시 전력설비만 따로 보는 대신 산림과 지역 시설을 함께 살피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전기사업법 제87조는 전기설비의 유지·보수를 위해 필요한 경우 정해진 절차에 따라 다른 사람의 식물이나 장애물을 변경하거나 제거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다만 문화시설 주변에서는 수목을 제거하는 방식뿐 아니라 공간의 성격과 경관을 고려해 선로를 우회하는 선택도 가능하다. 남원지사의 조치는 현장 조건에 맞춰 위험의 원인 자체를 줄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남원시의 2024년 본예산에는 혼불문학관 관리비 1억4,302만원이 편성됐다. 이 가운데 예초작업비는 667만6천원, 시설 유지보수비는 660만원이다. 문학관 안팎을 꾸준히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의 활동과 전력설비 위험을 미리 줄이는 한전의 조치가 맞물리면서 문화공간의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보완하게 됐다.
자료: 한국전력공사, 남원시, 국가법령정보센터(법제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