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은 어떻게 멈추었나…마오주의와 미국 아시아학을 다시 읽다

전쟁과 국가 권력을 비판하려던 학자들의 운동은 왜 끝내 내부 균열을 맞았을까. 파비오 란자의 『비판의 종언: 장기 1960년대 글로벌 마오주의와 미국의 아시아학』은 이 질문을 따라가며 지식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정치·재정·제도의 관계를 살핀 지성사다. 설재희와 이종식이 옮긴 한국어판은 글항아리에서 384쪽으로 출간됐다.
책의 중심에는 ‘우려하는 아시아학 연구자 위원회’, 영어 이름 Committee of Concerned Asian Scholars의 머리글자를 딴 CCAS가 있다. 듀크대 출판부가 공개한 원서 서문에 따르면 CCAS는 1968년부터 1979년까지 활동했다. 베트남 전쟁과 학생운동, 중국 문화대혁명이 이어지던 시기에 등장해 기존 미국 아시아학의 연구 방식과 정치적 역할을 함께 문제 삼았다.
저자가 설명하는 전후 미국의 아시아 지역학은 정부의 개입과 민간 재단의 자금을 바탕으로 하버드대·컬럼비아대·버클리대·워싱턴대 등의 연구센터에 제도적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학은 특정 지역의 언어·역사·정치·사회를 종합해 이해하는 연구 분야다. 그러나 냉전기에는 학문적 관심만이 아니라 ‘적을 알라’는 국가적 요구에도 일부 영향을 받았다.
당시의 정치적 압력도 학문의 방향을 좁혔다. ‘중국 상실’ 논쟁과 하원 비미활동위원회가 벌인 오언 래티모어 및 태평양관계연구소 공격 등 매카시즘은 아시아 연구자들의 자기검열을 강화했다. 자기검열은 처벌이나 불이익을 우려해 연구자 스스로 질문과 표현의 범위를 줄이는 행위다. CCAS는 연구 결과만 비판한 것이 아니라 학문을 움직이는 정책과 자금의 구조까지 함께 따져 물으며 연구와 정치 실천을 결합하려 했다.
CCAS의 중국 방문은 조직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 원서 서문에 따르면 이 단체는 1971년 여름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개선되기 전에 중국 방문을 허가받은 최초의 학술단체였다. 이듬해에는 두 번째 대표단도 중국을 찾았다. 두 대표단은 저우언라이와 훗날 ‘4인방’으로 불린 인사들을 만났다.
그러나 저자는 이 방문 이후 조직의 관심이 중국에 지나치게 집중되면서 내부 균열이 커졌다고 설명한다. 세계 여러 지역의 해방운동과 미국의 전쟁 정책을 함께 비판하려던 단체가 특정한 혁명 경험을 중심에 놓자, 무엇을 연구하고 누구와 연대할 것인지를 둘러싼 긴장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권력을 비판하는 지식 공동체 역시 스스로 선택한 정치적 관점과 조직 운영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조직은 해산했지만 기관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듀크대 출판부 자료에 따르면 이 학술지는 1981년 포스트마오 중국을 다룬 특집호 두 편을 냈다. 포스트마오는 마오쩌둥 시대 이후의 중국을 뜻한다. Critical Asian Studies의 공식 연혁은 기관지가 인도차이나 전쟁과 미국의 대중국 봉쇄를 배경으로 출범했으며, 이후 남아시아·내륙아시아·태평양과 아시아계 미국인의 경험까지 관심 범위를 넓혔다고 밝힌다.
이 책이 다루는 ‘비판의 종언’은 비판적 질문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비판을 가능하게 했던 전쟁, 학문 제도, 재정 지원, 국제정세와 운동 조직의 관계가 달라질 때 지식인의 실천도 어떻게 변하는지를 묻는 표현에 가깝다. CCAS의 역사는 학문이 권력과 분리된 채 존재하지 않으며, 권력을 비판하는 연구도 자신의 제도적 조건을 계속 점검해야 한다는 문제를 남긴다.
자료: 대학지성 In&Out, Duke University Press, Critical Asian Studi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