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작은 불이 사라지자 숲은 네 배 가까이 짙어졌다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10.10 06:36
호수 진흙 1m에 남은 1,000년 기록이 드러낸 문화적 불놓기 중단과 대형 산불의 연결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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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ision·CSIRO

호수 바닥의 진흙을 약 1m 파냈더니 1,000년 가까운 숲과 불의 역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된 꽃가루에는 당시 숲의 생김새가, 숯 조각에는 주변에서 일어난 불이, 자성을 띤 광물에는 호수로 씻겨 들어온 토양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기록이 보여준 변화는 뜻밖이었다. 호주 원주민의 세밀한 불 관리가 이어지던 시기에는 풀이 많고 나무가 드문 열린 삼림이 800년 넘게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그러나 19세기 문화적 불놓기가 중단된 뒤 꽃가루 모델로 추정한 유칼립투스 피복률은 약 9%에서 34%로 늘었다.

이를 ‘숲이 약 4배 빽빽해졌다’고 요약할 수 있지만, 나무 개체 수를 직접 세어 네 배가 됐다는 뜻은 아니다. 가상의 경관을 100칸으로 나눴을 때 유칼립투스가 덮은 면적이 약 9칸에서 34칸으로 늘어난 셈이다. 연구진은 이 변화가 작은 불의 소멸과 연료 축적, 더 뜨거운 비관리 산불이 서로를 강화하는 과정과 연결됐다고 해석했다.

진흙 코어를 ‘산불 블랙박스’로 읽다

연구는 2026년 10월 7일 발표됐다. 연구지는 호주 빅토리아주 이스트깁스랜드의 크로아징골롱 국립공원에 있는 푸르가굴라다. 식민지명은 Lake Elusive이며 구나이쿠르나이 전통 영토에 속한다. 연구진은 2021년 2월 9일 면적 약 40ha, 수심 약 21m인 호수의 깊은 지점에서 퇴적물 코어를 채취했다. 길이 약 1m의 코어가 포괄한 시간은 대략 서기 844년부터 2021년까지였다.

연구진은 하나의 흔적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꽃가루는 과거 식생을, 거시 숯은 호수 주변의 국지적 연소를 보여주는 대리지표로 썼다. 대리지표란 과거 현상을 직접 볼 수 없을 때 대신 읽는 간접 증거다. 자기감수율, 즉 퇴적물이 자기장에 얼마나 반응하는지를 재는 값으로는 토양침식의 변화를 살폈다. 원소 조성과 미세 숯도 함께 분석했다.

숯 조각 1,092개의 분자 스펙트럼에는 FTIR이 쓰였다. FTIR은 적외선에 대한 물질의 반응을 읽어 분자적 특징을 구분하는 분석법이다. 연구진은 고대 숯의 ‘적외선 지문’을 알려진 온도에서 만든 현대 식물 숯과 비교해 최대 열분해온도 범주를 추정했다. 저온은 200~300℃, 중온은 400~500℃, 고온은 600~700℃ 범주였다. 다만 이것은 옛 산불의 화염 최고온도나 화재 강도를 직접 잰 온도계가 아니다.

시간축은 납-210 연대 11개와 가속기질량분석법을 이용한 탄소-14 연대 6개로 만들었다. 오래된 담수 탄소가 퇴적물 연대를 실제보다 오래돼 보이게 할 수 있어 약 500년의 저수지 연대 보정도 적용했다. 이 보정값을 일정하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난 정확한 해나 지표 사이의 수십 년 차이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자주 타던 작은 불과 드물지만 더 뜨거운 불

식민지화 이전 구나이쿠르나이 사람들은 문화적 불놓기, 즉 전통 소유자가 장소·계절·종·생태적 목적에 맞춰 시행하는 소규모 저온 화입을 이어왔다. 작은 저온 불은 자주 일어났지만, 연구진은 이것이 풀과 관목 같은 연료를 작은 구역 단위로 소비하고 연결을 끊어 대형 산불을 억제했다고 해석했다. 문화적 불은 정부가 넓은 지역에 시행하는 처방소각과 같은 말이 아니라 하나의 지식체계다.

전환은 19세기 중후반 구나이쿠르나이의 축출과 문화적 불 관리의 붕괴 무렵 나타났다. 불이 단순히 더 잦아진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작은 불이 줄어 전체 화재가 덜 자주 일어나면서도, 발생한 불은 더 뜨거워지는 체제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대형 산불의 회귀 간격도 짧아졌다. 식민지기 이후 고온 범주의 숯 비율은 대체로 약 5%에서 약 10~15%로 증가했다. 증가 방향은 지속적이었지만 절대 변화폭이 제한적이므로 화재온도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고 표현할 수는 없다.

유칼립투스 피복률은 REVEALS 모델, 즉 식물마다 서로 다른 꽃가루 생산량과 확산 특성을 보정해 토지피복을 복원하는 모델로 계산했다. 원 해상도 80개 표본의 대상 꽃가루 수는 147~395립이었고 상당수가 200립에 못 미쳤다. 연구진은 표본을 합쳐 꽃가루 수를 303~682립으로 늘린 40개 표본 분석에서도 증가의 방향과 규모가 유지되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이 결과는 현장에서 나무나 수관을 직접 조사한 값이 아니며, 다른 REVEALS 구현과 병행한 완전한 교차검증도 이뤄지지 않았다.

식민지 유산 위에 기후위험이 겹쳤다

연구진이 제안한 연결고리는 이렇다. 작은 저온 불이 줄면 풀·관목·나무와 죽은 식물체가 연료로 축적되고 서로 이어진다. 이 연료는 더 뜨거운 비관리 산불이 넓게 번질 통로가 된다. 불 뒤 유칼립투스와 관목이 다시 자라면 연료가 더 늘어나 다음 산불의 조건을 강화한다. 유칼립투스 피복, 거시 숯, 고온 숯과 토양침식 지표에서 함께 나타난 변화가 이 해석을 뒷받침했다.

변화는 연구진이 뚜렷한 인위적 온난화의 출발점으로 둔 약 1950년보다 앞서 시작됐다. 그렇다고 기후변화가 산불과 무관하다는 결론은 아니다. 문화적 불 관리의 중단으로 먼저 바뀐 연료 구조가 숲의 취약성을 키웠고, 이후 현대 온난화와 극한 산불기상이 위험을 증폭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퇴적물 기록은 통제실험이 아니다. 문화적 불 중단뿐 아니라 벌목, 방목, 개간, 금 채굴, 외래종, 식민지식 점화와 화재진압도 영향을 줬을 수 있다. 연구진은 푸르가굴라 유역 안에서는 상업적 벌목의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남동부 호주 전체의 산불 역사에서 벌목 유산까지 배제한 것은 아니다. 2019~2020년 화재가 유역을 태웠는데도 곧이어 채취한 코어 최상부에는 뚜렷한 숯 봉우리가 없었다. 숯이 빗물 등에 실려 호수에 도달하고 쌓일 시간이 부족했을 가능성도 제시됐다.

현재의 울창한 숲은 정말 ‘사람 이전의 자연’인가

가장 큰 한계는 약 1,000년의 긴 기록이 한 호수의 단일 코어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꽃가루 기반 식생 추정은 광역 경관을 반영하도록 설계됐지만, 숯과 침식 자료가 직접 보여주는 범위는 호수 유역에서 수 km 정도다. 약 9%에서 34%라는 수치를 호주 전체나 모든 유칼립투스 숲에 적용할 수 없다. 불 뒤 다시 싹트는 유칼립투스 숲과 종자 발아를 위해 긴 무화재 기간이 필요한 산악·고산 애시 숲의 관리 방식도 같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오늘날 울창한 숲을 자동으로 ‘사람 손이 닿기 전의 자연’이라고 여겨도 되는지 묻는다. 사람이 불을 전혀 쓰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오랜 문화적 관리가 사라진 결과로 만들어진 숲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법도 모든 숲에 획일적으로 불을 놓는 데 있지 않다. 전통 소유자가 주도하는 지역별 문화적 불 관리와 함께, 이미 빽빽해진 재생림에서는 기계적 솎아베기 같은 수단을 결합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한국에 이 결론을 그대로 옮길 수도 없다. 한국 산림은 수종과 계절성, 지형, 토지관리 역사가 호주 남동부 유칼립투스 숲과 다르다. 2015~2024년 국내에서는 연평균 산불 546건이 발생해 약 4,002ha가 피해를 봤고, 3~4월에 발생 건수의 46%와 피해면적의 86%가 집중됐다. 국내 정책은 솎아베기와 하층식생·고사목 제거, 내화수림대, 임도와 진화체계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연구가 한국에 던지는 질문은 ‘산에 불을 놓을 것인가’가 아니라 ‘산림별 연료를 어느 계절에 어떤 방법으로 줄일 것인가’에 가깝다.

자료: 멜버른대학교, 구나이쿠르나이 토지·수자원 원주민공사, 호주원자력과학기술기구, 막스플랑크 지구인류학연구소, 호주 농림부, 호주 연방 환경부, 행정안전부, 산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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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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