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RNA 효소는 한 모양으로 작동하지 않았다…76개 공존 구조와 마그네슘의 ‘자리 이동’

가위가 잘 들려면 날만 날카로우면 될까. 축과 손잡이, 관절이 알맞은 자세를 잡아야 비로소 제대로 자를 수 있다. 세균의 RNA 효소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드러났다. 촉매 중심이라는 ‘가위날’은 비교적 단단하게 유지됐지만, 멀리 떨어진 RNA 부위의 접힘과 마그네슘 이온의 자리 배치가 달라지면서 작동하기 좋은 자세의 비중이 바뀌었다. 효소 하나에는 정답 구조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구조가 공존했고, 보조 단백질은 그 가운데 활성형으로 해석되는 구조가 더 많이 나타나도록 분포를 옮겼다.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진은 고온성 세균 Geobacillus stearothermophilus의 RNase P RNA를 단일 입자 초저온전자현미경(cryo-EM·시료를 급속 동결해 개별 입자의 구조를 촬영하는 기술)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단백질이 없는 apo 구조 55개와 보조 단백질 rnpA가 결합한 holo 구조 21개, 모두 76개의 구조 모델을 얻었다. 연구 결과는 2026년 10월 7일 온라인 공개됐다.
76장은 한 분자의 변신 동영상이 아니다
RNase P는 전구체 tRNA의 5′ 선도서열을 잘라 성숙한 tRNA를 만드는 효소다. 세균형 RNase P에서는 RNA 자체가 절단 반응을 수행하고 rnpA 단백질이 이를 돕는다. 연구 대상인 GstRPR은 417개 뉴클레오타이드로 이뤄졌다. 이 가운데 87~249번 잔기는 특이성 영역, 1~86번과 250~417번 잔기는 촉매 영역을 구성한다.
이번에 얻은 76개 구조는 서로 다른 RNA 76종도, RNA 한 분자가 차례로 거친 76단계도 아니다. cryo-EM은 수많은 입자를 순간 동결해 각각의 정지영상을 얻는다. 연구진은 이 자료에서 구조가 비슷한 입자끼리 분류해 공존하는 자세들을 모델로 만들었다. 동영상 76프레임이라기보다 수많은 단체사진 속 사람들을 비슷한 자세별로 76개 그룹에 나눈 것에 가깝다.
따라서 76이라는 숫자를 자연에 존재하는 구조의 절대 개수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실제 변화가 연속적인데 분석 과정에서 여러 모델로 나뉘었을 수 있고, 아주 짧게 존재하거나 입자 수가 적은 상태는 잡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연구진은 평균 구조 하나로 차이를 뭉개는 대신 EMCrafter를 이용해 필요한 입자 수와 신호대잡음비를 추정하고, 구조적 이질성을 분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새 가위날 대신 ‘준비된 자세’의 비중을 바꿨다
활성형과 비활성형을 가른 핵심은 촉매 중심의 대대적인 변형이 아니었다. P12의 테트라루프와 P10.1의 테트라루프 수용체가 멀리서 맞물리는 TL–TLR 장거리 접촉, 그리고 기질 인식에 필요한 IDTM의 접힘 상태가 구조를 갈랐다. TL–TLR이 열려 있을 때 IDTM은 준나선형으로 남았고, 접촉이 닫히면 IDTM이 올바르게 접힌 형태를 보였다.
전구체 tRNA가 결합한 평균 2.7 Å 해상도의 삼자복합체에서도 닫힌 TL–TLR과 접힌 IDTM이 확인됐다. 1 Å은 0.1 nm다. 연구진은 TL–TLR을 교란한 돌연변이의 절단 활성이 거의 사라지는 결과도 독립적으로 세 차례 확인했다. 구조 비교와 기질 결합 구조, 활성실험이 같은 방향을 가리킨 셈이다. 다만 76개 구조 각각의 촉매속도를 직접 측정한 것은 아니며, 돌연변이가 다른 접힘이나 전체 안정성에 미친 영향을 완전히 분리해 증명한 것도 아니다.
holo 구조 가운데 하나에서는 TL–TLR이 닫혔는데도 IDTM이 아직 제대로 접히지 않은 중간형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TL–TLR 접촉 뒤 IDTM이 접힐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적 구조 증거로 해석했다. 그러나 한 분자의 실제 시간 순서를 연속 측정한 결과는 아니다.
rnpA의 역할도 구조를 새로 만드는 것과 달랐다. 단백질이 붙어도 결합 자리와 촉매 중심의 국소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대신 닫힌 활성형으로 해석된 구조의 비중이 apo의 약 13%에서 holo의 43%로 높아졌다. 약 30%포인트 차이이자 수치상 약 3.3배다. 연구진은 이를 이미 존재하던 구조들의 균형을 바꾸는 열역학적 알로스테리, 즉 한 부위의 결합이 떨어진 부위의 구조 분포를 바꾸는 ‘population shift’로 해석했다. rnpA는 새 가위날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자를 준비가 된 자세’가 더 자주 나타나게 한 조절자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13%와 43%는 세포 안의 활성률이나 반응수율이 아니다. 동결 시료에서 분류된 구조 모델의 비중이며, 시료 준비와 얼음 두께, 입자 방향, 신호대잡음비와 분류 기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고정 리벳부터 이웃 좌석을 바꾸는 이온까지
마그네슘 이온(Mg²⁺)의 행동도 하나로 묶이지 않았다. 연구진은 구조별 위치 변동과 출현 정도에 따라 네 부류로 나눴다. 여러 구조의 좁은 범위에 머무는 ‘정적’ 이온, 일부 구조에서만 나타나거나 점유 정도가 달라지는 ‘일시적’ 이온, 구조에 따라 인접한 결합 자리에서 위치가 달라지는 ‘호핑’ 이온, 자신이 결합한 RNA 부위와 함께 움직이는 ‘동반’ 이온이다. 각각 고정 리벳, 잠깐 나타나는 받침, 이웃 좌석을 바꾸는 이온, RNA와 함께 움직이는 동행자에 빗댈 수 있다.
호핑 Mg²⁺는 구아닌이 풍부한 RNA 큰홈에서 인산의 OP1·OP2 산소와 퓨린의 N7·O6 원자가 만드는 인접 자리들에 약 10 Å, 즉 약 1 nm 범위로 분포했다. 사람 눈에는 극히 짧지만 원자 수준에서는 어느 자리에 배위되는지가 달라지는 거리다. 연구진은 분자동역학 계산으로 제안됐던 이 현상을 여러 구조의 집단에서 실험적으로 시각화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동반형에서는 G139가 최대 약 6 Å, G140이 최대 약 9 Å 움직인 사례가 확인됐다.
모든 마그네슘이 움직인 것은 아니다. 촉매 중심의 M1과 수화된 M_h1·M_h2는 호핑형이 아니라 정적 이온이었고, 76개 구조에서 위치 변동의 제곱평균제곱근인 RMSF가 0.3 Å 이내였다. 가위의 축은 단단히 유지되는 한편 주변 관절과 이온 좌석은 달라진 셈이다. 연구진은 이온 영역에서 평균 약 2.3 Å의 국소 해상도를 확보했지만, 이는 76개 전체 지도의 평균 해상도를 뜻하지 않는다. 공개된 전체 지도 사례들의 해상도는 약 2.86~3.33 Å 범위다.
이온 수치도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55개 apo 모델에는 Mg²⁺가 합계 2147개, 21개 holo 모델에는 648개 지정돼 구조당 평균은 각각 약 39개와 31개였다. 이는 여러 구조 모델에 반복 지정된 이온을 합산한 값이지 RNA 한 분자에 2795개가 붙는다는 뜻이 아니다. 평균 차이만으로 rnpA가 정확히 8개를 제거했다고 결론 내릴 수도 없다. rnpA가 양전하성 물질처럼 일부 Mg²⁺ 자리를 대신하고 전기적 환경을 바꿔 먼 TL–TLR의 평형에 영향을 준다는 설명은 추가 검증이 필요한 가능한 모델로 제안됐다.
대표 구조 한 장에서 ‘분포’의 생물학으로
이번 연구의 직접적인 성과는 신약이나 치료제 개발이 아니다. RNA가 여러 구조 상태로 존재하고 Mg²⁺가 접힘과 촉매에 관여한다는 사실 자체도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새로움은 한 RNase P 시료에서 다수의 준원자 구조와 이온 위치 차이를 함께 분리하고, 이를 기질 결합 및 활성실험과 연결해 기능을 구조 하나가 아닌 ‘구조와 이온 배치의 분포’로 설명한 데 있다.
동시에 해석의 경계도 분명하다. 호핑은 동일한 이온이 움직이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촬영한 결과가 아니라 여러 동결 구조에서 확인된 위치 차이를 연결한 해석이다. 약하고 퍼진 일시적 이온의 밀도는 실제 구조 의존적 결합 자리일 수도 있지만 여러 점유 상태가 섞인 불확실성일 수도 있다. 밀도와 거리, 배위 기하를 바탕으로 Mg²⁺를 모델링했으므로 물이나 나트륨 이온, 부분 점유 이온과의 구별에도 한계가 있다.
연구는 주로 1 mM Mg²⁺ 조건에서 정제한 고온성 세균의 RNA와 단백질을 다룬 시험관 실험이다. 세포 안의 혼잡한 환경과 다른 이온·단백질, 대사물질, 전사 중 접힘은 반영하지 않았다. 다른 농도나 온도에서도 같은 구조 비중이 유지되는지, 인간 RNase P나 다른 리보자임에도 같은 조절 원리가 적용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2026년 10월 10일 현재 논문 공개 후 사흘밖에 지나지 않아 독립 재현이나 충분한 외부 검증을 논하기도 이르다.
그럼에도 이번 결과는 RNA 효소의 ‘촉매 스위치’를 레버 하나로 보는 그림을 바꾼다. 여기서 스위치는 논문이 붙인 공식 분자 명칭이 아니라 TL–TLR의 개폐, IDTM의 접힘, 활성형 구조 비중의 변화를 묶어 설명하는 표현이다. 작동 여부를 이해하려면 가장 선명한 대표 구조 한 장뿐 아니라 수십 가지 자세가 어떤 비율로 공존하는지, 그 사이에서 이온이 어느 좌석을 차지하는지까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 연구가 제시한 핵심 틀이다.
자료: 미국 국립보건원, 국립암연구소, 국립당뇨병·소화기·신장질환연구소, 유럽생물정보학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