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벽돌과 모르타르’만이 아니었다…진주층 속 5㎚ 공간이 균열을 막는 법

유일혁 기자 · 입력 2026.10.13 06:37
29㎚ 문석 나노막대와 나노구속 생체분자 결정상이 만든 이중 구조…강성을 지키면서 파괴에 저항하는 설계 원리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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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ch· 1814

조개껍데기 안쪽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진주층을 벽이라고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는 단단한 광물 판이 ‘벽돌’, 그 사이의 부드러운 유기층이 ‘모르타르’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 널리 쓰였다. 그런데 그 벽돌 하나를 다시 확대했더니 내부에서도 더 작은 광물 막대와 생체분자 결정상이 교대로 얽혀 있었다. 겉으로는 한 덩어리처럼 보였던 벽돌 자체가 또 하나의 정교한 복합재료였던 셈이다.

2026년 10월 1일 발표된 베이항대학교 중심 연구진의 연구 대상은 민물조개 삼각돛조개(Cristaria plicata)의 성숙 진주층이었다. 연구진은 판상체 면에 수직으로 배열된 폭 29±3.9㎚의 문석 나노막대와, 막대 사이에 놓인 폭 4.9±0.4㎚의 공간을 관찰했다. 이 공간에는 구속된 상태로 결정성을 나타내는 생체분자 결정상이 자리했다.

흔히 ‘5㎚ 생체분자 결정’이라고 줄여 말할 수 있지만, 정확한 뜻은 4.9±0.4㎚ 폭의 나노공간에 구속된 생체분자 결정상이다. 독립된 입자의 길이와 폭, 두께가 모두 5㎚라는 의미는 아니다. 4.9㎚ 간격을 1㎝로 확대하면 29㎚ 나노막대는 약 6㎝ 폭이 된다. 폭 6㎝짜리 광물 막대들 사이마다 폭 1㎝의 결정성 분자층이 끼어 있는 확대 모형을 떠올리면 구조를 이해하기 쉽다.

기존 벽돌 모형 안에서 발견된 또 하나의 골격

이번 발견이 기존의 ‘벽돌과 모르타르’ 모형을 폐기한 것은 아니다. 진주층을 이루는 문석 판상체와 판 사이 유기층이라는 큰 구조는 그대로 남는다. 새 연구는 그중 벽돌에 해당하는 문석 판상체 내부에도 더 작은 계층구조가 있다고 설명을 보탰다. 연구진은 나노막대와 생체분자 결정상이 반복되는 이 구조를 결정성 유기–무기 골격(COIF·crystalline organic–inorganic framework)이라고 이름 붙였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단순히 진주층이 단단하다는 사실이 아니다. 재료의 강성, 강도, 파괴인성은 서로 다른 성질이다. 강성은 힘을 받았을 때 탄성 변형에 버티는 정도이고, 강도는 파손이나 항복에 이르기 전까지 견디는 응력을 뜻한다. 파괴인성은 이미 생긴 균열이 더 퍼지는 데 저항하는 능력이다. 유리처럼 단단해도 금이 생긴 뒤 쉽게 깨질 수 있으므로, 높은 강성과 균열 저항을 함께 얻는 것은 별도의 과제다.

진주층을 둘러싼 기존 설명도 하나뿐이지 않았다. 판상체의 맞물림과 미끄럼, 광물 다리, 표면 나노 돌기, 유기층의 점탄성, 균열의 굴절 등이 파괴를 막는 기작으로 논의돼 왔다. 이번 연구는 이 논쟁을 끝냈다기보다 판상체 내부의 결정성 나노구조라는 새로운 작동 층위를 추가했다.

짧은 미끄럼 거리와 응력을 나누는 ‘나노 핀’

연구진이 제시한 해석의 첫 축은 ‘임계 미끄럼 길이 효과’다. 재료 안의 결함이 움직이며 변형을 일으키려면 일정한 거리가 필요한데, 문석 나노막대와 결정 단위가 충분히 작으면 결함이 작동할 수 있는 미끄럼 거리가 제한된다. 연구진은 이 효과가 작은 구조 단위에서도 높은 강성과 강도를 유지하도록 한다고 해석했다.

두 번째 축은 나노공간에 구속된 생체분자 결정상이다. 연구진은 이 결정상이 층간 계면에서 응력이 한곳에 몰리는 현상을 누그러뜨리는 ‘나노 핀’처럼 기능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금속 핀이나 독립된 5㎚ 막대가 박혀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나노막대와 판상체, 여러 층이 서로 따로 움직이기보다 여러 길이척도에서 함께 변형하도록 이어주는 기능을 비유한 표현이다.

이 구조가 제시하는 방향은 유기물을 많이 넣어 재료 전체를 부드럽게 만드는 방식과 다르다. 매우 좁은 공간에 유기분자를 가두고 질서 있는 결정상으로 만들면 광물 구조의 강성 손실을 억제하면서도 응력 집중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단단함을 포기해 균열을 막는 대신, 단단한 구조 안에서 유기물의 위치와 배열을 정밀하게 통제하는 설계 원리다.

천연 구조에서 반합성 시료로 옮긴 검증

연구진은 관찰에 그치지 않고 천연 진주층에서 얻어 재생한 문석 조각에 합성 고분자 수지를 침투시켜 필름 형태의 반합성 진주층을 제작했다. 이 시료에서 탄성계수 43GPa와 파괴인성 12.8MPa·m¹ᐟ²를 보고했다. 탄성계수는 재료의 강성을 나타내고, 파괴인성은 균열 전파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므로 두 수치는 서로 직접 비교하거나 하나의 성능으로 합칠 수 없다.

연구진이 반합성 시료에 관해 제시한 임계 균열 길이는 0.2㎜, 즉 200㎛였고 소성영역 크기는 112㎛였다. 0.2㎜는 4.9㎚ 간격의 약 4만 배다. 연구진의 설명대로라면 나노미터 규모에서 응력을 나누는 구조가 그보다 훨씬 큰 균열의 거동과 연결된다는 의미다.

다만 이 반합성 재료가 천연 COIF를 그대로 복제한 것은 아니다. 천연 생체분자 결정 대신 합성수지가 들어갔고, 43GPa와 12.8MPa·m¹ᐟ²도 천연 진주층 자체가 아니라 재생 문석 조각과 합성수지로 만든 시료의 측정값이다. 따라서 이 성능을 생체분자 결정상 하나의 효과라고 등치할 수 없다.

한 조개에서 찾은 원리, 일반화와 상용화는 남은 과제

이번 연구는 삼각돛조개의 전이층과 성숙층을 비교해 성숙 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조를 분석했다. 전복이나 다른 진주조개를 포함한 모든 진주층에 똑같은 29㎚ 나노막대와 4.9㎚ 간격이 있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성숙 과정에서는 COIF뿐 아니라 판상체 형상과 표면 굴곡, 광물 다리, 나노 돌기, 유기층 상태도 달라질 수 있다. 공개된 자료만으로 생체분자 결정상의 기여를 다른 기작과 완전히 분리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발표 12일 뒤인 2026년 10월 13일 현재 별도 연구진이 COIF 구조와 ‘나노 핀’ 기작을 재현하거나 정면 반박한 논문도 확인되지 않았다. 철회나 정정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독립 검증이 끝났다는 뜻과 다르다. 표본 수와 반복횟수, 오차막대의 정의, 정확한 수화상태와 하중 방향, 시편 치수 등 세부 조건도 추가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산업 적용까지는 더 긴 검증이 남았다. 대면적 제조속도와 수율, 원가, 피로수명, 반복충격, 고온·고습·자외선 환경에서의 열화, 가공성에 관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COIF를 직접 적용한 국내 기업 제품이나 기술이전, 정부 사업, 상용화 사례도 확인되지 않았다. 한국과학기술원 연구진이 2020년 이중 압출 3D프린팅으로 진주층을 모사한 적층구조를 제작해 충격설계를 연구했지만, 이는 마이크로·거시 규모의 벽돌과 모르타르 형상을 구현한 연구로 이번 5㎚ 공간의 생체분자 결정상을 재현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발견은 자연의 복합재료를 모방할 때 겉모양만 닮게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진주층의 벽돌을 다시 확대하자, 강성을 지키는 작은 광물 단위와 균열을 억제하는 나노구속 분자상이 함께 나타났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핵심은 이 계층구조가 다른 진주층에서도 재현되는지, 각 구조가 성능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그리고 좁은 공간에서 분자를 질서 있게 고정하는 원리를 제조 공정으로 옮길 수 있는지다.

자료: 베이항대학교, 미국과학진흥협회, 한국과학기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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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혁 기자 ih.yoo@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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