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서로 밀어내야 할 리튬이온이 3Å까지 모였다…모델 전해질에서 드러난 ‘숨은 군집’

유일혁 기자 · 입력 2026.10.17 06:41
상용 전해액에 흔한 LiPF₆·EC로 만든 모델계서 다중 Li⁺ 용매화 복합체 제시…NMR·양자화학으로 간접 검증했지만 실제 전지 확인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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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극의 자석은 서로 밀어낸다. 양전하를 띤 리튬이온(Li⁺)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상용 전해액에 흔한 성분으로 만든 모델 전해질을 계산해 보니 Li⁺들이 약 3Å까지 접근하는 장면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Å(옹스트롬, 1Å=0.1nm)는 원자 사이 거리를 나타낼 때 쓰는 단위다. 3Å는 0.3nm로, 1mm의 약 333만분의 1이다.

다만 완성된 상용 배터리 내부를 촬영해 찾아낸 구조는 아니다. 연구진이 조사한 핵심 대상은 리튬염인 육불화인산리튬(LiPF₆)을 유기용매 에틸렌카보네이트(EC)에 녹인 모델 전해질이었다. 두 물질 모두 상용 전해액에 널리 쓰이지만, 여러 용매와 첨가제가 섞인 실제 제품의 조성 전체를 재현한 것은 아니다.

컬럼비아대학교와 슈뢰딩거, 뉴욕구조생물학센터 연구진은 이런 다중 리튬 구조의 증거를 제시한 논문을 2026년 10월 14일 공개했다. 연구의 핵심은 리튬이온끼리 새로운 금속 덩어리를 만들었다는 데 있지 않다. EC 분자의 산소가 여러 Li⁺를 둘러싸거나 그 사이를 이어, 같은 전하 사이의 반발을 완충하는 동적인 용매화 복합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계산에선 ‘혼자’, 새 모델에선 40%가 군집

전해질 속 원자와 분자의 움직임은 힘장이라는 계산 규칙으로 추적한다. 힘장은 원자들이 서로 얼마나 끌고 밀어내는지를 수식으로 표현한 모형이다. 기존 OPLS4 힘장에서는 복합체의 99% 초과가 Li⁺ 하나만 포함한 형태로 계산됐다. 반면 양자화학 자료를 학습한 QRNN, 즉 원자 주변 환경과 에너지를 연결하는 머신러닝 모델로 분자동역학을 수행하자 결과가 달라졌다.

1M LiPF₆·순수 EC의 QRNN 궤적에서 Li–Li 방사분포함수(RDF)에 약 3Å의 뚜렷한 피크가 나타났다. RDF는 한 원자를 기준으로 특정 거리에 다른 원자가 얼마나 자주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계다. 3Å 피크는 Li⁺들이 모두 정확히 그 간격으로 줄을 섰다는 뜻이 아니라, 그 부근에서 상대적으로 자주 발견됐다는 의미다. 별도의 거리 주사에서도 2.4~3.0Å 구간에 계산상 에너지 최소점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Li⁺ 두 개 이상이 서로 4.5Å 미만으로 접근한 복합체를 다중 Li 군집으로 분류했다. 3Å는 거리 분포의 피크이고, 4.5Å는 군집을 나눈 판정 기준이다. QRNN 궤적에서 전체 Li⁺ 가운데 다중 군집에 속한 비율은 0.5M에서 약 23%, 1.2M에서 40%, 2.0M에서 68%를 넘었다. 1.2M의 평균 군집 크기는 Li 중심 복합체당 약 1.3개였다. 주로 Li₂와 Li₃가 나타났고 Li₄와 Li₅도 낮은 빈도로 관찰됐다.

이 비율은 실험으로 군집을 하나씩 세어 얻은 값이 아니다. QRNN 시뮬레이션의 궤적에서 계산한 수치다. 또 농도가 높을수록 군집 비율이 커졌지만, 2.0M의 68% 초과라는 값을 일반적인 상용 전해액의 군집률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순간 동결 NMR과 양자화학으로 구조를 교차 점검

머신러닝 계산에서 낯선 구조가 나온 것만으로 실제 존재를 단정할 수는 없다. 연구진은 고수준 밀도범함수이론 계산으로 군집 에너지를 비교하고, 약 500개 원자로 이뤄진 1.2M 계의 순수 양자화학 분자동역학에서도 이중 Li 군집의 안정성을 점검했다. QRNN이 계산한 밀도·점도·확산계수·이온전도도 같은 벌크 물성도 실험값과 대조했다.

실험에서는 빠르게 자리를 바꾸는 액체 속 분자 배치를 붙잡기 위해 시료를 순간 동결한 뒤 고체 핵자기공명(NMR)을 측정했다. NMR은 원자핵이 자기장에 반응하는 방식을 이용해 주변 화학 환경을 살피는 방법이다. 탄소-13 NMR에서는 LiPF₆ 농도가 0.5M에서 1.2M, 2.0M으로 높아질수록 EC 카보닐 피크의 어깨가 커졌다. QRNN 궤적에서 뽑은 구조로 계산한 NMR 스펙트럼은 이 변화를 OPLS4보다 잘 재현했다.

불소-19에서 리튬-7로 전달되는 교차분극 신호는 5배 확대해야 보일 정도로 약했다. 이는 Li⁺와 PF₆⁻가 밀착한 접촉 이온쌍이나 음이온 포함 응집체가 주종이 아니라는 해석을 지지한다. 그러나 약한 Li–F 신호나 NMR 피크 하나가 다중 Li 군집을 직접 보여준 것은 아니다. 연구진의 결론은 NMR, 계산 스펙트럼, 양자화학, 벌크 물성의 정합성을 함께 근거로 삼았다.

한계도 남는다. 액체 구조를 동결하는 과정에서 분포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직접 입증은 제한적이다. 시료마다 수소-1의 완화 시간이 크게 달라 NMR 어깨의 면적을 군집 비율로 환산할 수도 없다. 공개된 Raman 자료 역시 군집을 직접 검출한 수단으로 볼 수 없다.

SEI 반응의 후보 열쇠…아직 실제 전극에서 돌려보진 못했다

이번 구조가 배터리 연구에서 중요한 까닭은 고체전해질계면막(SEI)과의 연결 가능성 때문이다. SEI는 충전 초기에 전해질이 환원되며 음극 표면에 생기는 막이다. 이후 전해질의 추가 분해를 억제하면서 리튬이온의 이동을 허용해 전지 작동에 영향을 준다.

계산상 Li⁺ 하나와 EC 네 분자로 이뤄진 LiEC₄의 1전자 환원전위는 Li/Li⁺ 기준 0.25V였다. 기존 문헌 계산값은 0.49V여서 계산법에 따라 약 0.24V 차이가 났다. 반면 다중 Li 군집의 주요 1전자 환원전위는 계산상 0.68~0.89V였다. 이는 EC계 흑연·실리콘 음극에서 문헌상 SEI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약 0.8V와 겹친다.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다중 Li 군집이 초기 SEI 반응에 참여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단일 Li 복합체보다 다중 Li 복합체가 상대적으로 쉽게 환원될 수 있다는 정성적 경향에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전압이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 군집이 실제 SEI 형성을 지배한다고 결론 낼 수는 없다. 충전된 전극과 전기이중층, 인가전압, 전자전달, EC 분해 이후의 연쇄 반응을 모두 포함한 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

핵심 정량 결과가 순수 EC 기반 모델계에서 나왔다는 점도 중요하다. 실제 전해액에는 여러 혼합용매와 첨가제, 다른 리튬염이 쓰일 수 있으며 이들이 군집 구조와 비율을 바꿀 가능성이 남아 있다. EC와 DMC를 섞은 구조에서도 2.4~3.0Å의 에너지 최소점은 유지됐지만, 순수 EC계에서 얻은 23%·40%·68% 초과의 군집률이 혼합계에서도 확인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번 결과는 배터리 수명이나 급속충전, 용량, 안전성을 높였다는 기술 성과가 아니다. 익숙한 전해질 안에서 원자들이 배열되는 방식에 기존 힘장이 놓친 구조가 있을 수 있다는 초기 증거다. 핵심 QRNN 모델이 상용 소프트웨어에 포함돼 있고 모델 개발 기업 연구자들의 이해관계도 공개된 만큼, 독립 연구팀의 재현이 중요하다. 실제 전지 계면에서도 같은 군집이 형성되는지, 그 군집이 보호막 반응과 이온 이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가 다음 질문이다.

자료: Nature, 컬럼비아대학교, 슈뢰딩거, 뉴욕구조생물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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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혁 기자 ih.yoo@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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