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서늘한 선충의 근육이 보낸 BH2, 몸속 단백질 품질관리 회로를 깨우다

자료사진: 명시야 광학현미경 시야에 보이는 예쁜꼬마선충 여러 개체. 해당 연구·행사의 현장 사진은 아닙니다.
근육은 몸을 움직이는 모터일 뿐일까. 약 1㎜ 길이의 선충에서는 근육이 서늘한 온도에 반응해 다른 조직으로 보낼 물질을 만드는 ‘화학 공장’처럼 움직였다. 근육에서 생산된 저분자 대사물질 7,8-다이하이드로바이옵테린(BH2)은 장과 신경 등으로 이동한 뒤 작동형 물질로 바뀌었다. 이 과정은 질병 관련 단백질이 엉겨 붙는 현상을 줄이고 선충의 수명 조절에도 관여했다.
독일 쾰른대학교와 쾰른대학교병원 등이 참여한 연구진은 이 결과를 2026년 10월 21일 네이처에 공개했다. 핵심은 단순히 낮은 온도에서 생명체의 화학반응이 느려졌다는 데 있지 않다. 근육이 BH2를 만들어 보내고, 이를 받은 조직이 다시 활성형 보조인자로 전환하는 능동적인 조직 간 신호가 발견됐다는 점이다.
성체가 된 뒤 온도를 바꿔 찾아낸 후보
연구진은 선충인 예쁜꼬마선충을 표준 조건인 20°C에서 성체까지 키운 뒤 15°C, 20°C, 25°C로 옮겼다. 배아 때부터 평생 추위에 노출한 실험이 아니라, 성체가 된 이후 온도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살핀 것이다. 저온이 선충의 수명을 늘린다는 현상은 1977년부터 알려졌지만, 이번 연구는 근육에서 출발하는 대사 신호에 초점을 맞췄다.
대사체 분석의 첫 단계에서 15°C 조건에 증가한 물질은 64개였다. 실험당 생물학적 반복은 5회였고, 독립 반복에서도 공통으로 재현된 후보는 45개였다. 연구진은 이 가운데 증가 폭이 크고 테트라하이드로바이옵테린(BH4) 합성경로와 연결된 BH2를 추적했다.
BH2는 단백질이나 호르몬이 아니라 작은 대사물질이다. 연구진의 해석에 따르면 BH2는 조직 사이를 이동하기에 비교적 안정적인 ‘배송 가능한 반제품’이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다이하이드로폴레이트 환원효소인 DHFR-1에 의해 BH4로 환원된다. BH4는 혼자 반응을 일으키는 효소가 아니라, 효소가 제 기능을 하도록 곁에서 돕는 활성 보조인자다.
근육이 만들고 장과 신경이 받아 썼다
저온에서는 근육의 CAT-4가 증가했다. CAT-4는 비오프테린 합성경로에 관여하는 GTP 사이클로하이드롤레이스 I 계열 효소로, 그 증가와 함께 BH2 생산도 늘었다. 연구진이 제시한 회로는 ‘15°C→근육 CAT-4 증가→BH2 생산→다른 조직으로 이동→DHFR-1이 BH4로 환원→방향족 아미노산 수산화효소 작동’으로 이어진다.
조직별 억제 실험은 생산지와 사용처가 다르다는 모델을 뒷받침했다. 근육에서 cat-4의 작동을 낮추자 15°C에서 나타나는 수명 연장이 감소했다. 반면 장·뉴런·표피·생식계에서 cat-4를 낮췄을 때는 같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BH2를 BH4로 바꾸는 dhfr-1은 근육보다 장·뉴런·생식계에서 필요했다. 근육이 물질을 만들어 발송하고, 다른 조직이 이를 받아 활성형으로 전환한 셈이다.
활성화된 뒤의 작동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첫째, BH4는 페닐알라닌 수산화효소인 PAH-1의 보조인자로 작용해 페닐알라닌에서 티로신으로 이어지는 대사를 촉진했고 수명 연장에 기여했다. 둘째, TPH-1에 의존하는 별도 경로는 질병 관련 단백질의 응집과 신경 기능 저하를 억제하는 데 관여했다. 하나의 물질이 모든 일을 직접 수행한 것이 아니라, 전달된 뒤 여러 효소 회로를 가동한 것이다.
따뜻한 조건에서도 드러난 ‘단순 냉각 이상의 효과’
인과관계를 가르는 실험도 진행됐다. 성체기의 cat-4를 억제했을 때 수명 차이는 15°C에서 유의했지만 20°C와 25°C에서는 유의하지 않았다. 반대로 근육에서 cat-4를 과발현하자 15°C뿐 아니라 20°C와 25°C에서도 선충의 수명이 늘었고, 각 온도의 수명곡선 차이는 모두 P값 0.0001 미만이었다. 저온 감지 채널 TRPA-1이 작동하지 않는 선충에서도 효과가 나타났다. 이는 저온 장수가 화학반응의 전반적인 감속만으로 설명되기 어렵고, 근육의 대사 회로가 능동적으로 관여한다는 근거다.
다만 BH2를 먹이면 따뜻한 환경에서도 오래 산다는 뜻은 아니다. 외부에서 150~500µM의 BH2를 투여했을 때 15°C에서는 작지만 유의한 수명 효과가 나타났으나, 20°C에서는 수명을 늘리지 못했다. 심사 과정에서 1mM을 추가로 시험했을 때도 20°C의 평균수명은 대조군 12.22±0.29일, BH2군 11.87±0.30일로 차이가 유의하지 않았다. 따뜻한 조건의 수명 연장은 외부 BH2 투여가 아니라 근육의 cat-4 과발현으로 확인된 결과다.
단백질 품질관리 역시 몸속 모든 단백질을 전수 조사한 결론은 아니다. 단백질 품질관리는 세포가 단백질을 올바르게 접고, 고장 난 단백질을 수리하거나 폐기하는 체계다. 공장에서 불량품이 처리되지 못하고 쌓이듯 단백질이 뭉치면 세포 기능을 해칠 수 있다. 연구진은 선충 장의 IFB-2 응집과 polyQ 응집, 운동·감각 기능, 프로테아좀 활성, TRiC/CCT 샤페로닌 의존성 같은 표지를 이용해 이 체계를 살폈다.
인간세포에서 보인 가능성, 개체 치료까지는 먼 거리
배양한 인간 HEK293 세포에 BH2 10µM을 3일간 처리하자 헌팅턴병 관련 HTT-polyQ74와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관련 TDP-43(A382T), FUS(P525L) 변이 단백질의 응집이 줄었다. 주요 응집 분석은 독립 실험 3회로 이뤄졌다. FUS(P525L) 변이를 가진 인간 유도만능줄기세포 유래 운동뉴런에서도 BH2 또는 티로신을 3일 처리했을 때 세포사멸 표지가 감소했다. 이 시험은 3회 독립 실험, 총 15개의 생물학적 반복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이는 헌팅턴병이나 ALS를 치료했다는 결과가 아니다. 특정 배양세포와 특정 FUS 변이를 가진 운동뉴런에서 관찰한 표지 변화이며, 동물 치료시험이나 임상시험은 수행되지 않았다. 포유류와 사람의 수명, 노화 속도, 인지·운동기능도 시험하지 않았다. 산발성 ALS나 다른 유전형으로 일반화할 근거도 아직 없다.
안전성에도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다. 파라콰트로 산화스트레스를 일으키자 BH2의 단백질 응집 억제 효과가 사라졌다. BH2가 BH4로 충분히 환원되지 않으면 포유류 혈관에서 BH4와 경쟁해 eNOS 언커플링을 일으키고, 보호성 산화질소 대신 초과산화물이 생성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10~200µM의 단기 인간세포 시험에서 미토콘드리아 초과산화물 증가가 검출되지 않았지만, 전신 독성이나 혈관 영향, 장기투여 안전성을 입증한 것은 아니다. GCH1·BH4 경로가 신경 손상 뒤 통증 과민을 촉진할 가능성도 있어 조직에 따라 이익과 위험이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연구는 BH2를 장수 보충제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한 조직의 온도 반응이 다른 조직의 단백질 품질관리와 수명 조절로 이어지는 후보 회로를 밝힌 기초연구다. 저온 장수에는 AFD 온도감지 신경, TRPA-1–DAF-16, 지방 대사와 자가포식, 프로테아좀 등 다른 경로도 관여한다. 실험의 눈가림이 이뤄지지 않았고 표본 크기도 사전 통계검정이 아닌 분야 관행에 따라 정해졌으며, 독립 연구진의 재현 결과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진 일부가 BH4와 전구체·하류 대사물질의 운동기능 장애 예방·치료 이용에 관한 출원 중 특허의 공동발명자라는 이해관계도 함께 살펴야 한다. 발견의 의미는 ‘추우면 오래 산다’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근육이 전신의 노화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대사 신호의 출발점일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 있다.
자료: 네이처, 독일 쾰른대학교, 쾰른대학교병원, 질병관리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