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티타늄을 약하게 만들던 산소의 반전…1.2GPa 강도와 23.5% 파단변형률 함께 확보

티타늄 반죽에 섞인 이물질처럼 취급되던 산소를 굳이 빼내지 않고, 결정 내부의 알맞은 ‘방’으로 옮겨 놓으면 어떻게 될까. 중국 베이징과학기술대를 중심으로 중남대, 오클랜드대, 퀸즐랜드대 등이 참여한 연구진은 산소가 많은 Ti-6Al-4V 합금에서 최대인장강도 1,200±30MPa, 즉 1.20±0.03GPa와 파단변형률 23.5±1.5%를 함께 얻었다. 1.20GPa는 1㎟ 단면에 약 122kgf가 걸리는 응력과 같은 크기다. 다만 실제 부품이 122kg을 안전하게 버틴다는 뜻은 아니며, 부품의 형상과 결함, 반복 하중은 별도로 따져야 한다.
이번 결과의 핵심은 산소의 총량보다 산소가 자리 잡은 위치에 있었다. 연구 합금의 산소량은 0.39±0.02중량%로, 합금 1kg당 약 3.9g에 해당한다. 논문이 비교 기준으로 제시한 ASTM B265 Grade 5의 산소 상한 0.20중량%보다 약 1.95배 높다. 같은 양의 산소가 들어 있어도 O′상이 만들어지지 않은 대조 합금은 약 2% 변형에서 끊어졌다. 성분표가 같더라도 원자가 결정 속 어디에 배치됐느냐에 따라 재료의 거동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조다.
강하게 하지만 잘 늘어나지 못하게 했던 산소
산소는 티타늄을 강화하는 한편 전위 이동과 쌍정을 방해한다. 전위는 금속 결정 안에서 원자층이 조금씩 미끄러지도록 돕는 선 모양의 결함이고, 쌍정은 결정 일부가 거울상처럼 방향을 바꾸며 변형을 받아내는 현상이다. 두 움직임이 막히면 재료는 강해질 수 있지만 연성과 파괴인성은 떨어진다. 산소에 오염된 티타늄을 고성능 합금 원료로 되돌리기 어려웠던 이유다.
연구진은 산소를 없애는 대신 결정 안에서 재배치하는 길을 택했다. 산소량 0.39중량%인 Ti-6Al-4V 분말을 레이저 분말베드융합으로 적층한 뒤 진공에서 900℃로 2시간 열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알루미늄은 α상 쪽에, 바나듐은 β상 쪽에 풍부해졌고 산소도 다시 나뉘었다. 상은 같은 재료 안에서도 원자 배열과 조성이 다른 영역을 뜻한다. 재배치된 산소가 β상 안에 들어가면서 원자 배열이 바뀌어 사방정계 O′상이 형성됐고, 최종적으로 α–β–O′의 3상 조직이 만들어졌다.
O′상의 평균 크기는 약 4nm였다. 굵기 80μm인 머리카락의 약 2만분의 1에 불과하다. 무작위 투과전자현미경 영상 7장으로 구한 O′의 전체 합금 내 면적분율은 7.9±1.2%였고, 방사광 회절로 추정한 값은 약 7.5%였다. 이는 3차원 부피분율을 직접 측정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잡아당길 때 펼쳐진 나노미터 크기의 ‘접힌 에어백’
연구진의 해석에 따르면 O′상은 잡아당길 때 일부가 작동하는 ‘접어 둔 에어백’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 실제 공기주머니가 들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인장 과정에서 O′상의 일부가 응력유기 마르텐사이트 α″상으로 변했고, α″상 내부에서는 쌍정이, α상에서는 전위 활주가 일어났다. 변형을 받으며 상이 바뀌는 변태유기소성(TRIP)과 쌍정으로 변형을 분산하는 쌍정유기소성(TWIP)이 함께 작동해 가공경화를 유지하고 조기 파괴를 늦췄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모든 O′상이 α″상으로 바뀐 것은 아니며 변형 뒤에도 일부 O′상이 남아 있었다.
상변태는 변형 전후 전자현미경 관찰뿐 아니라 상하이 싱크로트론 방사광시설 BL12SW 빔라인에서 시편을 잡아당기는 동안 실시한 방사광 X선 회절로 추적했다. 연구진은 TEM·SAED, EBSD, 원자분해능 STEM, 원자탐침단층촬영과 함께 분자동역학, 밀도범함수이론 계산도 결합했다. 다만 계산에서 제시된 산소 1.1원자%의 임계치는 실제 바나듐 함유 β상이 아닌 산소를 넣은 순수 티타늄 초격자를 대상으로 한 보조 증거다. 실제 합금의 정밀한 공정 기준으로 볼 수는 없다.
온도에 따른 비교는 균형 설계의 중요성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800℃에서 2시간 처리한 시편은 최대인장강도 1,261±10MPa로 더 강했지만 O′상이 없었고 파단변형률은 6.4±0.5%에 그쳤다. 900℃·2시간 조건은 강도를 1,200±30MPa로 조금 양보하는 대신 파단변형률을 23.5±1.5%로 끌어올렸다. 1,000℃·2시간에서는 1,114.6±8.5MPa와 24.9±0.6%를 기록했다. 반면 1,100℃에서는 O′상이 사라지고 α″상이 미리 형성되면서 파단변형률이 4.3±0.9%로 떨어졌다. 900℃에서도 시간을 10시간으로 늘리면 O′상이 크게 줄었다.
폐합금 활용의 발상 전환, 그러나 좁은 공정 창
이번 연구가 직접 입증한 것은 산소가 많은 분말을 고성능 합금 원료로 활용할 가능성이다. 불순물을 무조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상변태를 일으키는 설계 요소로 이용할 수 있다는 발상 전환이다. 국내에서는 한국재료연구원이 Ti-6Al-4V의 용해부터 중간재, 형단조, 가공으로 이어지는 28인치급 가스터빈 압축기 블레이드 제조 기반을 2023년 발표했다. 티타늄 합금 스크랩으로 분말을 만들면서 산소 농도를 낮추는 기술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이번 연구처럼 산소를 β상과 O′상에 배치한 기술은 아니며, 국내에서 α–β–O′ 다상 설계를 재현했다는 자료도 확인되지 않았다.
넘어야 할 문턱도 높다. 연구진이 조사한 산소 범위는 0.10~0.55중량%였지만 0.43중량%와 0.55중량%에서는 출력 단계부터 심한 균열이 발생했다. 0.43중량% 합금은 열처리 후에도 연성을 회복하지 못했다. 산소가 많을수록 성능이 좋아진다는 결과가 아니라, 0.39중량% 부근의 산소와 900℃·2시간이라는 제한된 조건에서 특정 조직을 얻은 결과에 가깝다.
조건별 인장시험도 시편 3개씩 수행됐다. 확인된 핵심 성능은 상온 정적 인장 특성이며 피로수명, 균열성장, 파괴인성, 충격인성, 부식, 용접성, 고온 성능과 장기 열 안정성은 검증되지 않았다. 실제 폐스크랩에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철·질소·수소·오일 등 복합 오염도 다루지 않았다. 분말 제조 에너지와 정제비, 수율, 대형 제품의 결함률, 탄소배출도 평가 대상이 아니었다.
논문은 2026년 11월 3일 공개된 동료심사 통과 조기 공개본으로, 최종 편집 전이다. 공개 이틀 뒤인 11월 5일 기준 독립 연구진의 재현 결과나 출판 후 학술 반론은 확인되지 않았다. 산소량도 현행 Grade 5 상한을 넘기 때문에 이번 인장 결과만으로 항공·의료용 규격품을 대체할 수 없다. 산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오래된 문제를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설계 문제로 바꾼 것이 이번 연구의 의미라면, 그 좁은 배치 조건을 실제 폐부품과 대형 제품에서도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가 다음 질문이다.
자료: 베이징과학기술대, 중남대, 오클랜드대, 퀸즐랜드대, 상하이이공대, 중국과학원 물리연구소, 랴오닝재료연구원, 밍웨호수연구소, 상하이 싱크로트론 방사광시설, 한국재료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