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결합하지 않은 황 넷, 전자구름으로 협동하다…서울대가 만든 다중심 촉매

한 기둥 주위에 선 네 사람이 서로 손을 잡지 않고도 한 팀처럼 물건을 건넬 수 있을까. 서울대학교 화학부 홍승윤 교수팀은 분자 안에 배치한 황 원자 4개가 직접 황–황 공유결합을 맺지 않은 채 전자구름을 겹쳐 협동하도록 만들었다. 연구진이 개발한 유기황 촉매 OS1에서 황 하나가 할로젠을 붙잡으면, 이웃 황들은 뒤에서 전자를 밀어 결합을 느슨하게 한다. 분자 규모에서 ‘잡기’와 ‘넘기기’를 나눠 맡는 릴레이인 셈이다.
연구진은 이를 황 4개가 ‘하나의 원자처럼’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비유다. 황 원자들이 실제 하나로 합쳐진 것이 아니다. OS1은 모두 69개 원자로 이뤄진 분자이며, 각 황은 같은 중심 탄소와 유기 골격에 공유결합으로 고정돼 있다. 정확히는 네 황의 오비탈이 공간을 통해 겹쳐 하나의 4중심 최고점유분자오비탈(HOMO)을 공유한다. HOMO는 전자가 채워진 오비탈 가운데 에너지가 가장 높은 자리로, 다른 물질에 전자를 얼마나 쉽게 건넬지 판단하는 중요한 전자구조다.
황 4개보다 중요했던 ‘놓인 방식’
OS1의 성능은 테부코나졸에 브로민을 붙이는 대표 시험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테부코나졸 0.050 mmol과 NBS 1당량을 건조 DCE 용매에서 아르곤 분위기, 실온으로 12시간 반응시켰을 때 촉매가 없으면 생성물의 내부표준 수소 핵자기공명(NMR) 수율은 0%였다. OS1을 1 mol%, 즉 기질 약 100분자당 촉매 한 분자꼴로 넣자 수율은 99%가 됐다.
이 차이는 황의 수만 늘린다고 생기지 않았다. 황이 하나인 OS3을 1 mol% 넣었을 때 수율은 0%였고, 황 4개를 지닌 기존 스파이로 화합물 OS6도 9%에 그쳤다. 황 2개를 가진 OS2는 31%였다. 같은 황이라도 전자구름이 어떤 방향으로 겹치도록 고정됐는지가 촉매 기능을 갈랐다는 뜻이다.
결정구조에서 OS1의 황 사이 거리는 2.815~3.090 옹스트롬, 즉 0.282~0.309 nm였다. 이를 10억 배 확대하면 약 28~31 cm가 된다. 황끼리 직접 결합하지 않아도 전자는 파동의 성질을 지니므로 이 간격을 사이에 두고 오비탈이 겹칠 수 있다. 계산에서 OS1의 HOMO 에너지는 −6.86 eV로, OS2의 −7.10 eV보다 0.24 eV, OS3의 −7.58 eV보다 0.72 eV 높았다. 연구진은 이렇게 높아진 HOMO가 할로젠을 받아들이는 능력과 연결된다고 해석했다.
한 황이 잡고, 이웃 황이 놓아준다
촉매의 첫 역할은 NBS·NCS·NIS로부터 각각 브로민·염소·아이오딘을 받아오는 것이다. 중성 상태 OS1의 높은 HOMO가 전자를 내놓아 할로젠을 포착한다. 이어 할로젠을 받은 술포늄 상태가 되면, 할로젠과 직접 결합하지 않은 이웃 황의 비공유전자쌍이 S–X 결합의 반결합 오비탈로 전자를 보낸다. 반결합 오비탈은 전자가 들어갈수록 해당 결합을 약하게 만드는 자리다.
연구진은 이 과정을 3중심–4전자 상호작용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원자에 네 전자가 퍼져 S–할로젠 결합을 늘이고 약화함으로써, 붙잡은 할로젠을 방향족 기질에 넘기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다. 계산된 S–Br 결합 길이는 OS1+Br에서 2.33 옹스트롬으로, OS3+Br의 2.29 옹스트롬보다 길었다. 계산된 브로민 전달 자유에너지도 OS1 경로가 −69.3 kcal·mol⁻¹로 OS3의 −61.0 kcal·mol⁻¹보다 8.3 kcal·mol⁻¹ 더 유리했다.
다만 원자와 전자의 움직임을 직접 촬영한 결과는 아니다. 연구진은 단결정 X선 회절과 UV–가시광 분광, 황 K-edge XANES, 시간에 따른 수소 NMR과 VTNA 속도론, 질량분석, 여러 계산화학 기법과 구조 대조실험을 종합해 작동 원리를 제시했다. 브로모술포늄 중간체도 표준 촉매 반응 도중 실시간으로 본 것이 아니라, 별도의 영하 40도 저온·화학량론 조건에서 30분간 포착해 검출했다.
오래된 오비탈 개념을 실제 촉매로
황의 3p 오비탈이 스파이로 구조에서 공간을 통해 상호작용한다는 개념은 1976년에 보고됐고, 여러 황을 포함한 헤테로스파이로 화합물의 합성과 광전자분광 연구도 1986년에 나왔다. 이번 연구가 황 4개짜리 스파이로 분자를 처음 만들거나 황의 공간상 상호작용을 처음 발견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도 1986년 물질을 OS6 대조군으로 사용했다.
새로운 지점은 오비탈의 위상을 다시 설계해 높은 HOMO와 할로젠 전달 능력을 한 분자 안에서 함께 구현하고, 이를 실제 촉매 반응에 연결한 데 있다. 서울대는 공간상 오비탈 상호작용으로 전자구조를 설계한 다중심 주족원소 분자촉매 전략이라는 범위에서 세계 최초라고 밝혔다. 논문은 2026년 4월 14일 접수돼 7월 24일 채택됐으며 9월 2일 온라인 출판됐다.
연구진이 무촉매 반응성이 낮거나 수율이 나쁜 조합 가운데 고른 9개 비교시험에서 OS1의 NMR 수율은 90~99%였다. 비교 대상은 기존 촉매법 7개와 화학량론적 시약법 1개였다. 그러나 촉매량과 용매, 온도, 시간, 할로젠 시약이 서로 같지 않아 촉매 고유 활성을 동일 조건에서 겨룬 결과로 볼 수는 없다. 메탁살론 염소화에서는 OS1이 NMR 수율 90%, 기존 방법이 91%로 기존법이 조금 높았다.
분자에 손잡이를 달았지만, 아직은 플라스크 기술
OS1은 방향족과 헤테로방향족 화합물에 브로민·염소·아이오딘을 붙이는 친전자성 할로젠화에 적용됐다. 합성이 상당히 진행된 복잡한 의약품·농약 유사 골격에 할로젠을 붙이는 ‘후기 기능화’도 시험했다. 이는 완성된 분자에 후속 변환을 위한 손잡이를 다는 작업과 비슷하다. 하지만 할로젠을 붙인 생성물의 약효와 독성, 대사, 약동학은 평가하지 않았으므로 신약 개발이나 약효 향상을 뜻하지 않는다.
전체 후기 기능화 그림에 제시된 생성물 수율은 29~99%였다. 하이드록시클로퀸 브로민화는 29%, 설파독신 염소화는 50%, 소라페닙 염소화는 55%, 플루코나졸 아이오딘화는 66%였다. 선정된 9개 비교시험의 90~99%와 전체 적용 결과의 29~99%는 구분해야 한다.
최대 확대 실험도 산업 생산과는 거리가 있다. 연구진은 테부코나졸 1.54 g에 OS1 32.3 mg을 넣어 60도에서 12시간 반응시킨 뒤 생성물 1.72 g을 분리수율 89%로 얻었다. 이 시험에서 명목상 촉매회전수는 약 89이지만, 촉매를 회수해 반복 사용하거나 수백 회 작동시킨 장기 수명 자료는 아니다.
환경성과 경제성도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OS1은 황 분말이 아니라 큰 비나프틸 골격을 가진 분자다. 전구체 합성에는 n-부틸리튬과 영하 78도, 아르곤 조건이 필요했고, 촉매 제조에는 톨루엔 110도와 실리카겔 정제가 쓰였다. 일반 반응 다수에는 AgSbF₆가 들어갔으며 용매 DCE는 유럽화학물질청의 발암성 허가대상 물질이다. 따라서 무금속 친환경 공정으로 일반화할 수 없고, 전 과정 환경성·원가·촉매 회수에 관한 평가도 필요하다.
출판 후 5일인 2026년 9월 7일 기준 독립 재현이나 구체적인 외부 비판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다중 원자의 공간 배열을 촉매 설계 변수로 삼을 수 있음을 황 기반 방향족 할로젠화에서 보여줬다. 다른 주족원소와 다른 반응에서도 같은 전략이 통할지는 아직 전망의 영역이다. 독립 재현과 장기 내구성, 공기·수분 내성, 촉매 회수, 원가와 환경성 검증이 뒤따라야 분자 속 네 황의 협동이 실험실 밖에서도 힘을 발휘할지 판단할 수 있다.
자료: 서울대학교·Springer Nature·Cambridge Crystallographic Data Centre·포항가속기연구소·기초과학연구원·유럽화학물질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