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매직버섯 환각 성분 실로시빈, 항암 부작용 신경손상 미리 막는다

항암화학요법을 받은 환자들이 흔히 호소하는 증상 중 하나가 손발이 저리고 화끈거리며 감각이 무뎌지는 증상이다. 심하면 젓가락질이나 단추 채우기 같은 간단한 동작도 어려워진다. 이런 항암화학요법유발말초신경병증(CIPN)을 예방할 약이 마땅치 않았던 상황에서, 뜻밖에도 '매직버섯'의 환각 성분인 실로시빈을 화학요법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투여하면 생쥐에서 이 신경 손상을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텍사스대 MD앤더슨 암센터 연구진이 이끈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2026년 9월 3일자에 발표됐다.
30년, 40여 건 임상시험에도 없던 예방약
CIPN은 신경독성이 있는 항암화학요법을 받는 환자의 최대 60%에서 나타나는 흔한 부작용이다. 한번 신경이 손상되면 대체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이 그동안의 정설이었다. 문제는 이를 미리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임상종양학회(ASCO)는 2020년 개정 가이드라인에서 CIPN 예방을 위해 권고할 만한 약이 없다고 명시했다. 오히려 한때 기대를 모았던 아세틸-엘-카르니틴 성분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로울 수 있어 사용을 말려야 한다고 판정했을 정도다. 현재 그나마 근거가 인정되는 약물인 둘록세틴조차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CIPN 예방·치료제를 놓고 40건 넘는 무작위대조시험이 약 30년에 걸쳐 진행됐지만, 임상적으로 뚜렷한 예방 효과를 보여준 약제는 사실상 없었다.
화학요법 전 두 번 투여, 8개월 넘게 유지된 보호 효과
연구는 두경부외과 모란 아미트 조교수와 통증의학과 패트릭 도허티 교수가 공동으로 이끌었다. 연구진은 시스플라틴·파클리탁셀·도세탁셀 등 실제 임상에서 널리 쓰이는 항암화학요법제를 투여한 생쥐, 종양을 직접 이식한 구강암 생쥐, 그리고 외과수술 환자 29명에게서 채취한 사람 말초신경 조직과 사람 유래 감각신경세포까지 함께 이용해 결과를 검증했다.
화학요법을 시작하기 전 실로시빈을 두 차례 예방적으로 투여하자, 가벼운 접촉에도 통증을 느끼는 촉각 과민증, 즉 CIPN의 핵심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시스플라틴을 한 달에 한 번씩 여섯 차례 반복 투여하는 모델에서는 매 주기가 시작되기 전 실로시빈을 다시 투여했는데, 이렇게 하자 8개월이 넘는 추적관찰 기간 내내 보호 효과가 유지됐다. 반대로 화학요법만 반복하고 실로시빈을 추가로 투여하지 않은 생쥐는 대조군과 비슷하게 과민증이 다시 나타났다. 즉 실로시빈은 손상이 생기기 전에 미리 투여해야 효과가 있으며, 이미 생긴 신경 손상을 되돌리지는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실로시빈 투여가 화학요법 본연의 항암 효과, 즉 종양을 죽이는 작용은 방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경 속 '에너지 배달 트럭'을 되살리다
연구진이 제시한 기전은 이렇다. 신경세포는 팔다리 끝까지 길게 뻗은 축삭을 따라 에너지를 만드는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를 실어 날라야 한다. 미토콘드리아를 세포 곳곳에 에너지를 배달하는 트럭에 비유하면, 화학요법은 이 트럭의 이동을 멈춰 세워 신경 말단을 에너지 부족 상태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실로시빈은 세로토닌 5-HT2A 수용체, 즉 신경세포 표면에서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달라붙는 스위치 단백질을 활성화해 멈춰 섰던 미토콘드리아 이동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것으로 설명됐다. 실제로 이 수용체를 차단하는 물질을 함께 투여하자 실로시빈의 보호 효과가 사라져, 연구진이 제시한 경로가 맞다는 것을 뒷받침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환각 작용이 없는 실로시빈 유사 화합물, 연구팀이 'TBG'라고 부른 물질도 실로시빈과 동등한 신경보호 효과를 보였다는 점이다. 이는 신경을 보호하는 효과가 환각 체험 자체와는 분리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의의와 남은 과제
이번 결과를 근거로 유방암·대장암·두경부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사람 대상 2상 임상시험 'NeuroGuard'가 준비되고 있다. 다만 정확한 시작 시점이나 세부 시험 설계까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외부 전문가들은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 결과를 실로시빈이 환자의 화학요법유발 신경병증을 예방하거나 치료한다는 증거로 곧바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험 모델과 실제 임상종양학 현장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으며, 용량과 투여 시점, 안전성,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 정신과적 선별검사, 눈가림 여부, 환자가 실제로 체감하는 결과 지표 등을 놓고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른 전문가는 화학요법 통증의 동물 실험 단계에서의 성공이 사람 대상의 효과적인 치료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가 그동안 많았다며,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것이 촉각을 담당하는 가는 신경섬유에 대한 효과인 만큼 더 굵은 신경섬유에 대한 영향도 추가로 살펴봐야 한다고 짚었다.
이번 연구는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국립암연구소(NCI) 등 공공·자선 재원의 지원을 받아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으며, 연구자 개인의 특허나 지분 등 이해상충 여부는 별도로 확인되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실로시빈과 CIPN을 직접 연결해 다루는 연구나 기업, 정책은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국내 암 유병자가 약 201만 명에 이르는 가운데,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 상당수가 손발 저림 등 CIPN 증상을 겪는다는 서술이 국내 간호학 학술지 논문에서도 확인되는 만큼, 예방법을 둘러싼 이번 연구의 진전은 국내 암 환자들에게도 참고할 만한 소식이다.
자료: 미국 텍사스대 MD앤더슨 암센터, 국제학술지 Science,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버지니아커먼웰스대, ClinicalTrials.go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