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루비듐 원자 자유낙하로 잰 '양자 위상'…아인슈타인 등가원리, 양자세계서 첫 실증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9.22 06:43
벤구리온대 등 국제공동연구팀, 초저온 원자 간섭계로 측정…"중력 통합 증명 아니다" 선긋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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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Israel Ministry of Foreign Affairs (사진: David Sara, CC BY-SA 2.0)

엘리베이터 줄이 끊어져 떨어지는 순간, 안에 탄 사람은 몸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무게가 다른 물건이라도 같은 속도로 떨어지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로, 아인슈타인은 이 현상을 일반상대성이론의 출발점으로 삼아 "등가원리"라 불렀다. 그런데 이 원리가 사람이나 야구공 같은 거시적 물체가 아니라, 동시에 여러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성립할까. 이스라엘 벤구리온대가 주도하고 독일 울름대와 독일항공우주센터(DLR), 영국 옥스퍼드대와 사우샘프턴대, 미국 텍사스A&M대가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이 루비듐 원자를 자유낙하시켜 그 답을 직접 재는 데 성공했다. 측정된 값은 등가원리가 예측한 그대로였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2026년 9월 2일 게재됐다.

물체 하나가 두 곳에 동시에 있으려면

등가원리는 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에서 무게가 다른 공 두 개를 함께 떨어뜨려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것을 보였다는 일화로 흔히 설명된다. 문제는 이 원리를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확인하려면 훨씬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원자 하나가 "떨어지는 상태"와 "제자리에 머무는 상태"에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이 가능하다. 두 상태가 각각 다른 길을 걷다가 다시 합쳐질 때 남는 미세한 위상차를 재면, 그 물체가 정말 등가원리대로 떨어졌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위상차를 만들어내고 재려면 원자를 극저온으로 식혀 양자 상태가 흐트러지지 않게 붙잡아야 하고, 두 경로를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정밀하게 갈랐다가 다시 정확히 겹쳐야 한다. 이번 실험 이전에도 중력이 양자 간섭무늬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나 서로 다른 원자 종류가 같은 속도로 낙하한다는 사실은 확인된 바 있었다(1975년 중성자 간섭계를 이용한 실험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자유낙하하는 양자 물체의 위상 자체를 직접 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연구팀은 밝혔다.

"양자 갈릴레오 간섭계"로 잰 위상

연구팀은 "양자 갈릴레오 간섭계"라 이름 붙인 장치를 만들었다. 원자칩 위에서 약 2만 개의 루비듐 원자를 절대영도(영하 273.15도)보다 겨우 30억분의 3.3도 높은 3.3나노켈빈까지 냉각해 극저온 원자구름으로 만든 뒤, 이 원자구름의 물질파를 두 갈래로 나눴다. 한쪽은 자기력으로 붙잡아 제자리에 머물게 하고, 다른 한쪽은 자유낙하시켰다. 두 경로는 최대 약 7.5마이크로미터까지 벌어졌는데, 사람 머리카락 굵기(약 70~100마이크로미터)의 10분의 1 수준이다. 최대 2000마이크로초(2밀리초) 동안 떨어뜨린 뒤 두 경로를 다시 합치자 간섭무늬에 누적된 위상차는 약 80라디안, 무늬로 치면 약 13번의 진동에 해당했다. 이 값은 이론적으로 계산한 예측치와 약 2.5%의 오차 안에서 일치했다.

완벽하지 않았던 신호

다만 모든 것이 매끄럽지는 않았다. 간섭무늬의 선명도(가시도)는 낙하 초기 약 80%에서 낙하 시간이 길어질수록 20%까지 떨어졌다. 연구팀은 곡률이 있는 자기장 아래서 두 경로의 물질파 모양이 서로 다르게 변형되면서 재결합이 완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정밀한 측정을 통해 연구팀은 등가원리가 이번 실험이 다룬 낮은 질량·에너지 영역에서는 양자 세계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해석했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실험이 중력과 양자역학을 통합하거나 중력 자체가 양자적 성질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아니라고 논문에 명시했으며, 완전한 이론 통합을 이룬 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인정했다.

"자석에 튕긴 효과 아니냐"는 반론

연구팀은 논문에서 "이 실험은 등가원리가 성립하지 않는 모든 가능한 모델을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스스로 한계를 밝혔다. 실제로 프리프린트 공개 이후 원자간섭계 연구자인 피터 아젠바움과 크리스 오버스트리트는 별도의 코멘트 논문에서 "관측된 위상 변화는 원자를 붙잡는 자기장 트랩에서 생기는 '자기적 되튐 위상'으로도 설명할 수 있으며, 이 되튐 위상은 관성질량에만 반비례할 뿐 중력질량과는 무관하다"며 이번 실험이 정말 등가원리의 양자적 측면을 검증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연구팀은 재반박 논문을 통해 "부양 조건과 무관하게 이 간섭계는 균일한 중력장에 민감하다"고 답했다. 이 논쟁은 저자들의 답변까지 오간 상태이며 그 이후 제3자의 판정이나 완전한 종결 여부는 확인되지 않아 현재진행형이다.

공동저자 중에는 202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로저 펜로즈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충분히 무거운 물체는 중력에 의해 양자 중첩이 저절로 붕괴한다"는 가설을 제안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번 실험에 쓰인 원자의 질량과 중첩 유지 시간은 그 가설을 시험하기엔 규모가 턱없이 작아 검증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후속 연구로 원자보다 훨씬 무거운 나노다이아몬드를 이용해 더 큰 질량의 간섭계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 한국 연구진이나 기업, 정부 기관이 관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자료: 벤구리온대, 옥스퍼드대, 울름대, 사우샘프턴대, 독일항공우주센터(DLR), 텍사스A&M대, Science Advances(AA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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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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