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유전되는 EGFR T790M 생식세포 변이, 비흡연자 폐암 위험 60배 이상 높인다 — 다나파버·23앤드미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9.22 07:43
330만 명 유전체 분석…애팔래치아 이주민 후손서 보유율 8배 높아, 검진 기준 재검토 논의로
[기획] 유전되는 EGFR T790M 생식세포 변이, 비흡연자 폐암 위험 60배 이상 높인다 — 다나파버·23앤드미
이번 연구를 이끈 다나파버 암연구소 재클린 로피콜로 박사. (사진 출처=다나파버 암연구소)

평생 담배를 입에 대지 않은 사람이 폐암 진단을 받으면 흔히 "왜 하필 나에게"라는 물음이 뒤따른다. 이 물음에 유전자 차원의 구체적인 실마리를 제시하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나파버 암연구소(Dana-Farber Cancer Institute)와 23andMe 리서치 연구소(23andMe Research Institute) 공동 연구팀은 330만 명 이상(3,372,531명)의 유전체·자가보고 건강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유전되는(생식세포성) EGFR 유전자의 T790M 변이가 특히 비흡연자의 폐암 위험을 60배 이상 높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국제학술지 Science에 발표했다.

내성 변이인 줄만 알았던 유전자, 알고 보니 '타고나는' 위험이었다

T790M은 원래 EGFR 표적항암제로 치료받던 폐암 환자에게서 나중에 '후천적으로' 생겨 약효를 무력화시키는 내성 변이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이 변이가 아주 드물게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태어날 때부터 몸속 모든 세포에 존재하는 '생식세포성' 형태로도 존재하며, 이 경우 폐암 발병 위험 자체를 크게 끌어올린다는 사실을 대규모 데이터로 확인했다. 실제로 이 변이 보유자는 흡연 여부와 무관하게 전체적으로 폐암 발생 오즈비(상대적 위험도)가 약 25배에 달했고, 담배를 피운 적이 없는 사람만 놓고 보면 이 수치가 60배 이상으로 뛰었다. 반면 흡연 경험이 있는 보유자의 오즈비는 10~11배 수준이었다. 흡연이 폐에 '불을 붙이는 행위'라면, 이 변이를 가진 사람은 불을 붙이지 않아도 위험이 크게 높아지는 셈이다. 이 변이는 폐암 외 17종의 다른 암과는 유의한 연관성이 보이지 않아, 폐암에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유전 위험 인자로 제시됐다. 전체 인구 중 보유율은 약 1만 5,850명 중 1명꼴로 매우 드물다. 생식세포 T790M과 폐암의 연관성 자체는 2005년 한 가족에서 처음 보고된 뒤 2012년 이후로도 소규모 가족·환자 사례로만 산발적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 연구는 이를 수백만 명 규모로 확장해 정량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200여 년 전 애팔래치아로 건너온 이주민의 유전자

연구팀이 보유자들의 유전 계보를 추적한 결과는 한 편의 미스터리 서사에 가까웠다. 보유자 다수가 약 200~280년 전, 그러니까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사이 미국 남부 애팔래치아, 즉 테네시·앨라배마·조지아 등지의 산간지대에 정착한 영국·아일랜드계 소규모 이주민 집단의 단일 조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처럼 소수 집단에서 시작된 특정 유전 변이가 후손 인구에 비정상적으로 많이 남는 현상을 유전학에서는 '창시자 효과'라고 부른다. 이 효과 덕분에 이 지역과 후손 인구의 보유율은 전국 평균보다 뚜렷이 높았다. 전국 평균이 1만 5,850명 중 1명꼴이라면, 남부 애팔래치아 지역에서는 2,000명 중 1명꼴로 변이를 갖고 있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유독 한 지역에 위험이 몰려 있는 셈이다. 200여 년 전 산간지대로 흘러든 소수 이주민의 유전자가 오늘날까지 후손들의 폐암 위험을 좌우하고 있다는 점은, 유전학이 어떻게 역사와 지리를 거슬러 올라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크리스탈볼은 아니다" — 남은 한계와 과제

연구를 이끈 다나파버 암연구소의 재클린 로피콜로(Jaclyn LoPiccolo) 등 연구진은 이번 결과에 스스로 분명한 선을 그었다. 오즈비로 표현된 25배, 60배 같은 수치는 어디까지나 '상대적' 위험도일 뿐, 이 변이를 가진 개인이 실제로 평생 폐암에 걸릴 정확한 확률, 즉 절대위험까지 알려주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이 오즈비가 "개인의 평생 위험을 알려주는 크리스탈볼은 아니다"라고 직접 밝혔다. 같은 변이를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왜 일부만 실제로 발병하는지, 왜 유독 폐암에만 특이적으로 작용하는지, 환경 노출이나 다른 후천적 돌연변이가 어떻게 함께 작용하는지는 이번 연구로도 규명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또 T790M이 폐암의 유일한 유전적 원인은 아니라고 밝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다른 유전 요인이 있을 가능성도 열어뒀다. 아울러 이번 연구에 참여한 23andMe 코호트는 자발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구매하고 연구에 동의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어 미국 전체 인구를 완벽히 대표하지는 못할 수 있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현재 폐암 저선량 CT 검진은 흡연력이 많은 고령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증상이 없는 유전 변이 보유자를 위한 근거 기반 선별검사나 모니터링 지침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흡연력 중심 검진, 유전 정보로 보완될까

연구진은 이번 발견을 근거로 흡연력 중심으로 짜인 현행 폐암 검진 기준에 유전적 위험도를 함께 반영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이는 아직 확정된 임상 권고는 아니며, 앞으로 침투율과 기전에 대한 후속 연구가 뒷받침돼야 할 사안이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담배를 한 번도 피우지 않았는데 왜 폐암에 걸릴까"라는 오래된 물음에 구체적인 유전적 실마리 하나를 더한 사례로 꼽힌다. 변이를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점, 즉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는 것과 '반드시 걸린다'는 것은 다른 말이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둘 대목이다.

자료: 다나파버 암연구소(Dana-Farber Cancer Institute), 23andMe 리서치 연구소(23andMe Research Institute), 국제학술지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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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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