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외양을 쓴 거짓은 어떻게 권력이 되는가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10.07 19:14 · 수정 2026.10.07 19:33
『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이 짚은 유사과학의 생성과 확산…백신·생물다양성 사례로 살펴본 검증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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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Cancer Institute·Diane A. Reid

과학처럼 보이는 주장이 실제 과학인지 가려내려면 그럴듯한 문장보다 근거가 만들어지고 검증된 과정을 살펴야 한다. 지바 사토시가 쓰고 김종현이 옮긴 『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은 과학의 외양을 갖춘 설명이 어떻게 탄생하고 퍼지며 악용되는지를 추적한 책이다.

308쪽 분량의 이 책은 “백신은 자폐증을 유발한다”, “인간도 품종 개량이 가능하다”, “폭력과 범죄를 유발하는 유전자가 존재한다”, “왼손잡이는 생존에 불리하다”, “우리는 지금 여섯 번째 대멸종의 한가운데에 있다”, “생물 다양성은 선이다” 같은 문장을 독자 앞에 놓는다. 익숙하거나 단정적으로 들리는 주장도 모두 같은 수준의 과학적 근거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문제의식이다.

일본 원서의 제목은 『「과학적으로 옳다」의 함정』이라는 뜻의 『「科学的に正しい」の罠』이다. 원출판사 설명에 따르면 책은 신뢰하기 어렵거나 해로운 설명이 권력·미디어·편견·이데올로기·민족주의와 결합하는 과정을 역사와 현대의 사례를 통해 다룬다. 여기서 핵심은 주장에 과학 용어가 들어갔는지가 아니라, 반복된 검증을 견뎠는지와 반대 증거까지 공정하게 다뤘는지를 묻는 데 있다.

백신·자폐설, 많은 연구를 모아 다시 검토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백신과 자폐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설명이다. 이 주장은 1998년 MMR 백신과 자폐의 관련성을 제기한 논문을 계기로 확산됐지만 해당 논문은 철회됐다. 이후 WHO 백신안전자문위원회는 2002년과 2004년, 2012년에 관련 근거를 검토했고 2025년에도 인과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재확인했다.

WHO의 2025년 체계적 검토는 2010년부터 2025년 8월까지 나온 연구 중 31편의 1차 연구와 5편의 메타분석을 평가했다. 체계적 검토는 정해진 기준으로 여러 연구를 모아 함께 따져보는 방식이며, 메타분석은 여러 연구의 결과를 통계적으로 종합하는 방법이다. 11개국의 연구를 포함해 방법론적으로 엄격한 연구 20편과 메타분석 5편은 모두 백신과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연관성을 지지하지 않았다. 연관 가능성을 제시한 11편은 근거 수준이 매우 낮고 편향 위험이 높았으며, 이 가운데 9편은 미국의 동일 연구진이 작성했다.

‘대멸종’이라는 표현도 맥락과 수치를 함께 봐야

‘여섯 번째 대멸종’은 이미 확정된 하나의 사건명으로 단정하기보다 현재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멸종 속도를 설명하는 학술적 표현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IPBES의 2019년 세계평가는 약 100만 종이 멸종 위험에 처했고, 현재 전 지구적 종 멸종률이 지난 1천만 년 평균보다 수십 배에서 수백 배 높다고 평가했다. 16세기 이후에는 척추동물 최소 680종이 사라졌다. 식량과 농업에 이용되는 가축 품종도 9% 이상이 2016년까지 멸종했고 약 1천 품종이 추가로 위협받고 있다.

생물다양성 보전 역시 단순히 “다양성은 언제나 선”이라는 선언에 머물지 않는다. 생태계가 작동하며 인간에게 제공하는 기능과 서비스, 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 유전자원에서 생긴 이익의 공정한 공유까지 포함하는 정책 개념이다.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들은 2022년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를 채택해 2050년까지의 4개 목표와 2030년까지의 23개 실천목표를 정했다. 여기에는 훼손된 생태계의 30%를 복원하고 육상·내수·해양·연안의 최소 30%를 보전한다는 목표가 포함됐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어떤 문장을 곧바로 믿거나 배척하라는 것이 아니다. 누가 말했는지, 어떤 자료를 썼는지, 다른 연구자들이 같은 결과를 확인했는지, 오류가 드러났을 때 수정됐는지를 차례로 살피라는 데 가깝다. SNS와 영상 매체에서 짧고 강한 주장이 빠르게 확산되는 환경일수록 과학적 판단은 결론 한 줄이 아니라 근거의 질과 검증 과정을 읽는 능력에서 출발한다.

자료: 대학지성 In&Out, SB크리에이티브, 세계보건기구(WHO), WHO 백신안전자문위원회(GACVS),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서비스에 관한 정부간 과학정책 플랫폼(IPBES), 생물다양성협약 사무국(CBD Secretari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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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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