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감지세포를 다시 만든다…광유전학, 실명 환자 시각 기능 회복 가능성 확인

빛을 받아들이는 세포가 대부분 사라진 실명 환자에게 남아 있는 망막 신경세포를 활용해 물체와 공간을 다시 감지하도록 하는 실험적 치료가 가능성을 보였다. 다만 정상 시력이나 독서 능력을 되찾은 것은 아니며, 안전성을 중심으로 살핀 10명 규모의 초기 임상시험 결과다.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의과대학과 스위스 바젤 분자 임상안과연구소 공동연구팀은 진행성 망막색소변성증 환자 10명을 대상으로 광유전학 치료를 평가한 PIONEER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논문은 2026년 10월 7일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에 공개됐다. 임상시험 등록번호는 NCT03326336이며 GenSight Biologics가 연구비를 지원했다.
망막색소변성증은 빛을 받아 전기신호로 바꾸는 광수용체 세포가 점차 손상되는 유전성 퇴행성 안질환이다. 처음에는 어두운 곳에서 잘 보이지 않는 야맹증과 주변 시야 감소가 나타나고, 진행되면 중심 시력까지 잃을 수 있다. 100개가 넘는 서로 다른 유전자의 변이가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전 세계 환자는 15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특정 변이 하나를 바로잡는 치료만으로 다양한 환자를 포괄하기 어려운 이유다.
연구진은 광수용체가 소실된 뒤에도 일부 망막신경절세포가 남는다는 점을 이용했다. 광유전학은 특정 세포에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만들게 한 다음, 빛으로 그 세포의 활동을 조절하는 기술이다. 연구팀은 크림슨R이라는 빛 반응 단백질의 유전정보를 아데노연관바이러스 벡터에 담아 참가자마다 시력이 더 나쁜 한쪽 눈의 유리체강에 한 차례 주사했다. 원인 유전자를 직접 고치는 대신 남은 신경세포에 새로운 빛 감지 기능을 부여하는 방식이어서 원인 변이에 덜 의존한다.
환자들은 카메라가 달린 특수 고글도 사용했다. 고글은 주변 영상을 크림슨R이 반응할 수 있는 빛 패턴으로 바꿔 망막에 전달한다. 연구진은 반대쪽 눈을 가린 상태에서 고글을 착용하게 하고, 빛을 감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 밝기를 재는 FST 검사를 시행했다.
10명 중 7명은 빛에 대한 민감도가 개선됐고 개선 폭은 약 2배에서 62.3배였다. 6명은 연구진이 임상적으로 의미 있다고 판단한 수준에 도달했다. 기준은 FST 역치가 0.6 log unit 이상 낮아지는 것, 쉽게 말해 빛 감도가 약 4배 이상 높아지는 것이었다. 다만 이 기준은 시험계획서에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연구진이 문헌을 근거로 사후 설정했다.
일부 참가자는 고글을 쓴 채 물체가 있는지 확인하고 위치를 찾거나 물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출입구를 찾고 바닥의 선을 따라가는 공간 인식 과제에서도 개선 가능성이 관찰됐다. 피츠버그대학교 의과대학에 따르면 4명은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친 검사에서 여러 실생활 시각 과제의 일관된 개선을 보였다. 뇌파검사에서는 물체를 볼 때 시각피질이 신호를 처리한다는 증거도 관찰됐다.
안전성 평가에서는 10명 중 9명에게 안과 관련 이상반응 34건이 보고됐다. 경증 23건, 중등도 10건, 중증 1건이었다. 중증 사례는 주사 직후 발생한 일시적 망막중심동맥 폐쇄로, 약물 처치 뒤 수분 이내 해소됐다. 일시적인 안구 염증과 단기간의 안압 상승도 포함됐다.
이번 시험의 주평가변수는 치료 효능이 아니라 안전성이었다. 대조군이 없고 참가자 수도 적어 효과를 확정할 수 없으며, 개선된 기능도 빛 감지와 제한적인 물체·공간 인식에 머물렀다. 특수 고글이 필요하고 장기적인 안전성과 효과 지속 여부도 더 확인해야 한다. 그럼에도 여러 유전자 변이로 발생하는 질환에서 원인 유전자와 무관하게 남은 신경세포를 활용할 가능성을 사람에게서 살폈다는 데 연구의 의미가 있다.
자료: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University of Pittsburgh School of Medicine, Institute of Molecular and Clinical Ophthalmology Basel, ClinicalTrials.gov·미국 국립의학도서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