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원자로 아닌 ‘초대형 틀’을 출력했다…원전 건설에 들어온 3D프린팅

임형광 기자 · 입력 2026.10.15 06:36
ORNL, 탄소섬유 복합재 거푸집으로 복잡한 방사선 차폐 구조 실증…설계부터 첫 출력·예비 타설까지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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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k Ridge National Laboratory

케이크를 만들 때 모양을 결정하는 것은 반죽이 아니라 반죽을 담는 틀이다. 원전의 두꺼운 콘크리트 구조물도 비슷하다.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ORNL)가 3D프린터로 만든 것은 원자로도, 콘크리트도 아니었다. 방사선을 막는 콘크리트를 부어 굳힐 초대형 ‘틀’, 즉 거푸집이었다. 재료는 탄소섬유로 보강한 ABS 열가소성 복합재(CF-ABS)였다.

이 실증에서 주목할 숫자는 ‘6개월에서 2주’가 아니다. 강철 거푸집 조달에 6개월이 걸렸다는 비교는 이번 사업의 1차 자료로 확인되지 않았다. 확인되는 성과는 디지털 설계부터 첫 거푸집 출력과 예비 콘크리트 타설까지 2주 안에 진행했다는 것이다. 설계를 고쳐 다시 시험하는 반복개발의 속도를 보여주는 수치다. 실제 규모의 차폐 기둥으로 발전시키는 데에는 별도로 수개월이 걸렸다.

작은 방 바닥만 한 틀 세 개를 쌓다

ORNL은 제조실증시설(MDF), 원자로 개발사 카이로스파워, 시공사 바너드건설, 메인대학교 등과 함께 ‘Janus’ 차폐 실증을 수행하고 2025년 7월 23일 결과를 발표했다. Janus는 카이로스파워가 건설하는 Hermes 저출력 시험로의 본 구조물에 앞서 복잡한 콘크리트 기둥 형상과 시공법을 점검한 선행 실증품이다.

생물학적 차폐체는 원자로 주변에서 방사선을 흡수해 작업자를 보호하는 두꺼운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이번 거푸집 한 구획의 크기는 약 3.05m×3.05m로, 작은 방 바닥만 한 정사각형 규모다. 연구진은 이런 구획 세 개를 수직으로 쌓아 차폐 기둥 형상을 시험했다. 다만 공개자료만으로는 각 치수가 어느 방향을 뜻하는지와 완성 기둥의 정확한 높이를 확정할 수 없다.

거푸집 접합부에는 단순한 직선 이음매 대신 돌기와 맞물림 구조가 들어갔다. 퍼즐 조각이나 계단처럼 접합부를 꺾어 놓아 방사선이 틈을 따라 곧장 빠져나갈 수 있는 직선 통로를 줄이기 위한 설계다. 강판이나 목재로 이런 형상을 만들려면 절단과 가공, 조립이 복잡해진다. 적층제조는 복잡한 모양을 디지털 설계에 담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을 보였다.

설계 파일을 고쳐 다음 거푸집에 반영

공정은 컴퓨터에서 요구 형상을 설계하는 단계부터 시작했다. 설계를 대형 적층제조 장비가 읽을 수 있는 툴패스, 즉 프린터가 재료를 쌓으며 이동할 경로로 바꾼 뒤 CF-ABS 펠릿을 녹여 층층이 압출했다. 출력물은 그대로 현장에 보내지 않았다. 표면을 가공하고 코팅한 뒤 여러 부분을 조립해 설치했으며, 콘크리트를 타설한 결과와 시공 현장의 의견을 다음 설계에 반영했다.

이 과정의 핵심은 한 번에 완벽한 틀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강철 틀을 다시 만들려면 강판을 절단하고 용접하는 작업부터 되풀이해야 하지만, 적층제조에서는 CAD 설계 파일과 출력 경로를 수정해 다음 시제품으로 넘어갈 수 있다. ORNL은 복잡한 현장타설 구조물을 ‘수주가 아닌 수일’에 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동일한 형상의 강철·목재 거푸집을 나란히 만들어 비교한 대조시험 결과가 아니라 수행기관의 설명이다.

후속 발표에서는 같은 계열의 복합재 거푸집으로 차폐 기둥을 4회, 차폐 벽 패널을 3회 타설했으며 측정 가능한 품질 저하가 없었다고 ORNL이 밝혔다. 반복사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지만 수행기관 자체 시험이라는 한계가 있다. 비원전 선행 사례에서 나온 190회 또는 200회 이상의 사용 실적을 Janus의 성과로 옮겨 말해서도 안 된다.

프린터보다 어려운 순간은 콘크리트를 부을 때

거대한 모양을 출력할 수 있다고 해서 곧바로 안전한 거푸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젖은 콘크리트는 굳기 전까지 거푸집의 옆면을 밀어낸다. 기둥이 높아질수록 이 측압이 커지기 때문에 출력벽이 충분히 버티지 못하면 균열이나 갑작스러운 파손이 일어날 수 있다. 적층 출력물은 층과 층 사이가 방향에 따라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이방성도 가질 수 있다. 출력 방향과 온도, 보강 구조가 성능에 영향을 주는 이유다.

후처리도 빠뜨릴 수 없다. 층을 쌓아 만든 자국이 콘크리트 표면에 그대로 옮겨질 수 있어 절삭·연마·코팅이 필요하다. 철근과 매입물, 콘크리트 투입구, 골재 크기, 진동 다짐과 탈형 방향도 구현 가능한 모양을 제한한다. 신선한 콘크리트의 알칼리 환경과 반복 접촉했을 때 Janus 거푸집이 장기간 어떤 성능을 보이는지에 관한 상세 자료도 공개되지 않았다.

현재 공개자료에는 설계하중, 최대 콘크리트 측압, 타설 속도, 출력시간과 재료 사용량, 치수 공차, 누수·파손 기준, 상세 원가가 제시돼 있지 않다. 동일 형상의 기존 거푸집과 비교한 공급업체 견적, 전체 노동시간, 양생과 검사까지 포함한 총공기 자료도 확인되지 않았다. 복합재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친환경적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ABS와 탄소섬유 생산부터 출력 전력, 운송, 재사용 횟수와 폐기까지 포함한 Janus 고유의 생애주기평가가 없기 때문이다.

상용 원전 혁신이 되려면 남은 질문

Hermes는 전기를 생산하지 않는 열출력 35MW급 저출력 시험로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2023년 12월 14일 건설허가를 발급했지만, 이를 CF-ABS 거푸집 기술에 대한 별도·포괄 인증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해당 차폐체도 기밀이나 압력을 유지하는 격납 구조물 또는 원자로의 강철 압력경계가 아니다. 방사선을 흡수하는 콘크리트 차폐 구조이며 저압 계통이라는 적용 조건이 있었다.

3D프린팅 거푸집이 모든 공정에서 유리한 것도 아니다. 표준 직선 벽이나 같은 기둥을 반복해 만드는 현장에서는 기존 모듈 거푸집을 여러 번 쓰는 편이 비용과 시간, 자원 면에서 나을 수 있다. 이 기술의 우선적인 쓰임새는 복잡한 맞춤 형상을 적은 수량으로 만들거나 설계가 자주 바뀌는 공정에 있다.

국내에서도 원전 적층제조 연구는 진행됐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24년 원전 발전기차단기 냉각용 임펠러를 스테인리스강 316L로 제작했고, 한국원자력연구원·한국과학기술원·하나에이엠티는 2023년 소형모듈원자로 압력용기용 금속 분말과 공정을 개발했다. 그러나 두 사례 모두 금속 부품과 압력용기 소재에 관한 것으로, ORNL과 같은 원전 차폐 콘크리트용 대형 복합재 거푸집의 국내 공식 실증·인허가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성과의 의미는 ‘플라스틱으로 원전을 출력했다’는 데 있지 않다. 복잡한 차폐 구조의 틀을 디지털 파일처럼 수정하고, 출력과 타설 결과를 다시 설계에 반영하는 제조 방식을 실제 규모로 시험했다는 데 있다. 이 빠른 반복개발이 상용 원전의 전체 공기와 원가까지 줄이는지는 독립 비용검증과 재현시험, 장기 성능 자료가 나온 뒤 판단해야 한다.

자료: 오크리지국립연구소, 카이로스파워,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 메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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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광 기자 hg.lim@k-rnd.net
반도체·일반공학 — 공정·소자·파운드리·메모리 및 기계·전기·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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