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나노 주름을 ‘맞물리는 잠금장치’로 만든 그래핀 필름

지퍼를 양쪽으로 잡아당기면 이빨은 더 쉽게 빠지는 대신 서로 맞물려 힘을 버틴다. 그래핀 조각을 겹쳐 만든 필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만 이번 재료는 결함 없는 단층 그래핀 한 장이 아니다. 표면에 접힌 띠가 생긴 다층 산화그래핀 조각을 쌓고 화학적으로 환원한 필름이다. 연구진은 나노미터 규모의 접힘이 이웃 층의 접힘과 맞닿도록 설계해, 필름을 당길수록 내부에서는 접힘끼리 서로 누르는 구조를 만들었다.
저장대학교와 칭화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연구진은 이 필름이 인장강도 2.9GPa, 체적 인성 84.5MJ/㎥, 탄성변형률 5%의 성능 조합을 나타냈다고 논문에서 보고했다. 인장강도 2.9GPa는 2,900MPa와 같고, 단면적 1㎟에 걸리는 응력으로 환산하면 2,900N이다. 그러나 실제 필름이 특정 무게를 안전하게 들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형상과 결함, 두께, 연결 방식과 안전율이 모두 성능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래핀 한 장의 강도보다 어려운 ‘조각 사이’ 문제
원자 한 층 두께의 그래핀은 강한 재료로 알려졌지만, 작은 그래핀 조각을 여러 겹 쌓아 거시적인 필름으로 만들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평평한 조각들은 인장하중을 받을 때 층간 전단, 즉 서로 어긋나려는 힘을 통해 하중을 전달한다. 층 사이 결합이 충분하지 않으면 조각이 미끄러져 단층 그래핀의 고유한 성질을 필름 전체로 이어가기 어렵다.
그래서 기존의 한 전략은 무질서한 주름을 펴고 조각을 가지런히 정렬해 적층 질서를 높이는 것이었다. 같은 연구 계열은 2020년 이런 평탄화 전략으로 인장강도 1.1GPa의 그래핀 종이를 보고했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주름을 남겼다는 데 의미가 있지 않다. 응력집중을 만드는 무작위 주름과 달리, 이웃한 층끼리 맞물리도록 제어된 접힘을 하중 전달 장치로 활용했다는 점이 다르다. 시험 조건이 다른 만큼 2020년 수치와 이번 2.9GPa를 단순한 기록 경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연구진은 이 내부 구조를 FCL(fold-clasping lamellar structure), 즉 ‘접힘 맞물림 층상구조’라고 이름 붙였다. 매끈한 판을 포개 놓으면 옆으로 밀려나기 쉽지만, 판마다 부드럽게 변형되는 턱이 있고 그 턱이 이웃 판의 턱과 맞닿으면 움직임이 제한되는 원리다. ‘주름이 많을수록 강하다’는 결론이 아니라, 접힘의 크기와 배열이 적절해야 잠금장치로 기능한다는 설명이다.
당겼는데 내부에서는 미는 힘이 생겼다
필름 전체에는 당기는 힘이 걸리지만, 맞닿은 접힘 사이에서는 국소적으로 누르는 힘이 생긴다. 연구진은 이를 pull-to-push force-chain transition, 즉 ‘당김에서 밀기로 바뀌는 힘 사슬 전환’이라고 설명했다. 인장력의 일부가 접힘 사이의 압축력으로 전환되고, 이 접촉이 shear-lock, 즉 층간 미끄러짐을 늦추는 ‘전단 잠금’으로 작용한다는 해석이다.
접힘은 단단히 붙여 움직임을 완전히 막는 접착층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 변형될 여지도 남긴다. 연구진은 이 특성 때문에 강도뿐 아니라 파단까지 흡수하는 에너지와 회복 가능한 변형도 함께 높일 수 있었다고 해석했다. 논문이 제시한 체적 인성 84.5MJ/㎥는 재료 1㎥가 인장 과정에서 끊어질 때까지 흡수하는 에너지 밀도를 뜻한다. 1㎤로 환산하면 약 84.5J로, 약 8.6㎏ 물체를 1m 들어 올리는 위치에너지와 비슷하다. 다만 이는 단축 인장시험의 응력–변형률 곡선 아래 면적이지, 충격시험의 흡수량이나 균열에 대한 파괴인성은 아니다.
탄성변형률 5%는 힘을 제거했을 때 돌아올 수 있는 변형의 비율이다. 길이 10㎝를 가정하면 약 5㎜, 1m라면 약 5㎝ 늘어나는 비율에 해당한다. 실제 시험편 길이가 10㎝ 또는 1m였다는 의미도, 같은 변형을 무한히 반복해도 완전히 회복된다는 의미도 아니다. 논문 초록은 2.9GPa·84.5MJ/㎥·5%를 한 필름 설계가 달성한 성능의 조합으로 제시했지만, 세 값이 동일한 시험편 한 장에서 모두 측정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저온 산화와 코팅으로 접힘을 만들다
연구진은 저온 산화 조건에서 표면에 접힌 띠가 형성된 다층 산화그래핀 조각인 SFGO를 제조했다. 확장자료가 비교한 반응온도는 −5℃, −10℃, −15℃, −25℃이며 시료를 SFGO-1부터 SFGO-4까지 구분했다. 연구기관 설명에 따르면 외부층은 산화와 팽윤의 영향을 더 크게 받고 내부층은 상대적으로 가지런한 결정 적층을 유지한다. 이후 건조하며 수축할 때 외부층에 접힌 띠가 형성된다. 기관 설명상 조각 평균 두께는 약 9.1nm이고 표면 접힘은 약 2nm 규모다. 다만 2nm가 접힘의 높이인지 두께인지 자료의 표현이 엇갈려 정확한 치수 정의로 단정할 수는 없다.
연구진은 SFGO 분산액을 블레이드 코팅해 필름으로 만든 뒤 화학적으로 환원했다. 블레이드 코팅은 평평한 날로 액체를 밀어 일정한 막을 만드는 방식이다. 환원 전후 X선 광전자분광법(XPS) 분석에서 SFGO-1 필름의 sp² C–C 비율은 57.9%에서 87.8%로 증가했다. 이는 최종 재료가 산화그래핀 종이를 그대로 쓴 것이 아니라 산소 작용기를 상당 부분 제거한 환원 필름임을 보여준다.
구조와 작동 원리를 확인하기 위해 원자힘현미경(AFM), 수차보정 투과전자현미경(TEM), 라만 분광, X선 회절(XRD), 광각 X선 산란(WAXS), XPS와 인장시험을 사용했다. 특히 하중을 가하고 제거하는 동안 제자리 WAXS로 내부 구조 변화를 추적했다. 그러나 ‘당김에서 밀기로’ 전환되는 힘 사슬은 현미경 사진 한 장에서 직접 관찰한 단순 사실이 아니다. 연구진은 인장곡선과 제자리 WAXS, 기존 shear-lag 모델과 새 모델의 비교, 분자·역학 시뮬레이션을 종합해 이 메커니즘을 제안했다.
접힘의 최적 범위와 상용화 사이의 거리
접힘은 크고 많기만 하면 유리하지 않았다. 확장자료에 따르면 SFRG-4에서는 두꺼운 조각이 불균일하게 쌓이며 큰 공극과 틈이 생겼다. 이는 접힘의 크기와 밀도, 조각 두께에 최적 범위가 있음을 보여준다. 접힘을 결함에서 기계요소로 바꾸려면 단순한 생성보다 정밀한 제어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번 결과는 2026년 10월 14일 온라인 공개된 단일 연구팀의 보고다. 공개 이틀째인 10월 16일 기준 다른 연구팀의 독립적인 재현 성공이나 실패는 확인되지 않았다. 접근 가능한 초록과 확장자료만으로는 인장시험 시편 수와 치수, 인장속도, 평균과 표준편차도 확정되지 않았다. 시뮬레이션에 쓰인 폭 50nm의 단일 접힘 모델 역시 실제 필름 속 모든 접힘과 결함을 대표하는 구조로 일반화할 수 없다.
충격과 반복 피로, 습도·물·산소·온도·자외선·화학물질에 대한 환경 내구성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코팅 사진의 10㎝ 표시는 눈금막대일 뿐 정확히 폭 10㎝인 제품이나 롤투롤 대량생산을 입증하지 않는다. 수율과 원가, 배치 간 편차, 대면적 균일성도 남은 과제다. 얇은 필름의 인장 성능이 볼트 구멍이나 절단면, 접착 계면과 흠집을 가진 실제 부품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경량 구조부품은 현재로서는 잠재적 응용이다. 이번 연구의 의미는 완성된 부품을 내놓았다는 데 있지 않다. 약한 층간 결합 때문에 흩어지던 힘의 경로를, 제어된 나노 접힘이 서로 맞물리는 경로로 바꿀 수 있다는 설계 원리를 제시한 데 있다. 그래핀 필름의 주름을 없애야 할 결함으로만 보지 않고, 알맞은 크기와 배열을 갖추면 당길수록 서로 누르는 잠금장치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자료: 저장대학교·칭화대학교·네이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