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붙어버린 자석 로봇, 힘의 방향 돌려 다시 떼어냈다

임형광 기자 · 입력 2026.10.20 07:05
고려대 연구진, 무자기장 영역과 구동 문턱 결합해 3차원 뇌혈관 모형서 순차적 선택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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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관 속 자석 로봇은 서로 가까워지는 순간 동료가 아니라 자석이 된다. 같은 자기장 명령을 받으며 움직이다가 거리가 좁아지면 서로 달라붙고, 그 순간 각 로봇을 따로 조종하려던 계획도 흔들린다. 고려대 세종캠퍼스 연구진은 이처럼 붙어버린 로봇을 억지로 잡아당기는 대신, 로봇 안에서 자석의 방향을 나타내는 자기모멘트를 돌렸다. 서로 끌어당기던 힘은 밀어내는 힘으로 바뀌었고, 연구진은 벌어진 로봇을 다시 하나씩 선택해 움직였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로봇끼리 절대 붙지 않도록 막은 데 있지 않다. 좁고 굽은 통로에서 충돌과 결합이 일어나더라도 분리한 뒤 순차적 선택제어를 회복하는 틀을 마련했다는 데 있다. 연구진은 속도 조절과 로봇 재배치, 위치 선택적 자기 가열을 비롯해 혈전 제거와 표적 전달을 모사했으며, 3차원 뇌혈관 모형에서도 원하는 로봇을 골라 이동시키는 항법을 시연했다.

하나의 자기장으로 여러 로봇을 다루는 딜레마

자성 밀리·마이크로로봇은 외부 자기장에 반응한다. 그러나 여러 로봇이 하나의 전역 자기장, 즉 작업 공간 전체에 걸쳐 작용하는 공통 자기장 안에 있으면 같은 명령에 함께 반응한다. 리모컨 하나로 여러 장치를 동시에 켜는 것과 비슷한 문제다.

로봇 사이의 거리까지 가까워지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자성을 띤 두 물체 사이에는 자기 쌍극자 상호작용이 생긴다. 이는 각 로봇을 작은 막대자석처럼 볼 때 서로 끌거나 미는 힘이 생기는 현상이다. 가까운 로봇이 강하게 달라붙으면 외부 자기장으로 의도한 움직임보다 로봇 사이의 힘이 더 중요한 변수가 되고, 개별 제어가 무너질 수 있다.

기존 연구들도 로봇의 크기와 형상, 자기적 특성, 구동 주파수의 차이를 이용해 특정 로봇을 고르거나 로봇 사이 자기력을 근접 제어에 활용했다. 따라서 다중 자성 로봇 제어나 로봇 사이 자기력 자체가 이번에 처음 발견된 것은 아니다. 이번 연구의 차별점은 공간 선택, 서로 다른 구동 문턱, 속도와 점착–미끄럼 이동, 강하게 붙은 로봇의 분리, 응용 시연을 하나의 제어 틀로 묶은 데 있다.

자기장이 약한 ‘조용한 자리’를 옮겨 로봇을 골랐다

연구진이 특정 로봇을 선택하는 데 활용한 장치는 무자기장 영역(field-free region·FFR)이다. 이름만 보면 자기장이 전혀 없는 넓은 안전지대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자기장 세기가 0이거나 매우 작은 지점 또는 영역을 뜻한다. 그 주변에는 로봇을 선택하고 움직이기 위한 자기장과 회전자기장이 존재한다.

이를 방 전체에 음악이 흐르지만 한 자리에서만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 ‘조용한 자리’를 원하는 로봇의 위치로 옮겨 그 로봇이 놓인 자기 조건을 달리했다. 여기에 로봇이 실제로 회전하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최소 회전자기장인 BRMF,min을 선택 기준으로 결합했다.

최소 구동 문턱은 모든 로봇에 똑같지 않다. 재료와 잔류자화뿐 아니라 마찰과 유체 점도 등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는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 연구진은 이 차이를 같은 판정 틀 안에서 이용해 “이번에는 1번, 다음에는 2번”처럼 로봇을 순차적으로 선택했다. 여러 로봇을 서로 다른 궤적으로 완전히 동시에 움직인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필요한 로봇을 골라 차례로 제어한 방식이다.

FFR의 위치를 옮기거나 시간에 따라 진동시키면 일정한 회전자기장 아래에서도 로봇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마찰을 이용한 점착–미끄럼 이동도 유도했다. 무거운 가구를 한 방향으로 곧장 밀기보다 좌우로 조금씩 흔들어 마찰을 끊으며 전진시키는 장면과 비슷하다. 자기 반응이 다른 로봇과 점도가 다른 유체에서도 이 제어 원리를 시험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붙은 로봇은 자기모멘트를 돌려 밀어냈다

선택만큼 중요한 문제는 이미 붙은 로봇을 어떻게 떼어내느냐였다. 잔류자성이 낮아 로봇 사이 상호작용이 약한 경우에는 FFR을 이용한 선택 이동만으로도 분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하게 결합한 영구자석 로봇에는 별도의 분리 자기장 BD가 필요했다.

분리 자기장은 로봇의 자기모멘트 방향을 재정렬했다. 자기모멘트는 자석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얼마나 강하게 자기적 작용을 하는지를 나타내는 물리량이다. 막대자석 두 개가 붙었을 때 손으로 잡아당기는 대신 자석이 향하는 방향을 돌려 같은 극이 마주 보게 하면 서로 밀어내는 것과 닮았다. 로봇 사이 상호작용이 인력에서 척력으로 바뀐 뒤에는 FFR 기반 이동과 진동으로 간격을 더 벌려 선택제어를 회복했다. 이는 자기모멘트의 극성을 영구적으로 뒤집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 틀을 바탕으로 연구진은 로봇 재배치, 필요한 위치에서의 자기 가열, 혈전 제거와 표적 전달을 본뜬 실험을 수행했다. 굴곡과 분기가 있는 3차원 뇌혈관 모형에서는 로봇을 선택적으로 이동시키는 항법을 보였다. 논문은 2026년 10월 14일 국제학술지 《Research》 제9권에 논문번호 1458로 온라인 공개됐다.

환자의 뇌가 아닌 투명한 모형에서 거둔 성과

“3차원 뇌혈관에서 움직였다”는 표현은 환자나 동물의 뇌혈관에서 치료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번 결과는 투명한 체외 모형에서 수행한 개념증명이다. 혈전 제거와 표적 전달 역시 치료 효과를 확인한 임상 성과가 아니라 해당 작업을 본뜬 기능 시연이다.

실제 혈관에는 모형이 모두 재현하지 못한 조건이 있다. 혈액은 단순한 균질 유체가 아니며 혈구와 단백질을 포함하고, 맥동성 혈류와 혈압이 존재한다. 혈관벽의 탄성과 내피, 면역반응과 응고 과정도 고려해야 한다. 생체적합성과 장기 독성, 혈관벽 손상, 원치 않는 혈전 형성, 로봇의 체내 분해·배출·회수 가능성은 이번 연구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위치 선택적 자기 가열 또한 주변 조직의 비의도성 가열과 열손상에 대한 생체 안전성을 입증한 결과가 아니다.

관찰 방법도 과제로 남는다. 투명한 모형에서는 카메라로 로봇을 볼 수 있지만, 실제 두개골 안에서 원하는 로봇을 선택하려면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결과를 다시 제어기에 전달하는 영상·피드백 체계가 필요하다. 자기장이 조직을 통과할 수 있다는 사실과 사람 몸속의 작은 목표점에 높은 정밀도로 자기장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장치를 사람 크기로 확대할 때에는 코일과 전력, 발열과 냉각, 자기장 구배와 안전성도 검증해야 한다.

선택의 기준인 최소 구동 문턱도 제작 편차와 자세, 표면 오염, 벽면 마찰, 유체 점도와 유속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여러 로봇의 문턱이 겹치면 선택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으며, 움직이는 혈류나 여러 로봇이 복잡하게 뭉친 상태에서도 같은 분리법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최대 제어 대수와 반복시험 횟수, 분리 성공률과 오작동 비율도 확인되지 않았다.

논문 공개 후 6일이 지난 2026년 10월 20일 기준으로 독립 재현 연구나 이 논문을 직접 겨냥한 학술적 반론은 확인되지 않았다. 반론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평가와 재현 결과가 나오기에 아직 시간이 짧았다는 의미다. 지금 확인된 성과는 좁은 통로에서 자성 로봇이 달라붙는 일을 단순한 실패로 보지 않고, 힘의 방향을 바꿔 분리한 뒤 제어를 이어갈 수 있음을 보인 것이다. 실제 뇌혈관 치료로 나아갈 수 있는지는 생체 환경과 영상 추적, 장치 확대, 안전성 검증이라는 다음 질문에 달렸다.

자료: 고려대학교, Research, 미국 국립의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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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광 기자 hg.lim@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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