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개방성과 안보의 경계, 한국형 위험관리 기준 논의

유일혁 기자 · 입력 2026.10.21 05:37
STEPI, 연구자율성 지키면서 기술·인프라 위험 줄이는 정책 방향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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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k Ridge National Laboratory

국경을 넘는 협력으로 성장해 온 과학이 기술패권 경쟁이라는 새로운 경계와 마주했다. 연구 성과와 시설을 보호하면서도 연구자의 자율성과 국제협력을 위축시키지 않을 기준을 어떻게 세울지가 과학기술정책의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지난 15일 국립세종수목원에서 열린 ‘2026 한국정책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국경없는 과학, 경계짓는 안보’ 세션을 열었다. 학술대회는 ‘AI 대전환 시대의 정책거버넌스 혁신’을 대주제로, ‘AI 시대와 좋은 사회: 정책윤리와 사회적 신뢰 회복’을 소주제로 진행됐다.

이번 세션은 기술패권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연구활동의 경계를 어디에 그어야 하는지, 그 판단의 정당성을 어떻게 확보할지를 다뤘다. 정부 관계자와 학계 전문가, 대학원생 등이 참석했으며 김종립 STEPI 성과확산팀장이 진행을 맡았다.

첫 번째 발표를 맡은 선인경 STEPI 연구안보정책센터장은 과학기술이 국가의 전략자산으로 다뤄지고, AI와 양자처럼 민간과 군사 분야에 모두 활용될 수 있는 ‘민군겸용 기술’이 부상하면서 안보 문제가 대학과 기초연구 현장까지 넓어졌다고 설명했다.

연구안보의 위험은 기술 유출만을 뜻하지 않는다. 해외 인재유치사업 연루와 이중계약, 겸직이나 이해충돌을 알리지 않는 행위,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 연구실, 해외의 연구간섭 등이 사례로 제시됐다. 연구윤리와 연구보안, 국제협력, 민감연구, 기술사업화, 수출통제가 서로 맞물려 있어 한 가지 규정만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다.

선 센터장은 연구자율성과 오픈사이언스, 공공 연구개발의 안보화를 함께 고려하는 위험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픈사이언스는 연구자료와 성과를 널리 공유해 과학 발전을 촉진하는 방식이다. 다만 연구자가 어떤 행위가 문제가 되는지 충분히 알지 못해 규정을 어기는 ‘비의도적 위반’을 막으려면 제도적 사각지대와 현장의 정보 부족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 ‘서비스형 연구안보’가 제시됐다. 연구자를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데 머물지 않고, 연구현장이 위험을 미리 파악하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정보와 지원을 제공하는 체계를 설계하자는 취지다. 국제규범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한국 연구생태계의 특성이 반영되도록 지속적이고 전략적인 외교가 필요하다고 봤다.

두 번째 발표에서는 AI 연구인프라의 안보 위험이 다뤄졌다. 조원선 STEPI 혁신성장본부 부연구위원은 AI 인프라를 컴퓨팅, 에너지, 디지털 연결,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네 계층으로 나눴다. 연구인프라는 연구자가 함께 쓰는 공공 자산이지만, 국가 간 경쟁에서는 상대국이 통제 대상으로 지목할 수 있는 자산이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조 부연구위원은 미·중 경쟁이 시설과 장비의 규모를 뜻하는 ‘용량’ 확대와, 시설·데이터·기관을 잇는 ‘연결성’ 확보라는 두 축으로 전개된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는 컴퓨팅 계층의 위험을 예산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디지털 연결 계층의 위험은 아직 식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응책으로는 물리적 희소성, 지리적 독점, 운영주체의 통제, 제도적 권한에서 생기는 위험을 식별·평가·대응·학습의 순서로 관리하는 체계가 제안됐다. 모든 것을 국내에서 해결하는 배타적 자급보다 세계 연구생태계와 연결된 상태에서 자율성과 복원력을 확보하는 ‘관리된 상호의존’이 원칙으로 제시됐다.

제도 개선 과제로는 범부처 ‘국가연구개발사업 보안지침’에 연구인프라 관련 장을 만들고, 연구시설·장비 기준을 공급망과 접근, 연결 요건 중심으로 바꾸는 방안이 언급됐다. 연구기관 데이터센터를 잇고 국가연구망인 KREONET의 증속을 연구인프라 결합과 연계하는 구상도 제시됐다.

이어진 토론에는 정유한 단국대학교 교수와 김명아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이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개방성과 안보 사이의 경계를 정하는 기준, 연구안보 정책이 정당성을 얻는 방법, 국내 연구현장에 맞는 제도 설계 방향을 논의했다.

자료: 과학기술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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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혁 기자 ih.yoo@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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