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의 에너지 성적표, 순위보다 처방에 쓰여야 한다

임형광 기자 · 입력 2026.10.24 05:34
730만 동 데이터 연결이 탄소 감축으로 이어지기 위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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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화면 (사진 출처=Brücke-Osteuropa)

건물의 에너지 문제는 그동안 ‘많이 썼다’는 청구서 수준에서 다뤄진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사용량만으로 건물의 낭비를 판정할 수는 없다. 병원의 24시간 가동과 학교의 주간 운영을 같은 잣대로 재는 순간 데이터는 진단이 아니라 오해가 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전국 730만 동의 에너지 사용량과 여러 기관의 행정데이터를 건물 단위로 연결한 데이터넷에서 필자가 가장 주목한 대목은 규모보다 ‘비슷한 조건끼리 비교한다’는 발상이다.

건물에도 공정한 비교군이 필요하다

건물 에너지 성능은 단열재나 냉난방 설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지역 기후, 건물 용도, 운영 시간, 이용 인원처럼 실제 사용 조건이 소비량을 크게 좌우한다. 이런 영향요인을 함께 보아야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건물 가운데 유난히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곳을 가려낼 수 있다. 의료검진에서 나이와 생활환경을 고려하듯, 데이터넷은 건물에 ‘비교 가능한 이웃’을 붙여주는 기반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외 건물 탄소 감축 정책도 신축 건물의 기준 강화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이미 서 있는 수많은 건물의 성능을 높이려면 전수 정밀진단보다 먼저 개선 효과가 클 곳을 선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행정데이터와 사용량을 연결하는 접근은 제한된 예산을 노후 설비 교체, 단열 보강, 운영 최적화 같은 실제 조치에 집중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데이터망 다음에는 실행망이 필요하다

다만 연결 자체를 성과의 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행정정보의 누락과 갱신 시차, 건물 용도 변경, 계량 단위의 차이가 남아 있으면 비교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 ‘다소비 건물’이라는 꼬리표가 이용자의 불가피한 운영 조건을 가리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어떤 항목으로 비교했고 왜 개선 대상으로 선정됐는지를 건물주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진단 이후다. 결과가 보고서에 머물지 않도록 예상 절감 효과와 공사비, 지원제도, 사후 성능 확인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데이터넷을 규제 명단을 만드는 수단보다 개선 우선순위를 정하고 기술·금융 지원을 배분하는 공공 인프라로 활용해야 한다. 필자는 730만 동의 연결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의 완성이 아니라, 건물마다 다른 처방을 시작하는 출발점이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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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광 기자 hg.lim@k-rnd.net
반도체·일반공학 — 공정·소자·파운드리·메모리 및 기계·전기·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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