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순자화 0인 반강자성체에 전류로 정보 썼다…상온 자기저항 최대 363%

자석처럼 보이지 않는 물질에도 0과 1을 쓸 수 있을까. 원자 크기의 자석인 스핀 세 개를 120°씩 벌려 놓으면 각각의 방향은 남아 있지만 전체 합은 0이 된다. 그런데 세 화살표가 만든 바람개비 같은 무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이처럼 순자화가 없는 반강자성체의 집단 무늬를 전류로 뒤집고, 같은 통로에서 저항 차이로 읽어냈다.
노스웨스턴대학교를 비롯한 공동 연구진은 두 PtMn₃ 반강자성 전극 사이에 약 2㎚ 두께의 MgO 절연막을 넣은 전반강자성 터널접합을 제작했다. 외부 자기장 없이 접합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큰 전류 펄스로 상태를 바꾸고, 뒤이어 같은 2단자 경로에 작은 전류를 흘려 상태를 판독했다. 상온 터널자기저항은 조사한 50개 소자 가운데 최대 363%였다. 낮은 저항을 1로 놓으면 높은 저항이 약 4.63배라는 뜻이다. 다만 363%는 평균이나 대표값이 아니라 분포의 가장 높은 값이다.
자화는 사라져도 ‘팔극자 무늬’는 남는다
PtMn₃는 자료에 따라 Mn₃Pt로도 표기되는 1대 3 조성의 반강자성체다. 이 물질에서는 Mn 스핀들이 (111)면에서 약 120°를 이루는 비공선형 배열을 만든다. 비공선형은 스핀이 한 직선의 앞뒤만 가리키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벌어져 있다는 의미다. 세 스핀의 벡터 합인 순자화는 상쇄되므로 보통 자석처럼 전체가 한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핀들이 만든 집단적 배열에는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클러스터 자기 팔극자’ 질서가 남는다. 개별 화살표를 모두 합하면 0이더라도, 화살표들이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의 서로 다른 바람개비 무늬를 만들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연구진은 이 두 상태를 정보 상태로 삼았다. 위아래 PtMn₃ 전극의 팔극자 상태가 어떻게 맞물리는지에 따라 전자가 MgO 장벽을 터널링할 확률이 달라지고, 그 결과 접합의 저항도 달라진다. 터널링은 전자가 고전적으로 넘을 수 없는 매우 얇은 절연벽을 양자역학적으로 통과하는 현상이다.
기존에도 반강자성체를 전기로 전환하거나 반강자성 터널접합에서 자기저항을 관찰한 연구는 있었다. 이번 결과의 차이는 전반강자성 접합을 관통하는 전류 자체로 정보를 쓰고, 바로 그 접합에서 저항을 읽었다는 데 있다. 옆에 별도의 중금속 쓰기 배선을 두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수직 통로가 쓰기와 읽기를 맡았다.
부분격자의 전류 불균형이 상쇄를 깨뜨렸다
순자화가 0이라면 전류가 만드는 스핀전달토크도 모두 상쇄될 것이라는 예상이 자연스럽다. 스핀전달토크는 흐르는 전자의 스핀 각운동량이 자성 질서에 전달돼 그 방향을 바꾸는 작용이다. 연구진의 해석은 전체 전류가 순스핀 편극을 갖지 않더라도, PtMn₃ 내부의 세 부분격자가 똑같은 전류를 받지는 않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동일한 Mn 부분격자 사이를 흐르는 전류와 서로 다른 부분격자 사이를 흐르는 전류가 같지 않아 각 부분격자에 걸리는 토크가 완전히 상쇄되지 않고, 남은 토크가 팔극자 질서를 뒤집는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이를 팔극자 구동 스핀전달토크(octupole-driven spin-transfer torque·OTT)라고 명명했다. 전류 방향을 바꾸자 고저항과 저저항 상태 사이를 양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소자에 따라 두 상태가 급격히 바뀌기도 했고, 자구 이동에 따라 저항이 점진적으로 변하며 여러 준위를 보이기도 했다.
이 해석은 밀도범함수이론과 Wannier 기반 전자구조 계산, 세 부분격자를 반영한 Landau–Lifshitz–Gilbert 시뮬레이션으로 뒷받침됐다. 다만 토크가 움직이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직접 영상화한 것은 아니다. 계산에서 50ps 동안 펄스를 가한 뒤 10ps를 완화했지만 이것은 실험 속도가 아니다. 실제 펄스폭 의존 측정 범위의 최단값인 100㎲와 비교하면 50ps는 약 200만 배 짧고, 두 값은 서로 다른 실험과 계산 조건에서 나왔다.
머리카락보다 훨씬 작은 기둥, 한 통로로 쓰고 읽다
소자는 지름 50·75·100·200㎚로 제작됐다. 머리카락 굵기를 70~80㎛로 잡으면 가장 작은 50㎚ 소자는 그 약 1400~1600분의 1이다. 적층 구조는 Pt 5㎚, PtMn₃ 7㎚, MgO 약 2㎚, PtMn₃ 10㎚, Pt 5㎚, Ru 10㎚ 순서다. 저항-면적곱은 약 1~10Ω·㎛²였다.
전환에는 약 10MA/㎠ 규모의 전류밀도가 필요했고 대표 소자에서는 약 11MA/㎠였다. 이 전류밀도가 지름 100㎚의 원형 면적에 균일하게 흐른다고 단순 계산하면 약 0.86mA에 해당하지만, 이를 실제 측정 전류로 단정할 수는 없다. 별도 표기가 없는 기본 쓰기·판독 펄스는 각각 1ms였으며, 펄스폭 의존 분석은 100㎲에서 50ms 범위에서 이뤄졌다.
박막은 열산화한 150㎜ 실리콘 웨이퍼에 상온 스퍼터링으로 증착됐고 고온 후열처리는 거치지 않았다. Pt 함량은 웨이퍼 위치에 따라 23.9~25.8at%였다. 실리콘 공정과 접점을 보여주는 제작 방식이지만 CMOS 회로 집적이나 양산 수율을 입증한 것은 아니다. MgO는 뚜렷하게 결정화되지 않았고 계면 거칠기도 관찰됐다. 연구진은 장벽 두께와 높이, 계면 종결, 결정립의 차이를 낮은 저항-면적곱과 큰 소자 편차의 원인으로 제시했다.
대조실험은 가능성을 좁혔지만 논쟁을 끝내지는 못했다
연구진은 다른 구동 원인을 가려내기 위해 대조실험을 했다. 같은 소자에서 수직 전류는 약 2mA에서 전환을 일으킨 반면, 수평 Pt 전류는 4mA까지 전환을 만들지 못했다. 100K에서도 외부 자기장 없이 전환이 관찰돼 줄가열이 주원인일 가능성을 낮췄다. 다결정 적층막은 SQUID 자력 측정의 최대 7T 범위에서 순자화가 검출되지 않았다. 또 200㎚ 소자 한 개는 +2T, 0, −2T의 면외 자기장에서 전환전류와 터널자기저항에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공개 심사에서는 OTT 귀속을 확정할 결정적 대조가 부족하다는 이견이 남았다. 인접 Pt층의 스핀궤도토크, 줄가열, 절연막의 전류 유도 저항 변화가 충분히 배제됐는지가 쟁점이었다. 연구진은 400K에서 300K로 냉각하면서 면외 ±0.2T를 가한 실험도 추가했지만, 심사자는 이 자기장이 기준 전극의 팔극자 방향을 확실히 뒤집기에 충분한지 문제를 제기했다. 논문 역시 작은 스핀궤도토크 성분까지 배제하지는 않았다.
제품으로 가기 전에 확인할 항목도 많다. 상온 열안정성 장벽 약 39kT는 펄스폭 측정과 모델에서 얻은 추정치로, 10년 보존시험 결과가 아니다. 한 소자에서 수행할 수 있는 측정 횟수가 제한됐고 상용 메모리에 필요한 반복쓰기 수명도 입증되지 않았다. 시험 소자에서는 360~400K, 섭씨 약 87~127도 사이에서 터널자기저항과 전환이 사라졌다. 냉각 후 회복됐지만 저항과 자기저항, 전환전류 일부가 달라졌다. 장기 보존, 비트 오류율, 대규모 수율과 회로 집적도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이번 결과는 순자화가 없으면 스핀전달토크도 상쇄될 것이라는 통념에 소자 수준의 실험적 반례를 제시했다. 동시에 최대 363%라는 큰 저항 차이와 2단자 동작이 새로운 정보소자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다만 이는 완성된 메모리 제품이나 실제 초고속 동작의 증명이 아니라, 반강자성 팔극자 질서를 전류로 구동할 수 있다는 새 원리를 제안하고 시험한 단계다. 독립적인 재현과 구동 기작의 추가 검증, 내구성과 균일성 확보가 다음 질문으로 남았다.
자료: 네이처, 노스웨스턴대학교, 웨스턴디지털, KAIST, 삼성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