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히스로의 손자국 — 죽은 거북이 밀렵꾼을 기억하는 법

임형광 기자 · 입력 2026.08.03 12:20 · 수정 2026.08.24 12:28
종과 산지를 밝히는 과학은 왜 범죄조직의 손끝까지 닿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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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수된 코끼리 상아. 표면에 손으로 쓴 번호가 보인다. (사진 출처=미국 어류야생동물국)

죽은 푸른바다거북의 등껍질 위로 사람 손바닥이 통째로 떠올랐다. 손자국이 저절로 빛난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형광 염료가 든 지문 분말을 먼저 뿌리고 자외선을 비추자, 땀과 기름의 잔여물에 붙은 분말만 밝아지며 어두운 등껍질과 대비됐다. 피해자의 몸이 그대로 범죄 현장이 된 순간이었다.

이 장면은 런던동물학회 동물학연구소의 야생동물범죄연구소에서 촬영됐다. 영국 국경군과 런던경찰청 감식반이 협업했고, 같은 시리즈에는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압수한 코끼리 상아에 지문 분말을 뿌리는 모습도 담겼다. 시리즈 제목인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는 로카르의 교환법칙, 즉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법과학의 제1원리를 변주한 것이다. 이 사진들은 왕립지리학회 등이 주최한 얼스포토 2026 대상과 2026년 4월 모나코 알베르 2세 재단 환경사진상 대상을 받았다.

야생동물 수사의 질문을 바꾸다

지금까지 야생동물 법과학의 중심 질문은 ‘이것이 무슨 동물인가’였다. 종을 판별하고 산지를 추적하는 일이다. 새 기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가 이것을 만졌는가’를 묻는다. 불법 야생동물 거래는 연간 70억~230억 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가 집계한 2015~2021년 압수 기록만 해도 162개국 14만 건 이상이며 약 4,000종이 영향을 받았다. 물건의 정체만 밝히고 운반책 너머 사람의 연결망을 찾지 못한다면, 압수량이 늘어도 조직은 남을 수 있다.

가장 먼저 넘어야 했던 벽은 상아 자체였다. 상아는 매끈해 보이지만 반다공성, 즉 작은 구멍이 있어 액체를 일부 빨아들이는 표면이다. 미세한 능선과 구멍이 지문의 땀과 기름을 스펀지처럼 흡수해 융선 무늬를 흐린다. 기존 지문 분말은 약 100마이크로미터였다. 마이크로미터는 100만분의 1미터인데도 상아 표면의 흔적을 잡기에는 입자가 너무 컸다.

2001년 이스라엘 경찰이 코끼리 생상아에서 지문 검출을 처음 시도한 뒤 약 15년 동안 후속 연구는 사실상 끊겼다. 2015~2016년 킹스칼리지런던·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런던경찰청 특수감식반은 철·실리카·탄소로 된 자성분말 입자를 40마이크로미터 이하로 줄였다. 핀 머리보다 75배 작은 입자가 땀과 피지에 달라붙도록 만든 것이다. 기존 기법의 한계가 만진 뒤 2~3일이었다면, 새 분말은 28일이 지난 지문까지 검출했다. 상아가 한 달 전의 손을 기억하는 셈이다. 가장 선명한 흔적은 7일 이내였으며, 현장 키트 가격은 약 150달러로 실험실 없이 국경과 야생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다.

표면마다 해법은 다르다. 천산갑 비늘은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비다공성이어서 접착면이 있는 얇은 젤 시트로 눌러 떠내는 젤라틴 리프터가 잘 맞는다. 최대 4개월 지난 지문까지 회수한 사례가 있지만 법과학 증거로 쓸 만한 등급은 그중 일부다. 케냐와 카메룬에 배포된 레인저용 팩에는 젤 리프터와 가위, 롤러, 글을 몰라도 볼 수 있는 그림 설명서가 들어간다. 코뿔소 뿔은 표면 능선 때문에 상아보다 어렵고, 하마와 향고래의 이빨에는 지문 기법이 잘 듣는다. 연구 범위는 모피·가죽·등껍질·깃털·뼈로 넓어지고 있다.

핵실험의 낙진과 코끼리 배설물이 증언하다

상아가 기억하는 것은 손길만이 아니다. 1950~60년대 대기권 핵실험은 대기 중 방사성탄소인 탄소-14를 급격히 늘렸다. 이후 농도는 알려진 속도로 감소해 ‘폭탄 곡선’이라는 시간표가 됐다. 코끼리 상아는 밑동에서 계속 자라면서 최근 먹은 식물의 탄소 신호를 기록한다. 밑동의 탄소-14 농도를 재면 그 조직이 만들어진 시점, 곧 개체가 죽은 해를 최근 약 60년 범위에서 ±1.3년 정확도로 추정할 수 있다.

2016년 대형 압수 14건에서 상아 231점을 분석하자 약 90%가 압수되기 3년 미만 전에 죽은 코끼리에게서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죽음에서 압수까지 걸린 기간의 중앙값은 7~13개월이었다. 이는 거래품이 오래된 비축 상아라기보다 최근 죽은 개체의 상아라는 뜻이다. 다만 이 측정이 알려주는 것은 밀렵 행위가 벌어진 정확한 날짜가 아니라 조직이 만들어진 시점, 즉 개체가 죽은 시점이다.

산지는 배설물로 찾는다. 워싱턴대 연구팀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코끼리 배설물을 모아 지역별 유전 지도를 만들고 압수 상아의 DNA와 비교했다. 출신지를 약 300킬로미터 오차 안에서 좁힐 수 있었다. 2002년 싱가포르에서 압수된 6.5톤, 상아 532개가 여러 지역에서 모였다는 가설도 뒤집었다. DNA는 거의 전부가 잠비아 한 지역에서 왔다고 가리켰다.

밀매조직은 한 코끼리의 왼쪽과 오른쪽 상아를 서로 다른 선적에 나눠 추적을 피한다. 2018년 연구가 DNA로 압수 38건 속 상아를 다시 맞추자 26쌍이 확인됐다. 무관해 보였던 선적들이 같은 조직과 연결됐고 몸바사·엔테베·로메가 거점 항구로 지목됐다. 2022년에는 완전히 같은 DNA뿐 아니라 부모·자식·형제 관계까지 찾는 가계도 방식이 도입됐다. 그 결과 대형 상아 선적 대부분을 3개, 넓게 잡아도 6개 미만의 초국가 범죄조직이 담당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압수는 물건을 잡지만 유죄는 사람을 잡는다

기술의 성과와 실제 수사 사이에는 큰 틈이 있다. 리버풀존무어스대와 런던동물학회 등이 참여한 2023년 리뷰는 수십 년 동안 여러 종을 대상으로 개념을 증명했는데도 실제 수사에 적용된 기록은 단 한 건뿐이라고 진단했다. 사람 법과학과 야생동물 법과학 전문가들이 분리돼 있고, 형량이 가벼운 사건에 비용을 들이기 어렵다는 인식도 있었다. 현장에서 물건을 든 채 붙잡혔으니 누가 만졌는지 더 밝힐 필요가 없다는 전제가 운반책 위의 사슬을 가렸다. 법 집행관이 장갑 없이 압수물을 다뤄 원래 지문을 훼손하는 문제도 지적됐다.

그 간극은 몸바사 법정에서 드러났다. 2014년 6월 한 창고에서 상아 314개, 2,152킬로그램이 압수됐다. 피고인은 탄자니아에서 검거돼 2016년 징역 20년을 선고받았고, DNA는 상아가 탄자니아 북부 코끼리 약 150마리분임을 밝혔다. 그러나 2018년 8월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현장 사진과 압수물 대장이 없었고, 새벽 1시 30분 민간인을 동원해 물건을 반출했으며, 봉쇄됐다는 구내에서 차량 9대가 사라졌다. 결정적으로 판결은 ‘검찰 측 증인 누구도 그 상아를 실제로 누가 점유했는지 증언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DNA는 상아가 어디서 왔는지는 말했지만 누가 만졌는지는 말하지 못했다. 압수는 물건을 잡는 일이고, 유죄는 사람을 잡는 일이라는 차이다.

2026년까지 지문 키트 200개 이상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40개국에 배포됐다. 케냐에서는 키트 하나로 수집한 증거가 15명 검거로 이어졌고 그중 5명은 경찰관이었다. 하지만 이후 검거는 사실상 늘지 않았다. 지문을 떠도 맞춰볼 데이터베이스가 없어 증거가 서랍에 보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16년 조사에서는 39개국 관련 실험실 110곳 가운데 외부 인증 감사를 받은 곳이 22곳뿐이었다. 2022년 기준 전담 야생동물 법과학 실험실도 전 세계 10개국 12곳 안팎이었다. 기술뿐 아니라 데이터베이스, 증거 보존 절차, 표준화와 수사 의지가 함께 있어야 한다.

한국에는 종을 찾는 체계만 있다

한국은 1993년 7월 9일 멸종위기종 국제거래협약에 가입했다. 무허가 수출입은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 벌금 대상이다. 관세청의 야생동식물 밀수 적발은 2020년 10건, 2021년 7건에서 2022년 35건, 2023년 45건, 2024년 31건으로 늘었다. 환경부 기준 단속도 2016~2021년 5건에서 2022~2025년 51건으로 증가했다. 두 통계는 소관 법률과 집계 방식이 달라 합산하거나 직접 비교할 수 없다. 2022~2024년에는 코모도왕도마뱀 등 외래생물 1,865마리를 속옷·컵라면 용기·담뱃갑에 숨겨 들여온 조직 14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반면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온라인으로 옮겨간 멸종위기종 거래의 온라인 단속 실적은 지난 10년간 0건이다.

감정 역량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관세청이 밀반입을 적발하면 국립생물자원관이 종 판별을 맡으며, 이 기관은 DNA 바코드 8만7,353건을 보유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비인체시료분석실도 인간 이외 생명체의 종을 식별하고 밀렵·밀수에 활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야생동물 전담 부서는 없다. 대검찰청과 경북대의 2023년 공동 연구도 표준화된 실험·분석법이 없어 과학적 증거 채택이 어렵다고 진단했다.

2025년 3월 마련된 관세청·국립생물자원관·국립생태원·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협업 체계는 ‘이것이 무슨 종인가’까지를 정의한다. 압수품에서 사람의 지문이나 접촉 DNA, 즉 만지면서 남긴 극소량의 유전물질을 회수하는 절차는 없다. 국제 야생동물법과학회 회원 실험실 명단에서도 한국 소속은 확인되지 않는다. 종을 알아내는 절반의 체계는 있지만, 그 물건을 사람과 연결하는 나머지 절반이 비어 있는 셈이다.

사진 속 푸른바다거북은 2025년 10월 국제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에서 ‘위기’에서 ‘관심대상’으로 내려갔다. 1982년 이후 40여 년 만에 중간 단계를 건너뛴 이례적인 회복으로, 1970년대보다 세계 개체수가 28% 이상 늘어난 결과다. 그렇다고 손자국의 의미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90~2020년 최소 110만 마리의 바다거북이 불법 포획·거래됐고, 95%가 푸른바다거북과 매부리바다거북이었다. 죽은 거북의 등껍질에 남은 손바닥은 과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 제도가 아직 무엇을 하지 않고 있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한 달 새 3만 마리…국경의 공조는 이미 실전이다

과학이 실험실에서 표면과 씨름하는 동안, 국경의 공조는 규모를 키웠다. 인터폴과 세계관세기구(WCO)가 2025년 9월 15일부터 한 달간 134개국 세관·경찰과 함께 벌인 '선더 작전'에서는 살아 있는 동물 3만 마리 가까이가 압수됐다. 역대 최다로, 하루 천 마리꼴이다. 압수는 4,640건, 특정된 용의자는 1,100여 명이었다. 베트남에서는 어선 한 척에서 천산갑 비늘 4.2t이 나왔다. 젤라틴 리프터가 겨냥하는 바로 그 품목이 여전히 톤 단위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규범의 그물도 촘촘해지고 있다. 2025년 11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멸종위기종 국제거래협약 제20차 당사국총회는 뱀장어속 전 종을 부속서 II(국제거래에 수출허가가 필요한 목록)에 올리는 등 보호 대상을 넓혔다. 한국은 이를 반영해 2026년 3월 5일 국제적 멸종위기종 목록을 개정하고 131종을 조정했다. 부속서 II에 새로 오른 종만 82종이다. 뱀장어 등재는 양식 산업과 직결된 문제여서 해양수산부는 2025년 6월부터 민관 협의회를 가동해 왔다.

'세관은 최전선'…판별 다음 단계를 준비할 시간

인터폴은 이번 작전 결과가 불법 야생동물·산림 거래를 움직이는 범죄 조직망의 정교함과 규모를 다시 드러냈으며 마약 밀매, 사람에 대한 착취와도 얽혀 있다고 진단했다. WCO는 급증하는 국경 야생동물 범죄에서 세관을 최전선 방어로 규정했다. 압수량 신기록은 성과인 동시에, 그만큼의 압수품이 판별과 수사를 기다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도 이 계산에서 자유롭지 않다. 3월 고시로 규제 대상 종이 늘어난 만큼 세관과 감정 기관이 다뤄야 할 압수품도 늘어난다. 밀수 적발 뒤 보호하던 국제적 멸종위기 거북 28마리를 올해 5월 원서식지 베트남으로 돌려보낸 국립생태원 사례처럼 압수 이후의 체계는 쌓이고 있다. 남은 일은 그 압수품을 사람과 연결하는 절차를 국제 공조의 속도에 맞춰 갖추는 것이다.

자료: 유엔환경계획·인터폴, 유엔마약범죄사무소, 국제자연보전연맹, 멸종위기종국제거래협약 사무국, 런던동물학회 동물학연구소, 킹스칼리지런던,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리버풀존무어스대, 포츠머스대, 워싱턴대, 유타대, 관세청, 국립생물자원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검찰청, 경북대·세계관세기구·기후에너지환경부·해양수산부·국립생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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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광 기자 hg.lim@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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