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 신호는 끄고 면역 스위치는 켠다…국내 연구진, 나노 항암기술 'EVOTAC' 개발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7.23 16:27 · 수정 2026.09.07 15:43
KIST·성균관대·인천대 공동연구팀, 종양 유래 소포체를 없애는 대신 면역 무기로 바꾸는 이중 스위치 전략 제시…동물실험서 종양 완전 소멸
암세포 신호는 끄고 면역 스위치는 켠다…국내 연구진, 나노 항암기술 'EVOTAC' 개발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서울 본원 캠퍼스 전경.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SJ01234·CC BY-SA 3.0)

암세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몸속에 미세한 입자를 흩뿌린다. 이 입자를 없애면 암을 억제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안에 면역을 깨우는 '이로운 신호'까지 섞여 있다는 데 있다. 나쁜 것만 골라 끄고 좋은 것만 켤 수는 없을까. 국내 연구진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하나의 나노 기술로 내놓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심만규 선임연구원과 성균관대 양유수 교수, 인천대 김준섭 교수 공동연구팀은 종양이 내보내는 미세 입자를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차세대 항암 면역기술 'EVOTAC'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시그널 트랜스덕션 앤드 타깃티드 세러피(Signal Transduction and Targeted Therapy)에 지난 9일 온라인 게재됐다.

암세포가 뿌리는 '양날의 입자'

핵심은 종양 유래 세포외소포체(TEVs)다. 세포외소포체는 세포가 밖으로 내보내는 지름 수십에서 수백 나노미터 크기의 작은 주머니로, 그 안에 단백질이나 유전물질을 담아 다른 세포에 신호를 전달한다. 암세포가 만든 소포체는 종양의 성장과 전이를 돕는 '나쁜 신호'를 퍼뜨리지만, 동시에 면역세포를 자극해 항암 반응을 일으키는 '이로운 신호'도 함께 지닌다.

그동안의 치료 전략은 이 소포체를 가리지 않고 통째로 억제하는 방식이었다. 종양을 돕는 기능을 막을 수는 있어도, 면역을 깨우는 이로운 소포체까지 함께 차단해 버리는 것이 한계였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지 못한 채 한꺼번에 지워 온 셈이다.

끄는 스위치, 켜는 스위치

연구팀은 발상을 뒤집었다. 소포체를 제거 대상이 아니라 조절 대상으로 본 것이다. EVOTAC은 두 개의 스위치로 작동한다. 먼저 '스위치 오프' 단계에서는 암세포가 소포체를 만들 때 필요한 핵심 단백질을 표적 분해해, 종양을 돕는 소포체의 생성 자체를 막는다.

이어 '스위치 온' 단계에서는 암이 있는 부위에 레이저를 쬔다. 이때 광감각제(빛을 받으면 활성산소를 만들어 주변 세포를 공격하는 물질)가 반응을 일으키는 광역학 치료가 작동하면서, 이번에는 면역세포에서 항암 반응을 유도하는 소포체가 선택적으로 만들어지도록 유도한다. 종양을 키우는 신호는 끄고, 면역을 깨우는 신호는 켜는 이중 전략이다.

동물실험서 종양 완전 소멸

효과는 대표적 난치암으로 꼽히는 삼중음성 유방암과 대장암 동물모델에서 확인됐다. 삼중음성 유방암은 주요 표적 치료의 길이 막혀 있어 치료가 특히 어려운 유형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EVOTAC을 적용한 동물모델에서 종양이 완전히 사라졌고, 강력한 항암 면역반응이 형성되면서 재발과 전이도 효과적으로 억제됐다.

심만규 선임연구원은 "종양 유래 세포외소포체를 무분별하게 억제하던 기존 접근에서 벗어나, 면역반응을 촉발하는 형태로 선택적으로 유도하는 새로운 원천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성과가 종양 유래 소포체를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면역치료를 조절하는 인자'로 활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기존 면역항암제의 한계를 보완할 가능성도 기대된다. 다만 이번 결과는 동물모델 단계에서 확인된 것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안전성과 효능은 앞으로의 임상 연구를 통해 검증해야 한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 지원으로 수행됐다.

자료: 한국과학기술연구원 (Signal Transduction and Targeted Therapy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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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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