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리움의 다음 경쟁력은 속도가 아니라 생존성이다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8.12 05:43
양자 내성과 프라이버시는 부가 기능이 아닌 기반 설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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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비탈릭 부테린)

블록체인의 미래를 말할 때 우리는 대개 더 빠른 처리 속도와 낮은 수수료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필자는 비탈릭 부테린이 이더리움의 새 로드맵에서 양자 내성과 프라이버시를 강조했다는 사실이 더 본질적인 방향 전환이라고 본다. 성능 경쟁에서 조금 뒤처진 네트워크는 개선할 수 있지만, 서명 체계가 무너지거나 이용자의 경제활동이 지나치게 노출된 네트워크는 신뢰 자체를 잃기 때문이다.

양자 위협은 ‘내일의 재난’보다 ‘오늘의 설계 문제’다

이더리움을 비롯한 블록체인은 암호학적 서명, 즉 비밀번호를 공개하지 않고도 자산의 주인임을 증명하는 기술에 의존한다. 충분히 강력한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 현재 널리 쓰이는 일부 공개키 암호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우려다. 당장 기존 체계를 깨뜨릴 수준의 양자컴퓨터가 실용화됐다고 볼 단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준비를 미룰 근거도 없다.

블록체인은 일반 정보시스템보다 교체가 어렵다. 수많은 지갑과 거래소, 스마트계약, 보관 장치가 같은 규칙을 공유하고 있으며, 장기간 움직이지 않은 자산까지 새 서명 방식으로 옮겨야 할 수 있다. 양자 내성 암호는 양자 공격에도 버티도록 설계한 암호 기술이지만, 대체로 키와 서명이 커지거나 검증 비용이 늘어나는 부담이 따른다. 따라서 핵심은 특정 암호 하나를 서둘러 채택하는 데 있지 않다. 필요할 때 암호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암호 민첩성’을 프로토콜에 심는 데 있다.

프라이버시는 숨김이 아니라 선택권이다

공개 장부의 투명성은 블록체인의 장점이지만, 개인의 거래와 기업의 자금 흐름이 연결되어 보이는 것은 일상적 금융에 큰 제약이다. 프라이버시를 범죄 은폐와 같은 말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필요한 사실만 증명하고 나머지는 공개하지 않는 선택적 공개가 가능해야 한다. 영지식증명처럼 내용을 드러내지 않고도 조건 충족을 증명하는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로드맵의 강조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더리움 생태계는 양자 위협을 가정한 비상 전환 절차, 기존 자산의 안전한 이전 방식, 하드웨어 지갑과 거래소의 호환성, 프라이버시 기능의 비용과 규제 대응을 함께 시험해야 한다. 공개 테스트넷에서 실패 상황까지 반복 검증하고, 이용자가 이해할 수 있는 복구 절차도 마련해야 한다.

필자는 이번 방향이 반갑지만, 진정한 평가는 새로운 기능의 화려함이 아니라 위기가 왔을 때 네트워크가 얼마나 질서 있게 바뀔 수 있는지로 내려져야 한다고 본다. 양자 내성과 프라이버시를 먼 미래의 장식이 아니라 현재의 공학적 의무로 다룰 때, 이더리움은 빠른 플랫폼을 넘어 오래 살아남는 공공 인프라에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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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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