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가 필수의료 설계하면 중앙정부 지원…지역 맞춤형 체계로 전환

지역마다 필요한 의료인력과 병원 기능이 다른데도 같은 기준으로 지원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지방정부가 필수의료 정책을 직접 설계하고 중앙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체계가 추진된다. 주민이 사는 곳에 따라 달라지는 의료자원 격차를 지역 단위 계획으로 풀겠다는 구상이다.
보건복지부 의료체계혁신과 양정석 과장은 지난 2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병원 및 헬스테크 박람회에서 의료혁신 추진 방향을 설명했다. 핵심은 필수의료 지원 방식을 ‘일괄 지원’에서 ‘지역 맞춤형 지원’으로 바꾸는 것이다. 공공의료기관도 규모와 실제 진료역량을 기준으로 기능을 다시 정립할 방침이다.
제도 전환의 법적 기반도 마련됐다. ‘필수의료 강화 지원 및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를 위한 특별법’은 2026년 3월 10일 제정됐으며 2027년 3월 11일부터 시행된다. 이 법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에 필요한 정책을 주도적으로 수립하고 추진하도록 명시했다.
법에는 진료권과 필수의료 자체충족률도 법정 개념으로 도입됐다. 자체충족률은 지역 주민에게 필요한 필수의료를 해당 지역 안에서 얼마나 제공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지역마다 의료 여건을 수치로 살피고, 부족한 기능을 계획과 재정 지원에 반영할 근거가 생긴 셈이다.
재정을 뒷받침할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는 법 시행보다 앞선 2027년 1월 1일 가동된다. 담배 개별소비세 총액의 55%와 담배 관세 일부 등이 세입으로 들어간다. 재원은 지역 필수의료인력 확보, 의료기관 간 진료협력체계 구축, 책임·거점의료기관과 전문센터 운영, 의료취약지 기반 확충, 지방자치단체 사업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이번 방향은 2025년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에서 제시된 지역의료지도 기반 지역수가와 지역의료발전기금 연계형 혁신시범사업의 연장선에 있다. 지역수가는 의료 여건이 취약한 곳에서 진료를 제공할 때 추가 보상이 가능하도록 하는 장치다. 당시 정부는 3년간 포괄 2차 종합병원에 2조원, 필수특화 기능에 3000억원, 지역의료 혁신시범사업에 500억원을 투입하는 구상을 제시했다.
보건복지부는 2026년 7월 특별회계의 투자 원칙을 ‘수도권에서 멀수록 더 지원’, ‘공공의료 우선’, ‘지역 주도’로 정했다. 중앙정부는 기준 설정과 평가·재정 배분을 맡고, 시·도는 지역계획을 수립·관리한다. 권역책임의료기관은 지역 의료기관을 잇는 네트워크의 총괄과 조정을 담당한다.
공공의료 기반은 전체 의료체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국립중앙의료원의 2024년 통계에 따르면 공공의료기관은 231곳이었다. 이 가운데 공공 병원급 의료기관 223곳은 전체 병원급 기관의 5.3%였고, 병상 6만557개는 전체 병원급 병상의 9.4%였다.
공공 종합병원 가운데 300병상을 초과한 기관은 24곳, 1만2597병상이었으며 300병상 이하 기관은 38곳, 8905병상이었다. 기능별로는 일반진료 중심 66곳, 특수질환 중심 48곳, 특수대상 중심 34곳, 노인병원 83곳으로 차이가 컸다. 단순한 기관 수보다 각 지역에 실제로 필요한 진료 기능과 인력을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다.
정부 공식 자료는 2030년까지 수도권 대형병원 병상이 약 6000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이를 지역 환자와 의료인력이 수도권으로 유출될 수 있는 배경으로 보고 있다. 이번 개편은 지역이 필요한 사업을 정하고 중앙정부가 재정과 평가로 뒷받침하는 역할 분담을 제도화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자료: 보건복지부,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국립중앙의료원, 대한병원협회 KHF 사무국, 대한전문병원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