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근육에 '운동'을 시켰더니, 로봇이 헤엄치기 시작했다

임형광 기자 · 입력 2026.07.23 16:57 · 수정 2026.09.07 11:11
실험실 근육으로 헤엄치는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이 최고 속도를 갈아치웠다 — 딱딱한 휴머노이드가 못 가는 곳으로 향하는 무른 기계들의 시간
[기획] 근육에 '운동'을 시켰더니, 로봇이 헤엄치기 시작했다
(사진=싱가포르국립대(NUS) 제공)

실험실 접시에서 키운 근육 두 덩이를 미끄러지는 블록으로 이어 마주 보게 묶어두면, 세포가 익어가며 저 혼자 꿈틀대기 시작한다. 한쪽이 수축하면 반대쪽이 끌려 늘어났다가 되받아치고, 그렇게 밤낮없이 서로를 잡아당긴다. 전원도 자극 장치도 사람 손도 없이, 근육 두 덩이가 팔씨름을 하며 스스로 몸을 만드는 것이다.

싱가포르국립대(NUS) 기계공학과 연구진은 이 단순한 장치로 힘을 키운 근육을 만들어, 3㎝ 남짓한 물고기형 로봇을 분당 467㎜로 몰았다. 골격근으로 움직인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빠른 속도다. 연구 결과는 지난 3월 18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실렸다.

팔씨름에서 빌려온 훈련법

살아 있는 근육으로 기계를 움직이려는 시도는 오래됐다. 근육은 무르고, 주변에 스스로 적응하며, 아주 작은 규모에서도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는다. 딱딱한 모터가 흉내 낼 수 없는 재주다. 문제는 배양한 근육이 너무 약했다는 점이다. 힘이 모자라면 로봇은 빨리 움직이지도, 짐을 싣지도 못한다. 그래서 대개 밖에서 전기나 늘림 자극으로 근육을 쥐어짜야 했고, 그러자면 전용 장비와 사람 손이 붙어야 했다.

연구진이 택한 우회로는 근육을 더 세게 자극하는 대신, 근육이 성숙하는 과정 자체를 훈련장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배양한 골격근 조직에는 아무 자극이 없어도 저절로 꿈틀대는 성질이 있다. 논문에 따르면 이 자발 수축은 분화를 시작한 지 사흘째 나타나 나흘째에 세지고 닷새에서 이레 사이 정점을 찍은 뒤, 이레가 지나면 잦아들어 열나흘째에는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 그 짧은 창을 훈련 기간으로 쓴 것이다.

두 조직을 사슬처럼 이어 놓으면 한쪽의 수축이 다른 쪽을 늘이고, 늘어난 쪽이 되받아 당긴다. 개별 근육이 겪는 변형 폭 자체는 ±2~3%로 크지 않지만, 이 자극은 끊기지 않고 이어지며 근육이 세질수록 자극의 크기도 저절로 따라 올라간다. 연구진이 자가훈련 성숙 플랫폼이라 이름 붙인 이 장치의 핵심은, 훈련을 로봇 골격에서 떼어냈다는 데 있다. 기존 방식은 근육을 로봇 뼈대에 붙인 채로 키워야 해서, 뼈대를 무르게 하면 힘이 안 붙고 딱딱하게 하면 움직임이 눌리는 딜레마에 갇혀 있었다.

숫자가 말하는 것

일주일 남짓한 자가 훈련만으로 근육은 최대 7.05mN(밀리뉴턴)의 힘과 8.51mN/㎟의 응력을 냈다. 신경을 연달아 자극해 힘이 겹쳐 쌓인 강직 수축 기준이며, 한 번 톡 치는 연축에서는 4.21mN이었다. 연구진은 이 값이 실험실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생쥐 근아세포주 C2C12에서 나온 액추에이터로는 최고치라고 못 박았다. 사람 근육세포로 만든 구동기까지 통틀어 최고라는 뜻은 아니다.

그래도 격차는 크다. 논문은 기존 C2C12 근육 조직이 대부분 1mN 미만의 힘을 내며 2mN을 넘긴 보고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정리했다. 응력은 한결같이 2mN/㎟ 아래였다. 대조 실험도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무른 뼈대 방식으로 키운 근육은 0.86mN에 그쳤고, 딱딱한 틀에 고정해 키운 근육은 3.70mN, 팔씨름 방식은 6.15mN이었다.

힘의 차이는 그대로 속도로 옮겨 갔다. 같은 로봇에 딱딱한 틀에서 키운 근육을 달았을 때보다 자가 훈련 근육을 달았을 때 세 배 이상 빨리 헤엄쳤다. 분당 467㎜는 1분에 46㎝ 남짓, 한 시간이면 28m를 가는 속도다. 논문은 이를 몸길이 기준으로 분당 15.6체장이라고 적었는데, 역산하면 로봇의 몸길이는 3㎝ 안팎이다.

거북복에게 빌린 몸, 박수로 켜는 스위치

강해진 근육은 몸체 설계와 맞물렸다. 헤엄치는 로봇 대부분이 몸통을 물결치듯 흔드는 방식을 흉내 낸 것과 달리, 연구진은 몸통은 거의 굳힌 채 꼬리만 흔드는 거북복의 헤엄에서 형태를 빌렸다. 구조가 단순하고 에너지를 아낀다는 것이 이 방식의 장점이다. 로봇 이름 오스트라봇도 거북복과의 학명에서 나왔다.

몸체는 단단한 뼈대와 자가 훈련 근육, 힘을 전달하는 인공 힘줄 역할의 유연한 빔 한 쌍, 그리고 추진용 꼬리 둘로 이뤄졌다. 연구진은 근육의 생리를 반영한 수축 모형을 세워, 힘줄의 강성과 자극 주파수를 어떻게 짝지어야 근육이 내놓는 에너지가 최대가 되는지를 먼저 계산한 뒤 설계에 반영했다.

제어 시연은 소리로 했다. 박수를 두 번 치면 로봇이 헤엄치기 시작하고, 한 번 치면 자극이 끊긴다. 정지 신호를 받은 로봇은 4초쯤 미끄러진 뒤 멈춰 섰다. 이 정밀한 켜고 끄기가 가능한 이유가 흥미롭다. 로봇에 조립될 무렵이면 근육의 자발 수축은 이미 크게 잦아들고 제멋대로가 되어, 물의 저항을 이겨낼 만한 추진력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되 명령을 벗어나지 않는 상태다. 탄유준 조교수는 이 장면을 두고 "박수는 이 로봇이 그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제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무른 기계들이 넓히는 영역

이 작은 물고기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로봇공학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어서다. 사람을 빼닮은 휴머노이드가 주목받는 사이, 다른 한편에서는 무르고 작고 살아 있는 기계들이 조용히 영역을 넓혀 왔다.

2022년 하버드대 킷 파커 교수팀은 사람 유도만능줄기세포에서 분화시킨 심근세포로 움직이는 물고기 로봇을 사이언스에 보고했다. 100일 넘게 스스로 헤엄쳤고 속도와 효율이 야생 제브라피시에 견줄 만했다. 지난해 2월 도쿄대 다케우치 쇼지 교수팀은 사람 근조직 다발로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이는 바이오하이브리드 손을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실었는데, 수축력은 8mN 안팎이었다. 지난해 11월 매사추세츠공대(MIT) 리투 라만 교수팀은 하이드로젤로 만든 인공 힘줄을 근육과 골격 사이에 끼워 그리퍼의 출력 대 중량비를 열한 배가량 끌어올렸다고 어드밴스드 사이언스에 보고했다.

제각각으로 보이지만 겨냥하는 곳은 비슷하다. 딱딱한 관절로는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몸속, 밟으면 부서지는 서식지처럼 기존 기계가 못 가던 자리다.

한국은 어디에 서 있나

배양한 골격근으로 로봇을 굴린 국내 성과는 공식 발표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축은 재료를 바꾼 쪽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최인성 교수팀은 지난해 6월 효모 세포에 촉매를 붙여, 생체 부산물인 요소를 연료 삼아 스스로 헤엄치는 세포 로봇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살아 있는 세포를 동력으로 쓴다는 발상은 같지만, 근육 조직을 배양해 힘을 뽑아내는 계열과는 갈래가 다르다.

정책 지형도 다른 곳을 향한다. 정부는 2023년 12월 첨단로봇 산업 비전과 전략에서 2030년까지 민관 합동 3조 원 이상을 투자해 국내 로봇산업 규모를 20조 원 이상으로 키우고 로봇 100만 대를 새로 보급하겠다고 밝혔고, 이듬해 1월 제4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으로 이행 계획을 확정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의 로봇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실적 기준 국내 로봇산업 매출은 6조1,695억 원으로 전년보다 3.2% 늘었다. 제조와 서비스 로봇의 보급·국산화에 무게가 실린 설계다. 살아 있는 조직을 구동기로 쓰는 분야를 따로 겨냥한 국가 계획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힘을 얻은 다음의 숙제

연구진도 이번 결과를 종착점으로 말하지 않았다. 논문은 결론에서 "이런 진전에도 유영 효율의 추가 개선은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 시스템에 여전히 중요한 방향으로 남아 있다"고 적었다. 힘의 병목을 뚫는 것은 필요조건일 뿐, 효율은 꼬리 크기와 모양, 몸체 형태까지 함께 풀어야 하는 시스템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탄 조교수는 성과의 무게중심을 이렇게 옮겼다. "이 연구의 목적은 단지 더 빠른 로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분야의 근본적인 병목을 걷어내고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고성능 바이오하이브리드 시스템의 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힘은 중요한 이정표 하나일 뿐, 장기 안정성과 에너지 효율, 수명주기 설계가 똑같이 중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분야 차원의 진단은 더 구체적이다. 파커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2023년 국제학술지 바이오인스피레이션 앤드 바이오미메틱스에 낸 리뷰는 세 가지를 꼽았다. 오래 임무를 수행하려면 조직을 살려 둘 보조 시스템이 필요하고, 살아 있는 부품이 세균이나 효소에 분해되지 않도록 보호 외피가 있어야 한다는 것. 확장 가능하고 재현 가능한 제작 방식이 아직 없다는 것이 이 분야가 실제로 쓰이는 데 걸림돌이라는 것. 그리고 동물 유래 조직을 쓰는 이상 사용량 감축과 대체, 개선, 재현성이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연구가 값싸고 재현 가능한 상용 세포주로, 그것도 특별한 장비 없이 벽을 넘었다는 점은 뒤따르는 실험실들에 실질적인 발판이 된다. 부품을 조립해 만드는 기계가 아니라, 키우고 훈련시켜 만드는 기계의 문이 조금 더 열린 셈이다.

자료: 싱가포르국립대학교(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하버드대·도쿄대·매사추세츠공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통상자원부·한국로봇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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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광 기자 hg.lim@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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