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90만 기압 맞은 규회석, 다비마오이트 회절선 보였다가 감압 중 사라져

머리카락보다 얇은 0.01∼0.02mm짜리 물질을 약 90만 기압으로 누르면 원자들은 어떻게 줄을 다시 설까. 한국 연구진이 주도한 국제공동연구팀은 규회석(CaSiO₃)에 5ns(나노초·10억분의 1초) 동안 레이저 충격을 가한 뒤, 원자 배열이 만든 X선 무늬를 기록했다. 압력을 달리해 얻은 결과를 나란히 놓자 결정 구조가 흐트러진 비정질 구간을 지나 하부맨틀 광물인 다비마오이트의 날카로운 회절선이 나타났고, 압력을 푸는 과정에서는 그 회절선이 다시 사라지는 경로가 드러났다.
다만 이는 한 알갱이의 변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한 영화가 아니다. 충격 때마다 소모되는 서로 다른 표적 18개에서 X선 회절(XRD·결정 속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됐는지를 X선 무늬로 판별하는 방법) 한 장씩을 얻어 압력과 시간 순으로 배열한 ‘플립북’에 가깝다. 연구진이 확인한 것은 다비마오이트 결정 자체를 회수한 결과가 아니라, 고압에서 날카로운 결정 회절선이 나타났다가 감압 자료에서 사라진 현상이다.
천천히 누를 때와 순식간에 때릴 때가 달랐다
출발물질은 유리가 아니라 결정질 다결정 규회석이었다. 연구진은 순도 99% 규회석 분말을 1.5GPa와 1100°C에서 24시간 소결해 시료를 만들었다. 다비마오이트는 CaSiO₃가 높은 압력에서 이루는 광물로, 페로브스카이트 구조를 갖는다. 여기서 페로브스카이트는 특정 물질의 용도가 아니라 원자 배열 방식의 이름이다. 할라이드 페로브스카이트를 쓰는 태양전지와는 조성과 용도가 다르다.
압축 자료에서 연구진이 재구성한 순서는 저대칭상, 비정질, 비정질과 다비마오이트의 혼합상, 다비마오이트였다. 저대칭상은 33±2∼59±6GPa, 원자의 장거리 질서가 무너진 비정질 신호는 59±4∼66±4GPa에서 관측됐다. 87±6∼99±13GPa에서는 넓은 비정질 배경과 날카로운 다비마오이트 회절선이 함께 나타났다. 명확한 다비마오이트 회절선이 판정된 샷들은 91±10∼127±9GPa 범위에 있었다.
최초의 명확한 검출 조건인 91±10GPa는 약 90만±10만 기압, 1σ 불확도 범위로 약 80만∼100만 기압이다. 그러나 이 값을 정확한 상전이 문턱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91±11GPa, 91±13GPa, 93±6GPa에서도 혼합상이 관측됐고 각 압력의 불확도도 약 10% 수준으로 겹친다. 고압 회절선은 입방정 CaSiO₃ 페로브스카이트의 피크 위치와 XRD 밀도에 들어맞아 입방정 다비마오이트로 해석됐지만, 장비가 미세한 정방정과 입방정의 차이를 완전히 가려낸 것은 아니다. 날카로운 피크가 나타났다는 사실도 비정질 성분이 모두 사라진 순수 단일상이 됐다는 뜻은 아니다.
차이는 압력뿐 아니라 시간에서 생겼다. 천천히 가압하는 평형 조건에서는 CaSiO₃ 페로브스카이트 구조가 약 10GPa 이상에서 안정하지만, 이번 나노초 충격에서는 약 91GPa에 이르러서야 뚜렷한 회절선이 검출됐다. 연구진은 결정핵이 생기고 원자가 새 구조로 재배열될 시간이 부족한 동역학 장벽을 중요한 원인으로 해석했다. 복잡한 종이접기를 끝낼 시간이 없어서 훨씬 세게 눌러야 했던 셈이다. 다만 비정질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간단계인지는 입증되지 않았으며, 일부 물질이 이 단계를 우회했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7펨토초 X선으로 만든 18장의 플립북
실험은 일본 SACLA BL3-EH5에서 진행됐다. 오사카대학교 레이저공학연구소가 SACLA에 설치한 고출력 나노초 레이저를 이용해 두께 10∼20µm의 시료에 파장 532nm, 에너지 3∼19J의 충격을 5ns 동안 가했다. 이어 10.01±0.01keV의 X선을 30×10µm² 영역에 약 7fs(펨토초·1000조분의 1초) 동안 조사했다. 7fs 동안 빛이 진공에서 이동하는 거리도 약 2.1µm에 불과하다. 이 짧은 셔터 한 번으로 충격 중 원자 배열이 남긴 회절무늬를 기록했다.
연구진은 충격·감압 실험 18회에서 저대칭상 5장, 비정질 2장, 혼합상 5장, 다비마오이트 4장, 감압 상태 2장의 무늬를 얻고 상온 기준 패턴 한 장을 별도로 측정했다. 압력은 515nm VISAR라는 속도 간섭계와 LiF 임피던스 정합을 이용해 정했다. LiF가 없는 샷은 레이저 에너지와 압력의 보정식으로 추정했다. 압력과 온도, 시간이 빠르게 변하고 시료 내부도 균일하지 않아 정확한 결정화 시간이나 반응속도, 활성화에너지는 구하지 못했다. 확인된 범위는 다비마오이트가 나노초 실험창 안에서 형성될 수 있다는 데까지다.
충격 온도도 직접 측정하지 않았다. 논문의 계산 띠에서 90GPa 부근 온도는 대략 2000∼5000K로 폭이 크다. 상전이에 쓰이는 에너지를 0.46∼3.67MJ/kg 가운데 어디에 두느냐가 계산 온도를 크게 바꿨다. 따라서 90GPa대에서 온도가 정확히 5000K였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110GPa대 시료가 확실히 고체였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압력을 풀자 결정선은 어디로 갔나
최고 111±15GPa를 거친 별도의 감압 샷에서는 충격파가 시료를 빠져나간 뒤 3.69ns에 두 개의 피크를 가진 저대칭상이 관측됐다. 이 무늬는 브레아이트 또는 팽창한 규회석과 대체로 맞았지만 피크가 두 개뿐이어서 구조를 확정하지 못했다. 16.5ns 뒤에는 날카로운 결정 피크 없이 넓은 비정질 신호만 남았다. XRD만으로는 이 상태가 굳은 유리인지 액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이 감압 자료 역시 동일한 시료에서 최고압 상태부터 연속 촬영한 결과는 아니다. 약 111GPa에서 다비마오이트가 형성됐다는 압축 자료의 해석과 서로 다른 표적에서 얻은 지연 XRD를 연결한 경로다. 3.69ns 시점의 압력 계산에는 적절한 규회석 상태방정식이 없어 알루미늄 상태방정식을 유사체로 사용했다. 따라서 ‘다비마오이트가 사라졌다’는 말은 날카로운 다비마오이트 XRD 피크가 감압 자료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지, 회수한 시료에서 나노미터 크기의 알갱이조차 전혀 남지 않았음을 확인했다는 뜻은 아니다.
1975년 정적 실험은 16GPa를 넘는 압력과 약 1500°C에서 CaSiO₃ 페로브스카이트를 합성했지만, 감압 뒤에는 유리와 약한 저압상 회절선만 보고했다. 이번 연구는 사라지기 전 고압 구조를 현장 XRD로 판별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충격 다비마오이트 관측 자체가 세계 최초인 것은 아니다. 2026년 5월에는 처음부터 CaSiO₃ 유리였던 시료가 충격 아래 페로브스카이트로 결정화하는 현장 XRD 연구가 먼저 발표됐다. 이번 연구의 구별되는 지점은 결정질 규회석에서 출발해 압축 중 무질서화와 감압 중 재비정질화에 이르는 경로를 제시했다는 데 있다.
운석 속 유리를 설명할 후보, 아직은 후보
이 경로는 운석에서 다비마오이트 결정 대신 CaSiO₃ 유리가 발견되는 이유를 설명할 후보가 된다. 충돌 때 다비마오이트 회절을 보이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가 압력이 풀리며 비정질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석의 유리가 압축 도중 생겼는지, 다비마오이트가 감압하며 변한 것인지는 현재 XRD만으로 구별할 수 없다. 감압하면 언제나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2025년 연구에서는 비정질 CaSiO₃와 브리지마나이트 조직이 만든 1.2±1.0GPa의 잔류응력 덕분에 나노미터 크기 다비마오이트가 상압에서 일부 보존됐다.
자연 충돌에 그대로 대입하기에도 차이가 크다. 이번 실험은 순수 CaSiO₃, 10∼20µm 시료, 5ns 레이저 충격이라는 제한된 조건에서 이뤄졌다. 실제 맨틀암에는 Fe·Mg·Al 등이 섞여 있고 운석 충격은 지속시간과 열 이력이 훨씬 길다. 파이롤라이트 조성 모델에서 다비마오이트 함량은 약 10vol%, 섭입 현무암질 조성 모델에서는 최대 약 30vol%로 제시되지만, 이를 지구 전체나 모든 하부맨틀의 함량으로 일반화할 수도 없다.
논문은 2025년 12월 12일 접수돼 2026년 8월 3일 수락됐고 8월 27일 공개됐다. 9월 1일 현재 동료심사를 통과했지만 최종 교정 전인 Article in Press 상태다. 원시 XRD·VISAR 자료 저장소로 적시된 곳은 확인 당시 열리지 않았고, 분석 코드도 요청과 허가가 필요하다. 공개 뒤 4일밖에 지나지 않아 독립 연구팀의 재현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전체 저자 20명 가운데 11명은 국내 6개 기관 소속이며, 고려대학교 이무진 연구자가 제1저자, 김동훈 연구자와 광주과학기술원 황희정 연구자가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자료: 고려대학교·광주과학기술원·부산대학교·포항가속기연구소·한국과학기술연구원·일본 고휘도광과학연구센터(JASRI)·이화학연구소(RIKEN)·오사카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