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피 굳히는 그물이 췌장암의 방패로…소수 암세포가 바꾼 면역환경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9.15 12:40
PAI1·PAI2가 피브린 풍부한 국소 환경 유지에 관여…면역치료 병용 효과는 생쥐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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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미국 국립암연구소(NCI), Dr. Lance Liotta Laboratory, 퍼블릭 도메인 — [파일 페이지에서 확인](https://commons.)

상처가 났을 때 피를 굳히는 단백질 그물이 암세포를 지키는 데도 쓰인다면 어떨까. 일부 췌장암 세포가 피브린, 즉 혈액응고 때 그물을 이루는 단백질이 풍부한 환경을 유지해 주변 면역 공격을 약하게 만든다는 연구가 나왔다. 이 환경을 겨냥한 치료 효과는 생쥐에서 확인됐다. 환자에게 효과가 입증된 단계는 아니다.

미국 마운트시나이 아이칸 의대 연구진이 2026년 9월 9일 발표한 논문은 췌장암의 한 유형인 췌장관선암(PDAC)을 다뤘다. 핵심은 일부 암세포의 영향이 자기 자신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정 암세포 주변에 국소 면역억제 구역, 곧 면역세포의 공격이 약해지는 영역이 만들어지고 이웃 암세포도 그 영향을 받는다는 공간적·기능적 증거를 제시했다.

상처를 막는 그물, 암 주변에서는 다른 역할

췌장암은 치료의 어려움이 생존 통계에도 드러나는 암이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SEER 21 통계에서 일리노이를 제외한 2016~2022년 진단자의 췌장암 전체 5년 상대생존율은 13.7%였다. 상대생존율은 일반 인구의 생존 수준과 비교한 지표다. 같은 공개 통계에서 진단 당시 암이 먼 장기로 퍼진 원격 전이 비중은 약 51%로, 절반가량이었다. 이 수치는 미국 췌장암 전체의 배경 통계이며 이번 연구의 치료 성적은 아니다.

이번 연구는 암세포와 면역세포 사이에 놓인 환경을 살폈다. 세포외기질은 세포 사이를 채우고 지지하는 환경을 뜻한다. 연구진은 SERPINE1 유전자가 만드는 PAI1 단백질과 SERPINB2 유전자가 만드는 PAI2 단백질이 피브린이 풍부한 기질을 유지하고, 대식세포의 면역억제 성향에 관여한다고 보고했다. 유전자는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담고 있으며, 이 연구에서는 그 정보의 일부를 제거해 주변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했다.

대식세포는 면역세포의 한 종류지만, 암 주변에서 어떤 위치에 모이고 어떤 성향을 띠는지가 중요했다. 연구가 제시한 흐름은 암세포의 PAI1·PAI2, 피브린이 풍부한 환경의 유지, 대식세포의 위치·성향 변화, 암을 공격하는 T세포의 접근·활동 제한으로 이어졌다. 피브린의 역할을 단순히 통행을 막는 장애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주변 면역세포의 상태도 함께 달라졌다.

따라서 ‘방패’는 종양 전체를 밀봉하는 막을 뜻하지 않는다. 특정 암세포 주변에서 조직되는 보호 환경을 설명하는 비유다. 암세포 자체의 성질에 더해, 그 세포가 어떤 이웃을 모으고 주변의 면역 활동을 어떻게 바꾸는지까지 봐야 한다는 것이 이번 발견의 초점이다.

100개 중 5개로 출발한 세포 집단의 영향

소수 세포의 영향을 보여준 실험에서는 Serpine1 유전자를 제거한 암세포 95%에 대조세포 5%를 섞어 생쥐에 이식했다. KO는 해당 유전자를 제거했다는 뜻이다. 세포 100개를 놓는다고 가정하면 95개는 유전자를 제거한 세포, 5개는 대조세포인 구성이다. 조건별 생쥐는 5마리였으며, 2주 뒤 종양과 면역환경을 분석했다.

여기서 출발 비율과 결과 시점의 비율을 구분해야 한다. 이식 당시 5%였던 대조세포는 2주 뒤 약 17%를 차지했다. 따라서 실험 내내 5%의 세포만으로 변화가 유지됐다고 해석할 수 없다. 이 비율을 환자의 종양에도 적용되는 보편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유전자를 제거한 세포만 이식한 군과 비교했을 때, 혼합군에서는 대식세포 비율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았다. 반면 살상효소인 그랜자임 B를 가진 CD8 T세포의 비율은 유의하게 낮았다. 암을 공격하는 T세포가 얼마나 있는지만큼, 그중 공격에 쓰이는 효소를 가진 세포가 얼마나 되는지도 중요하다는 결과다.

다만 종양 전체의 CD8 T세포 비율이 감소했다는 통계적 근거는 확인하지 못했다. 종양 무게도 증가 방향이었지만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는 아니었다. 이 실험이 뒷받침한 것은 주변 면역환경의 변화다. ‘5%만 섞어도 종양 성장이 확실히 회복됐다’거나 ‘종양 전체의 면역이 완전히 차단됐다’고 확대할 근거는 없다.

세포 명부에 이웃 지도를 더하다

이런 관계를 찾으려면 세포의 종류뿐 아니라 위치도 알아야 한다. 연구진이 사용한 Perturb-map은 CRISPR 유전자 조작, 세포 집단을 구별하는 단백질 바코드, 여러 표지를 함께 보는 조직영상을 결합한 분석법이다. 주민 명부에 동네 지도를 더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세포가 있는지에 더해, 어떤 암세포 옆에 어떤 면역세포가 모이는지 추적했다.

세포를 흩어 분석하면 잃기 쉬운 이웃 관계를 보존하는 것이 장점이다. 확장된 Perturb-map Multi-modal은 같은 조직 절편에서 유전자 발현, 즉 유전자가 얼마나 작동하는지에 관한 정보와 단백질·세포의 위치를 연결했다. 연구진은 후보 유전자 34개와 대조군을 살폈다. 초기 공간·시간 분석에서는 생쥐 20마리의 암세포와 면역세포 450만 개 이상을 분석했다. 세포 수가 많아도 독립적인 동물 표본은 20마리라는 점은 구분해야 한다.

유전자 제거의 영향은 종양 무게에서도 나타났다. 이식 14일째 각 7마리를 비교했을 때 평균 무게는 대조군 약 486mg, Serpinb2 제거군 약 205mg, Serpine1 제거군 약 102mg이었다. 대조군보다 각각 약 58%, 79% 낮았다. 같은 종양이 치료 전보다 그만큼 줄었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실험군을 같은 시점에 비교한 결과다.

유전자 제거에 항PD-1 치료를 병용한 생쥐 실험에서는 논문 본문 기준 중앙생존기간이 약 24일에서 47일로 늘었다. 항PD-1은 면역세포의 공격을 억누르는 신호를 차단하는 치료다. 중앙생존기간은 생존기간을 순서대로 놓았을 때 가운데에 해당하는 값이다. 연구진은 별도로 PAI1 억제제 PAI-039와 항PD-1을 병용한 생쥐 실험도 진행했다. 그러나 24일과 47일이라는 수치는 약물 병용 실험이 아니라 유전자 제거와 항PD-1을 결합한 실험의 결과다.

환자 치료로 이어지려면 무엇을 더 밝혀야 하나

이번 연구의 새로움은 피브린의 암 보호 기능 자체를 처음 발견했다는 데 있지 않다. 경희대학교와 미국 유타대학교 연구진이 참여한 2025년 선행연구도 피브린이 풍부한 기질이 면역세포의 침투와 성향을 조절한다고 보고했다. Perturb-map의 원형 역시 2022년 폐암 생쥐 연구에서 발표됐다. 이번 연구는 이런 기반 위에서 소수 암세포의 유전자 기능과 그 주변의 국소 면역환경을 연결했다.

사람 자료의 의미도 구분해야 한다. 연구진은 보관된 췌장관선암 종양 조직 30사례 등에서 유전자 발현과 면역세포의 공간적 연관성을 분석했다. 이는 생쥐에서 살핀 현상이 사람 종양과도 관련될 가능성을 뒷받침하지만, 환자에게 이 경로를 차단하는 치료를 했다는 뜻은 아니다. 환자의 생존을 늘리는지와 안전한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작동 방식에도 빈칸이 남았다. 최종 논문은 피브린을 분해하는 활성 자체를 직접 측정하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그물의 분해 속도를 재서 원인을 확정했다고 쓸 수 없다. 연구진이 선별한 암세포 유전자를 조작한 만큼, 모든 면역억제 경로를 조사한 것도 아니다. 사전 통계적 표본 수 계산을 하지 않았고 동물 처치 담당자가 배정군을 알았다는 실험 설계상의 제약도 있다.

PAI1을 어디에서 공급하는지도 후속 질문이다. 미국 미시간대학교가 2026년 4월 3일 발표한 연구는 암 주변 조직을 이루는 섬유아세포와 혈관 안쪽을 덮는 혈관내피세포의 PAI1 발현을 강조했다. 분석한 사람 조직에서는 암세포의 PAI1이 거의 검출되지 않은 결과도 보고했다. 이번 연구의 직접적인 재현 실패는 아니지만, 암세포 유래 PAI1만으로 전체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번 논문도 암세포와 기질 양쪽의 기여를 인정했다.

기질을 바꾸는 전략이 곧 환자 생존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2020년 HALO-301 임상시험에서는 기질의 다른 성분인 히알루론산을 분해하는 PEGPH20을 항암화학요법에 추가했지만 생존 개선을 입증하지 못했다. 피브린과 히알루론산은 서로 다른 성분이므로 이 결과가 이번 접근의 성패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주변 환경을 겨냥한 치료도 환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별도로 검증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번 성과는 면역치료와 함께 겨냥할 표적 후보를 제시한 전임상 연구, 즉 환자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전 단계의 연구로 읽어야 한다. 일부 암세포가 주변의 면역 공격을 약하게 만드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다음 과제는 암세포와 주변 조직의 상대적 기여를 가려내고, 이 경로를 차단했을 때 사람에서도 효과와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자료: 미국 마운트시나이 아이칸 의대, 미국 국립암연구소, 경희대학교, 미국 유타대학교, 미국 미시간대학교,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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