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물결이 계산해 로봇 자동차를 움직였다…수조에서 칩으로 가는 과제

큰 접시만 한 수조에서 일어난 물결이 자동차의 다음 움직임을 정하는 데 쓰였다. 자동차가 장애물까지의 거리를 보내면, 물결이 겹쳐 만든 무늬를 컴퓨터가 읽고 차량에 명령을 전달했다. 지름 25㎝ 수조와 실제 로봇 자동차를 연결해 장애물을 피하도록 한 실험이다. 익숙한 물의 출렁임이 계산 과정의 일부를 맡은 셈이다.
옥스퍼드대학교와 다이아몬드 라이트 소스 연구진은 이 결과를 담은 논문을 2026년 9월 10일 공개했다. 동료심사와 게재 승인을 거친 연구다. 성과의 핵심은 물결로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을 실제 차량의 행동까지 연결했다는 데 있다. 다만 수조와 컴퓨터는 차량 밖에 있었으며, 실험이 입증한 범위는 주변 장애물 회피였다.
장애물까지의 거리를 물결 무늬로 바꾸다
물을 계산에 이용하려는 시도에는 선행연구가 있다. 서식스대학교 연구진은 2003년 실제 수면을 이용해 XOR, 즉 두 입력이 서로 다른지를 가리는 문제와 음성 구분을 연구했다. 이번 연구를 이해하려면 물이라는 재료의 낯섦보다 물리 현상이 계산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연구진이 활용한 리저버 컴퓨팅은 물질의 복잡한 변화를 계산에 이용하고 마지막 출력 판독부를 학습하는 방식이다. 이번 장치에서는 여러 물결이 퍼지고 겹치는 과정이 입력 정보를 변환했다. 간섭, 즉 파동이 겹치면서 서로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현상에 따라 입력마다 다른 무늬가 만들어졌다. 이 무늬가 상황을 구분하는 단서가 됐다.
출발점은 차량에 달린 회전식 초음파 센서 한 개였다. 센서는 여섯 방향의 거리를 측정했다. 이 거리 정보를 여섯 구동기가 물결을 일으키는 시점으로 바꿨다. 거리를 단순히 숫자로 전달하는 데서 더 나아가, 언제 물결을 만들 것인가라는 시간 정보로 옮긴 것이다. 최적화된 입력 조건에서 거리 단계별 발생 시점의 간격은 200ms였다.
이어 카메라가 수면에서 반사된 빛이 스크린에 만든 무늬를 촬영했다. 학습된 선형 SVM, 즉 무늬의 특징을 구분하는 기계학습 판독기가 이를 분류했고, 그 결과가 차량 명령으로 이어졌다. 호스트 컴퓨터와 카메라, 아두이노, 블루투스가 함께 작동했다. 물결의 물리적 변화와 전자장치의 판독·통신이 하나의 제어 과정에 참여했다.
학습은 물결의 연결을 일일이 바꾸는 대신 출력 분류기를 조정하는 데 집중됐다. 그렇다고 물만 준비하면 계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입력을 주는 시점과 무늬를 읽는 시점 등 장치 조건을 맞춰야 했다. 어떤 순간의 물결을 읽느냐도 계산 결과를 구분하는 데 필요한 설계 요소였다.
최대 정확도 100%가 말해주는 범위
연구진은 입력 상황을 두 종류, 세 종류, 다섯 종류로 나누는 분류 과제를 시험했다. 학습 표본 수를 5~2,500개로 변화시키고 시험 표본은 100개로 두었다. 학습·시험 구성을 무작위로 바꿔 50회 반복한 뒤 평균을 냈으며, 세 과제에서 각각 최대 100%의 분류 정확도를 얻었다. 모든 조건에서 평균 정확도가 100%였다는 뜻은 아니다.
이 수치는 시험 입력을 얼마나 정확히 분류했는지를 나타낸다. 실제 자동차가 장애물을 피한 성공률로 읽어서는 안 된다. 실제 주행 시연에는 2분류 모델을 사용했다. 다섯 종류를 구분한 시험 결과를 차량이 다섯 가지 행동을 판단하며 주행했다는 설명으로 옮길 수도 없다.
거리 정보를 일곱 단계로 나누고 여섯 방향에서 받으면 가능한 입력 조합은 7⁶, 곧 117,649가지다. 이는 장치에 줄 수 있는 입력의 경우의 수다. 그만큼 주행을 반복했거나 모든 조합을 검증했다는 뜻은 아니다. 가능한 상황의 수와 실제 성능을 확인한 시험의 규모를 구분해야 결과의 의미가 선명해진다.
시간 수치도 단계별로 읽어야 한다. 연구에서 정한 약 150ms의 영상 판독 시점과 50×50 격자는 무늬를 언제, 어떻게 읽었는지에 관한 조건이다. 장애물 감지부터 차량 움직임까지의 전체 지연을 나타내지 않는다. 가상 자동차와 수조를 연결한 입출력 한 주기는 다음 측정에 앞서 수면이 안정되는 시간을 포함해 약 5초로 설명됐다.
실제 차량 시연 코스는 3m×2m였다. 보충자료에 따르면 공개 영상은 50배속으로 제시됐다. 영상의 1초가 실제 시간 50초에 해당하므로 화면 속 이동을 그대로 주행 속도로 받아들일 수 없다. 센서 입력이 일정 수준 이상 달라질 때 계산하는 사건 기반 제어도 가상 자동차에서 구현했다. 실제 차량에 해당 제어 회로를 탑재한 결과와는 구분된다.
국내에서도 물질의 변화를 계산에 활용
국내에서도 물리적 리저버, 즉 물질 자체의 변화를 정보 처리에 쓰는 연구가 진행됐다. 서울대학교 연구팀은 2025년 6월 30일 광자·마그논 결합의 과도응답을 활용한 연구를 발표했다. 전자기파와 자성체의 진동이 서로 영향을 주며 일시적으로 변하는 신호를 계산에 이용했다는 뜻이다.
서울대 연구에서는 물리적 노드 한 개, 곧 하나의 물리적 처리 지점을 시간차로 읽어 가상 노드 열 개처럼 활용했다. 음성 숫자 분류에 총 500표본을 사용했으며 학습 400개, 시험 100개에서 정확도 약 89%를 얻었다. 음성 숫자와 장애물 상황은 서로 다른 분류 과제이므로 이 값을 영국 연구의 정확도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서울시립대학교 연구팀은 유무기 하이브리드 전하 트랩 시냅스 소자를 제작하고 측정했다. 전하가 잡혔다 풀리는 과정에서 생기는 전기적 변화를 활용하는 장치다. 손동작과 숫자 분류는 시뮬레이션으로 평가했다. 물결이나 자성체의 파동을 계산 매체로 쓰는 방식과는 다르지만, 물질의 변화에서 계산에 쓸 특징을 얻는다는 연구 방향이 맞닿아 있다. 두 국내 연구 모두 이번 물 수조 실험의 재현은 아니다.
수조를 칩으로 바꾸려면 무엇을 입증해야 하나
물리 현상을 실제 행동에 연결한 성과와 별개로, 이 과제에 복잡한 계산 장치가 필요한지는 논쟁거리였다. 공개 동료심사에서는 단순한 센서 피드백이나 거리 기준값을 이용한 제어로도 장애물을 피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저자들도 과제의 복잡도가 낮고 기존 기계학습 기반 로봇 방식이 더 적은 자원으로 수행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
위치를 추정하고 지도를 만들며 목적지까지 경로를 계획하는 능력도 이번 실험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심사 과정에서 이 기능들과 국소 장애물 회피를 구분하라는 요구가 나왔고, 저자들은 제목과 관련 표현을 수정했다. 이번 과제는 과거 입력의 정보를 기억해야만 풀리는 문제도 아니었다. 기억 능력을 체계적으로 정량 평가하는 일은 후속 연구로 남았다.
수정 후 최종 심사에서는 두 심사위원이 질문이 해소됐다고 밝혔다. 다른 심사위원은 스핀파 부분에 유추에 의존하는 설명이 남았다고 평가하면서도 실물 리저버 시스템을 구현한 기여를 긍정적으로 봤다. 성과의 범위를 좁혀 읽는 것은 이 연구가 보여준 물리적 정보 처리와 로봇 제어의 연결을 정확히 평가하는 데 필요하다.
소형화를 위해 연구진이 검토한 매체는 스핀파였다. 스핀파는 자성체 내부에서 자화의 집단적 진동이 퍼지는 파동이다. 시뮬레이션에 사용한 자성막은 지름 1㎛, 두께 1.5nm였다. 지름은 1㎜의 1,000분의 1에 해당한다. 물그릇을 그대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계산을 맡는 파동의 매체를 바꾸는 구상이며, 해당 장치를 제작하거나 차량에 탑재하지는 않았다.
작아지는 것만으로 실용화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파동의 전달 속도와 장치 크기, 입력 간격을 함께 맞추고 여러 입력과 전기적 판독을 통합해야 한다. 수조 실험은 진동 차단 테이블과 소음을 막는 외함을 사용했다. 이동하는 차량 안이나 외부 환경에서도 같은 안정성이 유지되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전체 에너지 효율도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입력을 만드는 데 드는 에너지뿐 아니라 결과를 읽고 다른 장치와 연결하는 회로까지 포함해 비교하려면 제작 시제품이 필요하다. 이번 연구는 물결이 바꾼 정보를 읽어 차량 행동으로 이어갈 수 있음을 보여줬다. 다음 단계의 판단 기준은 그 연결을 작은 실제 장치에서 구현하고, 주변 회로까지 포함한 성능과 에너지 사용을 확인하는 데 있다.
자료: 옥스퍼드대학교, 다이아몬드 라이트 소스, 서식스대학교, 서울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