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장균 RNA 중합효소, 자연 4글자 넘어 합성 8글자 유전암호도 정확히 베껴썼다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9.19 06:58
크라이오전자현미경으로 확인된 '해시모지' 전사 구조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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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NIAID (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 CC BY 2.0)

세포 속에서 유전정보를 옮겨 적는 작은 복사기계가 있다. RNA 중합효소라는 이 효소는 DNA에 적힌 유전암호를 RNA로 그대로 베껴 쓰는 일을 한다. 지금까지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이 유전암호를 A·T·G·C, 단 4글자로만 적어왔다. 그런데 실험실에서 만든 4글자(P·Z·B·S)를 더해 8글자로 늘린 인공 유전암호를, 세포가 실제로 쓰는 것과 같은 복잡한 형태의 복사기계가 정확히 인식해 베껴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원자 하나하나를 구분할 수 있는 정밀한 사진으로 확인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UCSD) 약학대학, 응용분자진화재단, 솔크생물학연구소, 스탠퍼드-SLAC 국립가속기연구소 크라이오전자현미경센터 공동연구진이 2026년 9월 2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4글자를 넘어선 유전암호, 이번엔 진짜 복사기계로

생명체가 쓰는 유전암호 A(아데닌)·T(티민)·G(구아닌)·C(사이토신)는 각각 짝을 이뤄(A와 T, G와 C) DNA 이중나선을 이룬다. 2019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여기에 실험실에서 합성한 4글자를 더한 8글자 유전암호 체계가 처음 등장했다. 일본어로 '8글자'를 뜻하는 '해시모지(hachimoji)'라는 이름이 붙었다. 기존 짝인 A:T, G:C에 더해 P와 Z, B와 S라는 새로운 짝이 추가된 것이다. 당시엔 이 8글자 암호를 읽어낼 수 있는지를 확인했지만, 사용한 효소는 박테리오파지(세균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에서 온 T7 RNA 중합효소로, 부품 하나로 이뤄진 비교적 단순한 형태였다. 그러나 실제로 대장균을 비롯한 세포 안에서 유전정보 전사를 담당하는 효소는 여러 소단위가 맞물려 작동하는 훨씬 복잡한 구조다. 이 복잡한 진짜 복사기계도 합성 글자를 정확히 인식하는지는 이번 연구 이전까지 확인된 적이 없었다.

원자 단위로 들여다본 순간

연구진은 정제한 대장균 RNA 중합효소와 합성 DNA·RNA를 시험관에서 반응시켜, 효소가 유전정보를 옮겨 적는 도중의 모습을 그대로 얼려 촬영하는 크라이오전자현미경으로 구조 4개를 얻었다. 해상도는 2.42~2.75Å(옹스트롬)으로, 원자 하나하나를 구분해 분자 구조를 신뢰성 있게 그려낼 수 있는 정밀도다. 분석 결과 합성 염기쌍 P:Z는 효소의 활성 부위 안에서 자연 염기쌍인 G:C와 거의 같은 기하학적 배치를 이루고 있었다. 효소가 다음 반응으로 넘어가기 위해 접히는 부위인 '트리거 루프' 역시 합성 글자를 만났을 때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자연이 쓰지 않는 인공 글자를, 자연이 쓰는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효소가 붙잡고 있었다는 뜻이다.

서툴지만 정확했다 — 그리고 발견된 오류의 원인

다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합성 글자를 읽어 옮기는 반응 속도는 자연 글자보다 약 2배 느렸다. 아예 못 읽는 수준이 아니라 조금 서툴게, 그러나 정확하게 읽어내는 수준이라는 의미다. 오류도 발견됐다. 합성 글자 Z는 몸속 산성도(생리적 pH)에서 산성도지수(pKa)가 약 7.8로, 이 조건에서 구조가 살짝 바뀌면서 진짜 구아닌(G)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그 결과 효소가 Z를 G와 잘못 짝지어 읽는 오류가 나타났다. 연구진은 Z 분자의 니트로기를 카르복사미드로 바꾼 개량형 'Z*'를 새로 합성했다. Z*의 pKa는 10 이상으로 올라가 생리적 pH에서 구조가 덜 흔들렸고, 그 결과 구아닌과의 오짝 문제가 크게 줄었다. 다만 이 개선에는 대가가 따랐다. Z*를 쓰면 반응 속도가 더 느려졌다.

아직 세포 안은 아니다 — 남은 질문들

연구진 스스로도 이번 결과의 한계를 분명히 했다. 이번 실험은 여러 재료가 동시에 경쟁하는 실제 세포 환경과 달리, 경쟁 재료 없이 한 종류씩 강제로 반응시킨 조건에서 이뤄졌다. 따라서 실제 오류율은 이번 실험에서 관찰된 것보다 낮을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개량형 Z*에 대해서도 '완전히 최적화된 짝을 향한 초기 단계'라고 표현했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는 유전정보를 옮겨 적는 '전사' 단계까지만 입증했다. 옮겨 적힌 정보를 실제 단백질로 만드는 '번역' 단계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으며, 연구진은 이를 향후 과제로 남겼다. 또한 이번 실험은 정제한 효소와 완충용액만 사용한 시험관 실험으로, 살아있는 세포나 생물체 안에서도 똑같이 작동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8글자로 확장된 합성 DNA는 이전 단계인 6글자 버전에서 특정 표적에 달라붙는 인공 유전물질(압타머)을 만들어 간암세포를 표적하는 데 쓰인 선례가 있다. 유전암호의 글자 수를 늘리는 시도가 진단·치료 도구를 다양화할 수 있다는 기대가 이런 연구의 배경에 깔려 있다. 다만 이는 이전 연구에서 나온 성과이며, 이번 논문이 직접 이룬 결과는 아니다.

자료: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UCSD), 응용분자진화재단, 솔크생물학연구소, 스탠퍼드-SLAC 국립가속기연구소 크라이오전자현미경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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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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