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고양이 소변 속 13종 분지쇄지방산이 만드는 개체별 '화학 신분증'

고양이가 화장실에 남긴 소변 자국 하나에도 그 고양이만의 정보가 담겨 있다면 어떨까. 일본 이와테대학교가 주도하고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공과대학교, 일본 니혼대학교·가고시마대학교, 기타큐슈시립자연사역사박물관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이 집고양이 소변에서 이전까지 포유류 분비물에서 보고된 적 없는 13종의 분지쇄지방산(BCFA·탄소 사슬이 일직선이 아니라 가지를 친 형태로 결합된 지방산)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 성분들의 조합과 비율은 고양이마다 다르지만, 같은 고양이라면 채취한 날짜가 달라져도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됐다. 사람으로 치면 저마다 다른 배합의 향수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100년 넘게 정체를 몰랐던 신장 속 지방방울
연구의 출발점은 뜻밖에도 100년 넘게 방치돼 있던 해부학적 수수께끼였다. 1916년 조직학 연구에서 고양이 신장(콩팥) 세포 안에 유난히 많은 지방방울이 있다는 사실이 처음 보고됐지만, 그 기능은 약 110년이 지나도록 밝혀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이번 연구팀은 이 지방방울이 단순한 저장 구조물이 아니라 개체마다 다른 화학 신호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저장고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분석 결과 문제의 13종 지방산은 신장 조직에서만 검출됐고 다른 장기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신장 피질(겉질)의 세뇨관 상피세포 속 지방방울에 중성지방(트리글리세리드·지방산 세 분자가 글리세롤에 결합한 저장 형태) 형태로 쌓여 있다가, 소변으로 나갈 때는 유리지방산(다른 분자와 결합하지 않은 홑 지방산) 형태로 바뀌어 배출되는 경로가 확인됐다.
입을 벌리는 표정이 알려준 단서
연구팀이 이 화학 신호를 찾아낸 단서는 고양이의 독특한 표정이었다. 고양이는 낯설고 강한 냄새를 맡으면 입을 살짝 벌리고 윗입술을 들어 올리는 플레멘 반응을 보인다. 이때 입천장 안쪽의 야콥슨기관(서골비기관·냄새 분자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보조 후각 기관)이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연구팀은 이 반응을 단서 삼아 고양이가 실제로 소변 성분만으로 다른 개체를 구별하는지 검증하는 실험을 설계했다. 같은 고양이의 소변을 반복해서 냄새 맡게 하면 흥미가 줄어 냄새 맡는 시간이 짧아지고, 이어 다른 고양이의 소변으로 바꿔주면 다시 냄새 맡는 시간이 늘어나는 습관화-재노출 방식이었다. 이 실험에서 고양이들은 다른 요인을 통제한 상태에서도 13종 지방산의 조성 차이만으로 개체를 구별해냈다. 이 조성은 실온(약 25도) 상태에서도 최소 24시간은 크게 흐트러지지 않아, 냄새 신호로 쓰이기에 충분한 안정성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이 지방산만으로 효과를 재현하는 데는 한계도 드러났다. 연구팀이 6종의 합성 분지쇄지방산을 섞어 인공적으로 만든 혼합액을 제시했을 때는 실험한 고양이 6마리 가운데 2마리에서만 반응이 유도됐다.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지방산 성분 자체보다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소변 속 다른 성분과 함께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화학 분석에는 1세부터 9세까지의 잡종 성묘 30여 마리 수준이 활용됐다.
사자·호랑이도 공유하는 화학 신호
연구팀은 집고양이를 넘어 사자, 호랑이, 표범, 재규어, 카라칼, 서벌, 퓨마, 치타, 이리오모테삵, 쓰시마삵 등 다른 고양잇과 동물의 소변과 신장도 함께 살폈다. 그 결과 이들 동물에서도 비슷한 계열의 화합물과 신장 지방방울이 확인됐다. 다만 지방방울의 양과 화합물 조성은 종마다 차이가 있어, 집고양이에서 확인된 것과 똑같은 방식이 야생종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남은 질문과 또 다른 해석
연구팀 스스로도 밝히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 신장 지방방울에 저장된 지방산이 정확히 어떤 경로를 거쳐 소변까지 흘러나가는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야생 고양잇과 동물이 실제로 이 성분을 개체 인식에 쓰는지도 검증되지 않았으며, 일부 종은 표본 수 자체가 적어 통계적으로 확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논문이 직접 인정했다. 행동실험의 대조군 자체가 제한적이었고, 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행동실험만으로는 개체 인식이라는 행동을 직접 확증하기가 원천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연구팀이 한계로 인정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현상을 다르게 해석한 연구도 나왔다. 영국 노팅엄대학교 수의대 연구팀은 고양이 신장에 지방이 비정상적으로 쌓이는 현상을 두고, 개체 구별을 위한 화학 신호가 아니라 만성신장질환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조기 위험 신호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을 제시했다. 이 연구는 2026년 3월 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베터리너리 사이언스에 실렸다. 두 연구가 서로의 결과를 직접 반박하거나 충돌하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비슷한 시기에 독립적으로 제기된 서로 다른 가설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와테대학교가 주도한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렸고, 이와테대학교 발표 기준 온라인 공개일은 2026년 8월 20일(일본시간)이다. 이에 앞서 2025년 9월에는 사전공개 논문 저장소 바이오아카이브에 먼저 공개된 바 있다. 100년 넘게 잠자던 해부학적 수수께끼가 개체별 '화학 신분증' 가설로 이어졌지만, 그 신호가 실제로 어떻게 전달되고 야생에서도 통하는지는 앞으로 더 검증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자료: 이와테대학교, 브라운슈바이크 공과대학교, 니혼대학교, 가고시마대학교, 기타큐슈시립자연사역사박물관, 노팅엄대학교
